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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고 들어가자면 저는 피터버거의 저작을 딱히 읽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 자신의 분야에서 선연한 족적을 남겼는지 알 길이 없군요. 이게 피터버거의 그냥 자서전도 아닌 '지적행보의 자서전' 을 표방하고 나선 책인만큼 그래도 그의 학문적 업적을 경애하거나 그가 밟아온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감동이 배가될 터인데 아 저에겐 그럴 가능성을 애초에 봉인하고 시작한 독서니 시작부터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순리대로라면 무작정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집어들고 읽기 전에 피터버거의 연구 논문이라도 한두편 찾아읽고 '음, 피선생은 이런 양반이셨구만!' 하고 사전지식을 쌓는게 도리겠습니다만 일단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무례는 피선생도 양해해주실 분이라 믿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 얻은 결론인데 피터버거 선생은 이 정도의 무례함은 충분히 '익스큐즈' 해줄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남다른 아량을 가진 '굿가이' 라 이겁니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따라붙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 입니다. 파인만씨의 경우도 한 분야에서 추앙받는 석학의 자서전이면서 대필작가가 대신 써준티가 뚝뚝 묻어나는 양산형 자서전의 형식을 벗어난 유쾌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 엑시덴탈 소셜로지스트와 쌍둥이 같습니다. 각기 전문분야는 사회학과 이론물리학으로 판이하지만 버거선생이나 파인만박사나 틀에 갇히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 합니다. 더불어 애초에 '아! 나에게는 이 길 뿐이야! 나는 00학자이 길을 가겠어!' 라고 결연히 떨쳐 일어선게 아니라 '아니 그냥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군요...' 라는 결론도 그렇습니다.


피터버거 박사는 나치를 피해 2차대전중에 미국으로 이민와 처음엔 루터교 목사가 되어 사목생활을 할 생각이었다지요. 그런데 목회자가 되기 전에 '교양' 차원에서 다니던 대학원 (거의 모든 수험이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사회인 대상이 야간 대학원) 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 재밌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지도교수를 만나 필드워크를 정하고 학위를 밟고 가다보니 사회학자가 되어 있더라, 마 이런 식 입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 분야의 석학소리를 듣게 되었다니, 거 참 자기 일이라고 말은 편하게 하는구만! 이라고 빠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노릇 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피터버거가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좋게좋게 표현했을 뿐이지 깊이 헤아려보면 결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거란걸 알 수 있을겝니다. 일단 그의 모교부터 '뉴스쿨' 이라는 아무런 학문적 자양분이나 상징자본을 갖지못한 야간대학원 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가 신선하고 창발적인 연구로 대중적 명성을 얻던 중년까지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주류학계는 그를 철저히 변두리의 학자로 규정하고 은근히 따돌려 왔던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널리 기억되고 또 거듭나게 할 수 있었던 저력은 과연 무엇이냐? 유머감각 입니다. 만년에 CURA에서 독자연구를 거듭하던시기 그가 낸 저서 <웃음의 구원성>에서 보여지듯 그는 명랑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만들어낸 친화력과 수용력이 그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겠지요.


그러니까 어쩌다 우연히 사회학자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건 '명랑' 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자기 자신이 직업에 대해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임을 명심합시다.


사회학자란?

가장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데 백만달러를 기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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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말하기에 참으로 애매한 책이로군요. 제목부터 단호하게 자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그렇게 뚝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걸 저자인 사사키 선생이나 저나 여러분이나 절실히 통감하고 있을 것 입니다. 일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과연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부터 갈피가 잡히지 않을 겁니다.


저자인 사사키 아타루의 약력을 훑어보고 고지식하게 '정신분석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어떤 의미에서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모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서간문의 꼴을 빌린 에세이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차라리 철학사 혹은 서양 중세-근대사 개론으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저자의 집필의도 - 저자인 아타루 선생의 의견에 따르면 어찌 감히 그렇게 함부로 텍스트의 진의를 잘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과감히 재단해 보자면 - 만 놓고 봤을 때 '기도하는그 손'은 근 10여년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소피의 세계' 와 닮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하룻밤의 철학우화' 같은 노골적인 부제를 달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훨씬 더 품위있고 자라나는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그런 책 입니다.


