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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 개정판
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최진성 옮김, 이다도시 감수 / 물푸레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
" The Main difference between Europe VS USA "
유럽판 다비드와 대조적인 미국판 다비드의 후덕함이 당혹스럽다. 이 합성 사진은 영문웹에 널리 퍼진 우스개로 OECD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미국 (비만율 34.4%, OECD가입국 1위)을 꼬집고 있다. 하필 비교대상이 유럽인 이유는 비만율이 낮은 가입국들이 대거 유럽(스위스 7.7%, 노르웨이 9.0%,이탈리아 10.2%, 프랑스 11%) 에 포진해 있는 까닭. 때문에 미국에선 한 때 '프랜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가 큰 화제가 되었고 와인붐이 일었다. 프랜치 패러독스란 엥겔지수가 뒤집힐 정도로 식도락에 탐닉하지만 막상 비만인구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한 프랑스의 사정을 두고 만들어진 말이다. 먹어도 살안찌는 프랑스의 역설을 보고 미국은 이렇게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얘들은 매일같이 와인을 먹는다? 우리도 와인을 먹자? 그럼 우리도 날씬해질 것이다? 우와아앙!'
그렇게 늘어난 와인소비는 비만의 수렁에서 미국을 건져주지 못했다. 프랜치 패러독스는 와인 한두잔 같은 단선적인 이유로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그 밑에는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촘촘히 자리하고있다. 이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책이 바로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하 프랑스 여자) 다. '프랑스 여자' 는 단순한 식이조절을 넘어서 생활습관 전반을 아우르는 행동변화를 강조한다. 저자 길리아노가 누차 힘주어 말하는 살빼기 비결은 단순히 프랑스 여자처럼 먹는 데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갈 때 진정한 건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사는 게 프랑스 여자처럼 사는 길일까? 스스로 프랑스 여자이기도 한 저자 길리아노의 삶을 들여다보자.

저자 Mireille Guiliano
길리아노는 프랑스 태생의 재미 기업인이었다. 뤼이비똥(LVMH)계열사인 샴페인 브랜드 뷔브 끌리꼬(Veuve Clicquot)가 설립된 1984년부터 20년 가까이 재직하며 대변인과 CEO를 연임했다. 그녀는 제법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직업적 성공 외에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면모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60줄의 나이(1946년생)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정력과 건강이었다. 자연히 그녀의 주변엔 젊게 사는 비결이나 건강법을 물어오는 미국 여자들이 많았고 길리아노의 조언에 힘입어 환골탈태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2004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설파하는 책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책은 이내 곧 37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 길리아노는 회사에서 물러나 방송과 강연에만 집중하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의 이력이 이러한 만큼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뚱뚱한 미국여자들에게 전하는 날씬한 프랑스 여자의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연 그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프랑스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이 건강법은 어떤 내용인가?
1. 영양과 섭생
먼저 영양과 섭생에 관련된 부분부터 살펴보자. 건강관련 서적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 전공 서적 마냥 도표와 전문용어로 도배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 여자..' 는 정말로, 정말정말 쉽게 쓰여져있다. 대놓고 말하자면 전문성이 부족해 보일정도로 일상의 언어와 사례만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것이 겁 많고 끈기없는 대다수의 다이어터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여자는 헤어스타일과 샴페인 한 병, 그리고 아주 근사한 향수가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338p)" 와 같은 다소 뜬구름 잡는식의 문장들을 가지치기하면 아래와 같은 큰 줄기가 남는다.
살찌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범인음식과 생활습관 탓이다
먼저 당신의 식단에서 살찌게 하는 범인음식을 찾아라
범인음식의 섭취를 줄이고 다음과 같이 먹는다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 끊기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 금식 피하기
-양은 줄이되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기
-자연산재료, 제철과일등을 이용해 직접 요리해서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피트니스 클럽에 가는대신 생활 속 활동량 늘리기
스트레스 피하기
긍정적인 태도 가지기
자신감 있게 생활하기
이제 당신도 프랑스 여자처럼 살찌지 않는다!