라깡의 '쥬이상스 - 향유, 향락, 쾌락등으로 번역되는 정신분석학적 개념. 고정된 역어가 없기 때문에 역자마다 표현이 바뀐다. 이 책에서는 향락에의 추구라고 번역되었습니다만' 와 같이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아무런 준비운동 없이 쏟아 놓는 통에 첫번째 장은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다소 어안벙벙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아주 일시적인 현상일 겁니다. 나머지 네개의 장을 읽어나감에 따라 다소 모호해 보였던, 사람에 따라선 매우 고압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던 첫장의 내용역시 큰 흐름안에 포섭되어갑니다.


아타루 선생은 태초 - 아 !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이 행성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던 20만년전부터 지금까지, 다섯번의 대멸절과 다섯번의 혁명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일깨우려 하는 겁니다. 혁명, 그것은 손에 돌을 쥔 성난 민중들의 피와 폭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그것은 혁명과 함께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임을, 오히려 그 밑에는 '文' 이라는 함축적인 언어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뿌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말입니다. 기존의 고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만큼이나 인류 역사에 있어서 큰 족적을 남겼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활자와 독일어 성경의 출현 역시 혁명인 겁니다. 국가라면 막스베버가 말한 '폭력의 사유화 금지' 내지는 ' 법전, 영토, 국민' 정도만 앵무새처럼 외우는 우리에게 교황과 카톨릭의 위계질서가 곧 근대(modern)적 국가의 씨앗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 아래는 모두 '文' 이라는 자양반이 밑받침 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섯가지의 혁명에 대해 논하는 다섯밤의 편지를 모두 읽고나면 명제는 자명해 집니다. 아타루는 몹시 낮은 자세로, 때에 따라선 고답적인 노교수가 연상될 정도의 목소리로 거의 성을 내며 계속해서 말하는 겁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어느날 과거를 버리고 떠나게 만들었던 그 목소리, 예언자 무함두가 대천사 지브릴에게서 들었던 그 목소리! 이꾸라! 이꾸라! 이꾸라! (Iqura : 아랍어로 '읽으라') 


태초부터 文이 위태롭지 않았던 시절이 없었으니 너는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다며 혀를 차는 애늙이는 처럼 굴지말고 그저 읽으라 읽으라 읽으라! 세계의 종말은 아직 요원하기만하니 너는 380만년 뒤의 영원을 기다리며 읽으라!


- 굳이 트집을 잡아보자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은 너무 짧아서 아쉽고 '아.. 이 대목은 제가 이전 책인 영원과 전장에서 아주 자세히 논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가 남발되어 아타루의 이전 저작인 '영원과 전장' 을 궁금하게 한다는 점 정도. 이 책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서 일어를 하지 않는 이상 딱히 읽을 방법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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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인문 파트는 인문/사회/자연과학에 예술까지 아우르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인문-사회 파트로 무게가 쏠리곤 합니다. 일종의 소수의견 개진이지만 그동안 등한시 되었던 영역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선정했습니다.
















데이빗 버스 - 진화심리학


드디어 번역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가!

진화심리학은 다들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분과다. 흥미롭고 분명 의미있는 학문이지만 분명 바르지 못하게 소비되고 있다. 몇몇 칼럼리스트의 탈을 쓴 '매문가' 들이 주워들은 단편적 지식을 입맛대로 편집하여 '대중교양' 입네 하고 선전하면 이걸 받아든 말지어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남자는 원래 이렇고 여자는 원래 저렇다' 는 식의 싸구려 연애상담 용으로 악용하는 게 전부다. 이미 과학의 체계를 모방한 모종의 사이비과학처럼 소비되고 있다.


("털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나 정자전쟁이 그 대표적인 경우 되겠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단 진화심리학 자체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신생학문이기도 하거니와 특히나 국내엔 제대로된 개론서나 학습서가 출간되지 않은 이유가 크다. 털없는원숭이 같은 가쉽수준의 교양서가 뭔가 대단한 지적발견인양 떠받들여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그럼 뭘 읽어야 하는데요?; 라고 반문하면 답해줄 말이 없는 것이다. '이게 좋은데 아직 번역이 안됐구요..영어가 되시면 000의 책을 한 번 보시면' 하는 말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런데, 드디어 데이빗 버스의 "진화심리학" 이 완역된 것이다.

제목부터 짧고 힘이 넘치는 진화심리학. 이 책은 사실 학부교과서로 쓰이는 전공서적이지만 그 안에 예시된 흥미로운 사례며 단단한 학문적 체계에 대한 소개까지 '대중교양' 이나 '입문서' 로 손색이 없다. 진화심리학이라고 포탈사이트 검색 엔진에 검색해서 나온 몇가지 일화적인 우화나 편집된 사례들을 수집하던 이들이 이제 손을 멈추고 이 책을 봤으면한다.





















스펜서 웰스 - 판도라의 씨앗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시시대하면 헐벗고 굶주린 모습을 떠올린다. 여기에는 '신석기 혁명' 을 주장한 고든차일드(Gordon Childe)의 공이 크다.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자. 국사시간 제일 첫장에 등장하는 이 신석기 혁명이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 즈음 인류는 농경을 시작했다. 이로인해 정착생활이 시작되었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했다. 삶은 풍족해졌고 이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계급의 분화가 발생했다. 특히 농경을 통한 생산력의 폭발적 증가를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 근대 고고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고든차일드의 '신석기 혁명(농업혁명)' 이론은 20세기 초에 첫등장한 이래 줄곧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다. 집도절도 없이 유리걸식 하던 원시인들이 농경을 통해 비로소 삼시세끼를 챙겨먹을 수 있게 됐다는 가설은 몹시 그럴듯 했다. 하지만 후대의 고고학적 탐사발굴이 이어지면서 거장의 이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굶주린 구석기와 배부른 신석기라는 구도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빈포드의 신고고학이 정착한이래로 이미 학계와 전공자들 사이에선 '굶주린 구석기 VS 배부른 신석기' 구도가 깨진지 오래다. 총균쇠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농경의 시작을 '인류사상 최악의 실수' 라고 규정한게 벌써 20년전 이야기다.


그러나 여전히 국사 교과서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신석기 혁명론의 잔영을 걷어낼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농경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왜인가 궁금해진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판도라의 씨앗을 읽고 왜 농경이 판도라의 상자임을 알게 되었다면 시선은 자연히 구석기 다이어트로 옮겨간다.  이미 팔레오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10여년간 널리 퍼진 구석기 다이어트가 이제야 국내에 번역되었다. 두 책이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나왔으니 이것이야말로 우연을 가장한 필연 아니겠는가.


그저그런 살빼기용 저탄수 다이어트가 아니다. 고고학과 고병리학 문화인류학에서 농경이전의 환경 복원을 통해 '종' 으로서의 인간 본연의 식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 펠레오 다이어트. 

















약 2년전 SBS를 통해 방영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다큐 '옥수수의 습격'. 단순히 식물성은 좋고 동물성은 나쁘다는 20세기식 이분법에서 벗어나 지방산 불균형을 지적한 의미가 깊은 영상이었다.  이후 책으로도 출간되어 국내의 오메가3 열풍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엔 밀가루다. 선정적인 제목이 그저 평범한 다이어트 서적처럼 보이겠지만 - 아마도 판매량과 홍보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출판사의 고민이 엿보인다 - 이 책은 옥수수의 습격과 같은 기업적 단일작물 경작이 인류, 더 나아가 지구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경고하고 있다. 밀가루의 습격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특히 쌀로 대표되는 정제탄수화물, 단순당질에 필요이상으로 식단을 의존중인 한국인들은 한 번쯤 읽어보고 자신의 생활과 건강을 재평가해보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강남좌파' 와 정확히 역행하는 '달동네 우파' 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있는 사회적 탐구. 물론 미국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의 달동네 우파 문제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레드 컴플렉스' 가 빠져 있지만 유의미한 틀이다.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기호 1번에 열광하는지 진단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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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시선 2012-07-0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신간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 사회적 관심사와 시의성이 딱 맞아 떨어지는 추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천 도서의 흐름이 심리와 신체, 진화, 인간의 사회활동의 정점이 정치의 문제까지 무엇인가 관통하는 흐름이 있어 좋네요. 7월 저의 구매 책 구매 리스트를 이번엔 충무쌍용님의 추천에 한번 걸어 봅니다^^ 좋은날 되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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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e the money! 돈 없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