이 원칙들을 기존의 영양학과 감량법에 비추어 해석해보자. 먼저 범인음식이라는 개념이다. 저자인 길레이유는 살아가면서 딱 한 번 '감자포대' 같은 뚱뚱보가 되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해 가족과 떨어져 미국과 빠리에서 유학했던 시절이다. 여기엔 크게 세가지 원인이 있었다. 먼저 탐욕과 소비의 땅 신대륙에 그녀 스스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홈스테이 기간동안 길레이유 역시 미국인들처럼 정크푸드의 3대 영양소로 불리는 설탕,소금,전이지방을 만끽했다.
두 번째는 탄수화물이다. 미국에서 1년만에 뚱보가 되어 돌아온 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부모를 뒤로하고 그녀는 대학입시를 위해 빠리로 떠난다. 독거와 자취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자취생인 그녀는 맛있고 편하다는 이유로 빵을 즐겨 먹었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이 주식이 되면서 길레이유의 몸매는 더욱 망가졌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위의 두가지 이유를 포괄한다. 미국과 빠리에 머물면서 그녀의 생활습관이 크게 변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총체적인 이유다. 이는 비단 프랑스 여자가 아니더라도 학업이나 취직등의 이유로 독거를 갓 시작한 젊은 여자라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섭생과 건강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해본적 없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식사를 책임지게 됐다. 이로인해 가정식이나 학교급식을 통해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지켜왔던 식사주기와 식사량이 깨진다. 금전적 이유나 편리함에 밀려 편식, 폭식, 금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 결과는 급격한 체중변화로 나타난다.
이처럼 범인음식이란 '살찌기 쉬운 음식들' 의 또다른 이름이다. 덧붙여 범인음식을 즐기는 태도 또한 살을 찌우는 숨은 공신임을 알 수 있다.
자 이랬던 길레이유는 고향에 돌아와 가족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살빼기에 성공했으며 그뒤로 줄곧 '프랑스 여자 답게' 살아왔단다. 그렇다면 이제 '프랑스 여자' 에서 제시된 '살을 빼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설탕, 소금, 전이지방' 으로 들어찬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를 끊어야 하는 필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상식이다. '프랑스 여자' 는 위와 같은 범인음식과 연을 끊고 대신 '리크스프(Leek Soup)'를 장복하도록 권한다. 다음은 리크스프에 대한 설명이다.
'리크는 아주 영양가가 높은 음식으로 배뇨작용을 촉진하고48시간 정도 먹으면 입맛이 바뀌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2p)'.

리크가 뭐냐고?
짜잔
~ 바로 이거란다
제이미 올리버가 들고 있는 저 '서양대파' 가 바로 리크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대파 우린 육수' 를 한사발씩 떠마시며 몸의 수분을 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째 낯이 익다. 세간에 여러차례 오르내린 이른바 '디톡스 다이어트' 와 같은 방법이라서다. 비슷한 방식인 일명 마녀스프(cabbage soup)가 몇 년전 대유행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참고로 우리가 마녀스프라고 부르는 음식 역시 '프랑스 여자'의 추천 레시피 가운데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책에는 '스프 오 레귐 드 마망 (엄마의 야채수프)'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조리법은 영락없는 미네스트로니(마녀스프의 원조격인 이탈리아풍 야채스프)다.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이나 금식에 주의하며 천천히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같은 지침도 수많은 다이어트들이 공유하는 상식적인 것들이다. 몸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씩 여러번에 나누어 먹는 것은 일정한 카타볼릭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디빌딩 식단과 맥을 같이한다. 식이제한에서 오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가끔씩 초콜릿과 같은 범인음식도 즐기라는 지침은 뇌를 속이는 '치팅밀(Cheating Meal)' 과 같은 방법이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의 지침들은 기존의 다이어트 법들과 일맥상통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원푸드 다이어트로 시작하고 식사량을 줄여가는 것 때문에 자칫 영양 불균형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길리아노는 제법 튼튼한 안전장치를 심어놓았다. 특히 생선과 요거트를 권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둘 다 고단백 식품으로 채소 중심 식단이 빠지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을 채워준다. 생선의 경우 불포화 지방 또한 풍부해 혈액순환에 좋다. 요거트는 발효과정에서 유당이 분해되기 때문에 우유를 못먹는 이들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또한 점성으로 인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양감(Body)이 느껴져 '먹는다' 는 보상심리를 채워준다. 우유와 영양 성분은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이어트에 유리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원리에 대한 설명은 부실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다.