"Give me the moncey! 돈만주면 다 되는 세상 "


한창 흐름을 타고 있는 유행가 가사가 이러하니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 하나 덧붙여 물신숭배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가히 짐작 가능하다. 이러한 시기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내한해 가는 곳마다 청중을 몰고다니고 언론이 이를 실시간 중계하고 있으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샌델이 말하는 정의나 시장의 참 뜻을 이해하고 있다기보니 그저 하버드대 교수라는 직함에 부화뇌동 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대한민국에서 학벌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제목만 놓고 봤을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틱낙한이나 달라이 라마류의 무소유의 행복론인양 착각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 처럼 정의의 연장선에 있다. 시장이 지배하게 되고 모든 가치가 화폐라는 정량적이고 추상적인 기호로 환산되는 시대에서 올바른 선을 찾아 탐구하는 내용이다.  그 과정은 시장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사례중심이고 그 방법은 샌델의 트레이드 마크인 '공자(孔子)' 식 문답법이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면서 족집게 입시 강사마냥 이것은 이러하고 저것은 저러하다며 포인트를 짚어준 적이 없다. 고사(예화)를 제시하고 묻고 답하면서 배우는 이가 스스로 깨우치게했다. 공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하고 수렁에 빠지는 이도 있는가하면 자기가 답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품고 있던 자기모순과 오류를 발견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자(馬子)선생께서 제시하는 우리시대의 예화는 다음과 같은 것 들이다. 특히 이들 사례들은 상당부분 외국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당부분 '그건 좀 아니다' 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얻고 있는 것들이나 그러나 해외에서는 실존하는 사례들이고 신자유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심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상과 멀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인도 여성의 대리모 서비스로  6250달러가 지불된다. 현재 국내에서 연구 실험과 같은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대리모나 난자를 매매하는 행위는 위법으로 간주된다.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국내 법규가 미비하여 정자를 매매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법적 규제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대리모는 위법이지만 대리부는 불법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인도의 대리모 제도를 그냥 허투로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돈을 내고 아이비리그와 같은 명문대 입학권을 얻는다. 이 때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적으로 2억원 정도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런 방식으로 예일대에 입학했다. 현재 교육부가 20년 가까이 고수해오고 있는 3불 정책에 따라서 대학 본고사 금지, 고교 등급제 급지, 기부금 입학 불허는 국내에서 일종의 '정의' 로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학벌을 '공정하게 노력해서 얻는 학벌사회에서의 수급' 으로 여기는 이들의 관점이지 돈이 되는 사람과 (그리고 자신의 위신, 재산을 그대로 자녀에게 이식해 주고 싶어하는 이들) 돈장사를 원하는 대학은 오랫동안 기부금 입학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었다.


이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마음이다. 샌델은 '친구나 배우자의 기념일 선물로 현금을 주는 것이 좋을 까 선물을 직접 골라서 주는게 좋을까' 라는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가 현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이미 화폐는 단순한 기호를 초월한 상태다. 


결국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벽은 사라지고 있으며 이 현상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공자의 질문에 스스로를 성찰하던 제자 자로의 발견이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읽어야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않는 이상 깨우칠 방법이 없다. 시대의 스승 샌델의 저인망 그물같은 사고의 촘촘함 속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 거기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자신을 발견하기 바란다.


아, 끝으로 이 책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믿는 대기업 CEO들이 추천해서 그들의 부림을 받게될 대학생들이 열성적으로 찾고 있다는 현실이 진정한 희극이다.


-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아주 쉽게 풀어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해제로 이해될 수도 있다. 칸트를 이해했다는 사람은 지성인임을 자부해도 좋다는 말들을 여럿이 한다. 샌델의 저작을 읽고 난 다음에는 칸트에 한 번 다시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독서일 것이다. 그래도 칸트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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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 개정판
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최진성 옮김, 이다도시 감수 / 물푸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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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

" The Main difference between Europe VS USA "


유럽판 다비드와 대조적인 미국판 다비드의 후덕함이 당혹스럽다. 이 합성 사진은 영문웹에 널리 퍼진 우스개로 OECD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미국 (비만율 34.4%, OECD가입국 1위)을 꼬집고 있다. 하필 비교대상이 유럽인 이유는 비만율이 낮은 가입국들이 대거 유럽(스위스 7.7%, 노르웨이 9.0%,이탈리아 10.2%, 프랑스 11%) 에 포진해 있는 까닭. 때문에 미국에선 한 때 '프랜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가 큰 화제가 되었고 와인붐이 일었다. 프랜치 패러독스란 엥겔지수가 뒤집힐 정도로 식도락에 탐닉하지만 막상 비만인구 비율은 10% 정도에 불과한 프랑스의 사정을 두고 만들어진 말이다. 먹어도 살안찌는 프랑스의 역설을 보고 미국은 이렇게 생각했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얘들은 매일같이 와인을 먹는다? 우리도 와인을 먹자? 그럼 우리도 날씬해질 것이다? 우와아앙!'  


그렇게 늘어난 와인소비는 비만의 수렁에서 미국을 건져주지 못했다. 프랜치 패러독스는 와인 한두잔 같은 단선적인 이유로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그 밑에는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촘촘히 자리하고있다. 이를 풀어나갈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책이 바로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하 프랑스 여자) 다. '프랑스 여자' 는 단순한 식이조절을 넘어서 생활습관 전반을 아우르는 행동변화를 강조한다. 저자 길리아노가 누차 힘주어 말하는 살빼기 비결은 단순히 프랑스 여자처럼 먹는 데 있지 않다. 더 나아가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갈 때 진정한 건강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사는 게 프랑스 여자처럼 사는 길일까? 스스로 프랑스 여자이기도 한 저자 길리아노의 삶을 들여다보자.





저자  Mireille Guiliano


길리아노는 프랑스 태생의 재미 기업인이었다. 뤼이비똥(LVMH)계열사인 샴페인 브랜드 뷔브 끌리꼬(Veuve Clicquot)가 설립된 1984년부터 20년 가까이 재직하며 대변인과 CEO를 연임했다. 그녀는 제법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직업적 성공 외에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면모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60줄의 나이(1946년생)에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정력과 건강이었다. 자연히 그녀의 주변엔 젊게 사는 비결이나 건강법을 물어오는 미국 여자들이 많았고 길리아노의 조언에 힘입어 환골탈태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2004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설파하는 책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를 내놓았다. 책은 이내 곧 37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덕분에 지금 길리아노는 회사에서 물러나 방송과 강연에만 집중하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저자의 이력이 이러한 만큼 책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뚱뚱한 미국여자들에게 전하는 날씬한 프랑스 여자의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연 그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프랑스 여자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이 건강법은 어떤 내용인가? 




1. 영양과 섭생


먼저 영양과 섭생에 관련된 부분부터 살펴보자. 건강관련 서적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 전공 서적 마냥 도표와 전문용어로 도배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 여자..' 는 정말로, 정말정말 쉽게 쓰여져있다. 대놓고 말하자면 전문성이 부족해 보일정도로 일상의 언어와 사례만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이것이 겁 많고 끈기없는 대다수의 다이어터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여자는 헤어스타일과 샴페인 한 병, 그리고 아주 근사한 향수가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338p)" 와 같은 다소 뜬구름 잡는식의 문장들을 가지치기하면 아래와 같은 큰 줄기가 남는다. 



살찌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범인음식과 생활습관 탓이다


먼저 당신의 식단에서 살찌게 하는 범인음식을 찾아라


범인음식의 섭취를 줄이고 다음과 같이 먹는다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 끊기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 금식 피하기

-양은 줄이되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기

-자연산재료, 제철과일등을 이용해 직접 요리해서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피트니스 클럽에 가는대신 생활 속 활동량 늘리기


스트레스 피하기


긍정적인 태도 가지기


자신감 있게 생활하기


이제 당신도 프랑스 여자처럼 살찌지 않는다!