2. 문제
그러나 '프랑스 여자' 가 훌륭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프랑스 여자' 는 거의 의도적으로 운동처방을 배제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여자는 헬스장에 가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도 낭비된다. 프랑스 여자는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며 전철역까지 뛰어다니는 걸로 운동을 대신한다' 는 논리를 내세워 운동처방은 무시 당한다. 하릴없이 런닝머신위에서 소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이들에겐 나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내세워 운동처방의 가치 자체를 폄훼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운동을 통한 체지방 연소는 식이조절을 통한 감량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기폭제다. 뿐만 아니라 근육량과 대사량을 늘리는 체질개선을 통해 요요현상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활력있는 삶을 만들어준다. 특히 일상 생활속에서 육체활동 기회를 박탈당해가고 있는 사무직 여성들은 따로 시간을 내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면 감량과 건강에 큰 도움이된다.
책의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국내사정과 어긋나는 내용도 많다. '프랑스 여자' 에는 40여가지에 달하는 식이조절용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으나 한국땅에선 태반이 무용지물이다. 리크를 대파로 대체하는 등의 현지화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염소젖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 플래터' 같은 건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닭고기를 와인에 재워 졸이는 '꼬꼬뱅'이나 머랭을 카스타드 크림에 익혀내는 '일 플로따' 같은 요리가 프랑스인의 관점에선 가정식일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별식이다. 조금 더 말해보면 사실 레시피 설명 자체가 불친절하다. 크로아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파이지 3절 접기를 사진 한 장 없이 글로만 설명해 놓았는데 과연 제과제빵 경험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소용일까? 입장바꿔 만일 내가 참고사진 한 장 없이 오직 텍스트로 설명된 김치 담는 법을 프랑스 인에게 내민다면 이 역시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 문제는 '프랑스 여자'에 적합한 레시피들만 따로 다룬 별도의 쿡북(Cookbook)을 출간해 해결한 듯 하지만 국내엔 번역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프랑스의 재래시장 마르쉐
유럽과 동떨어진 사회구조 역시 한반도에서 이 책의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마르쉐(재래시장)나 친지를 통해 신선한 제철재료를 수급하라는 지침은 우리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에서 재래시장을 보호관리하는 프랑스와 달리 대한민국의 재래시장은 벼랑끝에 몰려있다. 입지도 그렇거니와 상품구성 또한 신선식품과 로컬푸드를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산 농산물이 활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 자급도가 100%에 육박하는 프랑스에서는 제철에 맞춘 자연산 과일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한반도다. 딸기는 무릇 여름이 제철이건만 이제 겨울이 아니면 장에서 딸기 구경조차 할 수 조차없다.
이렇듯 유럽과 거리가 먼 우리네 속사정 때문에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가라' 는 주문은 급기야 서글퍼지는 것이다.
3. 프랑스여자처럼 살기위하여
한국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먹기란 어려운 일이다. 노력한다면 흉내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에서 프랑스를 닮겠다며'프랑스 여자는 모두 고집이 세고, 단체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358p)'는 지침을 실천할 수 있는이 누가 있을까?
글머리를 OECD 통계로 열었으니 한 번 OECD 통계로 닫아보자.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뚱뚱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가장 날씬한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가 아니다.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인구 비만율은 3.3%로 OECD에서 가장 낮다. 대한민국은 OECD에서 가장 날씬한 나라다. 그것만 일등이 아니다. 한국여자는 OECD에서 가장 많이 일한다. 여성 노동자 10명중 4명이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며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노동자의 62% 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는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할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예 일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여성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에서 꼴지고 반대로 여성 자살률은 1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벌면서 훨씬 마른 한국 여자들에게 대뜸 프랑스 여자처럼 엣지있게 살라고 주문하는 건 마리앙투아네트 같은 짓이다.