이 원칙들을 기존의 영양학과 감량법에 비추어 해석해보자. 먼저 범인음식이라는 개념이다. 저자인 길레이유는 살아가면서 딱 한 번 '감자포대' 같은 뚱뚱보가 되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해 가족과 떨어져 미국과 빠리에서 유학했던 시절이다. 여기엔 크게 세가지 원인이 있었다. 먼저 탐욕과 소비의 땅 신대륙에 그녀 스스로 몸을 던져버린 것이다. 홈스테이 기간동안 길레이유 역시 미국인들처럼 정크푸드의 3대 영양소로 불리는 설탕,소금,전이지방을 만끽했다.


두 번째는 탄수화물이다. 미국에서 1년만에 뚱보가 되어 돌아온 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 부모를 뒤로하고 그녀는 대학입시를 위해 빠리로 떠난다. 독거와 자취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자취생인 그녀는 맛있고 편하다는 이유로 빵을 즐겨 먹었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이 주식이 되면서 길레이유의 몸매는 더욱 망가졌다.


마지막 세번째 이유는 위의 두가지 이유를 포괄한다. 미국과 빠리에 머물면서 그녀의 생활습관이 크게 변했던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총체적인 이유다. 이는 비단 프랑스 여자가 아니더라도 학업이나 취직등의 이유로 독거를 갓 시작한 젊은 여자라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섭생과 건강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해본적 없다 하루아침에 스스로 식사를 책임지게 됐다. 이로인해 가정식이나 학교급식을 통해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지켜왔던 식사주기와 식사량이 깨진다. 금전적 이유나 편리함에 밀려 편식, 폭식, 금식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 결과는 급격한 체중변화로 나타난다. 


이처럼 범인음식이란 '살찌기 쉬운 음식들' 의 또다른 이름이다. 덧붙여 범인음식을 즐기는 태도 또한 살을 찌우는 숨은 공신임을 알 수 있다. 


자 이랬던 길레이유는 고향에 돌아와 가족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살빼기에 성공했으며 그뒤로 줄곧 '프랑스 여자 답게' 살아왔단다. 그렇다면 이제 '프랑스 여자' 에서 제시된 '살을 빼는 방법'들을 살펴보자. '설탕, 소금, 전이지방' 으로 들어찬 가공식품, 청량음료, 패스트푸드를 끊어야 하는 필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상식이다. '프랑스 여자' 는 위와 같은 범인음식과 연을 끊고 대신 '리크스프(Leek Soup)'를 장복하도록 권한다. 다음은 리크스프에 대한 설명이다. 


'리크는 아주 영양가가 높은 음식으로 배뇨작용을 촉진하고48시간 정도 먹으면 입맛이 바뀌고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2p)'.  






리크가 뭐냐고? 

짜잔 

~ 바로 이거란다

제이미 올리버가 들고 있는 저 '서양대파' 가 바로 리크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대파 우린 육수' 를 한사발씩 떠마시며 몸의 수분을 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째 낯이 익다. 세간에 여러차례 오르내린 이른바 '디톡스 다이어트' 와 같은 방법이라서다. 비슷한 방식인 일명 마녀스프(cabbage soup)가 몇 년전 대유행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참고로 우리가 마녀스프라고 부르는 음식 역시 '프랑스 여자'의 추천 레시피 가운데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책에는 '스프 오 레귐 드 마망 (엄마의 야채수프)'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조리법은 영락없는 미네스트로니(마녀스프의 원조격인 이탈리아풍 야채스프)다.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먹기, 폭식이나 금식에 주의하며 천천히 먹기, 물을 많이 마시기 같은 지침도 수많은 다이어트들이 공유하는 상식적인 것들이다. 몸이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조금씩 여러번에 나누어 먹는 것은 일정한 카타볼릭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디빌딩 식단과 맥을 같이한다. 식이제한에서 오는 지나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가끔씩 초콜릿과 같은 범인음식도 즐기라는 지침은 뇌를 속이는 '치팅밀(Cheating Meal)' 과 같은 방법이다.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의 지침들은 기존의 다이어트 법들과 일맥상통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원푸드 다이어트로 시작하고 식사량을 줄여가는 것 때문에 자칫 영양 불균형을 걱정할 수도 있지만 길리아노는 제법 튼튼한 안전장치를 심어놓았다. 특히 생선과 요거트를 권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둘 다 고단백 식품으로 채소 중심 식단이 빠지기 쉬운 '동물성 단백질'을 채워준다. 생선의 경우 불포화 지방 또한 풍부해 혈액순환에 좋다. 요거트는 발효과정에서 유당이 분해되기 때문에 우유를 못먹는 이들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또한 점성으로 인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양감(Body)이 느껴져 '먹는다' 는 보상심리를 채워준다. 우유와 영양 성분은 비슷하지만 여러모로 다이어트에 유리하다.