- 이상 한국 여성의 노동시간과 환경에 대한 자료는 "여성정책연구원, 'OECD 주요 통계로 본 한국 여성의 삶과 지위' 2009.7" 를 참조
한국적인 삶을 한 번 그려보자. 빡빡한 점심시간을 쪼개 식당가를 찾았다. 월급은 오른 적이 없건만 계속 오르는 물가에 매번 점심시간은 고민의 연속이다. 결국 오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오천원 백반집에 앉아 밥상을 기다린다. TV에선 앙상한 몰골의 걸그룹들이 연신 흐느적 거린다. 나도 저렇게 뼈다리는 못될 지언정 살은 빼야 할텐데, 작년에 산 스키니가 어째 뻑뻑하더라..관리를 받을까, 아니야 그것도 다 돈인데, 다이어트만 잘해도...하는 사이 밥 한공기 뚝딱 비워진다. 반찬이 많이 남았는데 한 공기 더 시킬까...그래 내가 무슨 다이어트를. 점심시간이 이렇게 끝나간다. 식후땡으로 자판기 커피라도 뽑아들고 광합성하려면 슬슬 일어나야한다. 그런데 이게 사는건가?
엥겔지수가 역전될 정도로 잘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프랜치 패러독스의 비밀은 와인이 아니라 생활습관에 있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2,3분만에 나오는 패스트푸드 대신 두세시간에 걸쳐 서빙되는 '프랜치 다이닝' 을 느긋하게 음미할 여유가 있어서 살이 안찐다. 신선한 제철과일과 제대로된 쇼콜라를 흠향하는 지혜를 할머니에게서 전수 받았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즉 프랑스 여자가 살찌지 않는 이유는 제1세계의 경제적 풍요와 안정된 사회시스템, 그리고 오랜시간 축적된 문화적 토양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말이된다. 사회복지와 경제적 안녕이 보장된 유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미각 체험을 도와준 부모를 만난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걸 뒤집으면 미국 여자들이 살찔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쉽게 풀이된다. 신생 미합중국은 척박한 문화적 토양을 딛고 속도와 경쟁을 내세워 최강대국이 됐다. 부모들은 편리함을 내세워 농장보다 공장에서 나온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였다. 콜라, 햄버거, 감자튀김과 같이 싸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이 환영받았다.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스트코와 월마트에 있다
농장에서 온 식품과 공장에서 온 제품 가운데 어느것이 건강할까?
결국 프랑스여자처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양과 요리에 대한 체험기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의 복구. 안정된 고용과 노동환경을 제공해주는 법적제도. 스트레스와 분노가 적은 사회 분위기 한마디로 유러피안 드림이다. '프랑스 여자'가 보이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다. 프랑스 여자가 살찌는 않는 가장 이유는 바로 프랑스에 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를 순전히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양 설파한다니 얼마나 못된 희망고문인가. 특히 한국전쟁 이후 자유와 선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틀을 이식받은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 이라는 면에서 미국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프랑스처럼 식량 자급도 100%를 달성할 대지도, 안정된 고용과 노동을 돕는 제도도, 사회적 안정망과 복지제도도, 2시간 동안 정찬을 즐길 삶의 여유도, 샴페인도, 치즈도 없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내 누이들의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이와중에 신기하게도 비쩍 마르기까지 했다. 여기에 유러피안 드림을 은근슬쩍 내비치며 '날 따라하면 너희도 똑같이 될 수 있어' 라고 권하는 이 '프랑스 여자' 가 나는 너무도 얄밉다.
총평을 하자면 '프랑스 여자' 는 꽤 잘 팔릴만한 내용을 담고있다. 운동처방 보다 식이조절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기호와 '프랑스' 라는 브랜드가 가져다 주는 막연한 동경이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인이 실천하기엔 이론과 실재 사이의 벽이 그 어떤 다이어트보다 크다. '프랑스 여자' 를 좇아 범인음식인 흰쌀밥을 체포하고 리크스프를 대신할 '대파국물' 한사발씩 들이키면 우리도 빠리지앵처럼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진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빵을 달라.
첨언
성정치학적으로 봤을 때 '제1세계 변두리에 사는 동양인 남자' 가 '제1세계 중심부에 사는 백인 여자' 의 논리에 공감하기란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정량적인 분석과 기전에 대한 논리적 설명대신 개인적인 경험과 피상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방식도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를 통해 큰 도움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어찌됐든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