결론을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는 원리에 대한 설명은 부실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다.




2. 문제


그러나 '프랑스 여자' 가 훌륭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프랑스 여자' 는 거의 의도적으로 운동처방을 배제하고 있다. 저자는 '프랑스 여자는 헬스장에 가지 않는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도 낭비된다. 프랑스 여자는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며 전철역까지 뛰어다니는 걸로 운동을 대신한다' 는 논리를 내세워 운동처방은 무시 당한다. 하릴없이 런닝머신위에서 소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이들에겐 나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내세워 운동처방의 가치 자체를 폄훼하는 우를 범해선 곤란하다.


운동을 통한 체지방 연소는 식이조절을 통한 감량에 가속도를 붙여주는 기폭제다. 뿐만 아니라 근육량과 대사량을 늘리는 체질개선을 통해 요요현상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더욱 건강하고 활력있는 삶을 만들어준다. 특히 일상 생활속에서 육체활동 기회를 박탈당해가고 있는 사무직 여성들은 따로 시간을 내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면 감량과 건강에 큰 도움이된다.


책의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국내사정과 어긋나는 내용도 많다. '프랑스 여자' 에는 40여가지에 달하는 식이조절용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으나 한국땅에선 태반이 무용지물이다. 리크를 대파로 대체하는 등의 현지화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염소젖 치즈를 곁들인 토마토 플래터' 같은 건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닭고기를 와인에 재워 졸이는 '꼬꼬뱅'이나 머랭을 카스타드 크림에 익혀내는 '일 플로따' 같은 요리가 프랑스인의 관점에선 가정식일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별식이다. 조금 더 말해보면 사실 레시피 설명 자체가 불친절하다. 크로아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파이지 3절 접기를 사진 한 장 없이 글로만 설명해 놓았는데 과연 제과제빵 경험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이게 무슨 소용일까?  입장바꿔 만일 내가 참고사진 한 장 없이 오직 텍스트로 설명된 김치 담는 법을 프랑스 인에게 내민다면 이 역시 무용지물일 것이다. 이 문제는 '프랑스 여자'에 적합한 레시피들만 따로 다룬 별도의 쿡북(Cookbook)을 출간해 해결한 듯 하지만 국내엔 번역되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프랑스의 재래시장 마르쉐


유럽과 동떨어진 사회구조 역시 한반도에서 이 책의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마르쉐(재래시장)나 친지를 통해 신선한 제철재료를 수급하라는 지침은 우리네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에서 재래시장을 보호관리하는 프랑스와 달리 대한민국의 재래시장은 벼랑끝에 몰려있다. 입지도 그렇거니와 상품구성 또한 신선식품과 로컬푸드를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산 농산물이 활개치고 있는 실정이다. 식량 자급도가 100%에 육박하는 프랑스에서는 제철에 맞춘 자연산 과일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지배하는 한반도다. 딸기는 무릇 여름이 제철이건만 이제 겨울이 아니면 장에서 딸기 구경조차 할 수 조차없다.


이렇듯 유럽과 거리가 먼 우리네 속사정 때문에 '프랑스 여자처럼 살아가라' 는 주문은 급기야 서글퍼지는 것이다.



3. 프랑스여자처럼 살기위하여


한국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먹기란 어려운 일이다. 노력한다면 흉내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위계적인 조직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에서 프랑스를 닮겠다며'프랑스 여자는 모두 고집이 세고, 단체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358p)'는 지침을 실천할 수 있는이 누가 있을까?


글머리를 OECD 통계로 열었으니 한 번 OECD 통계로 닫아보자. 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뚱뚱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렇다면 가장 날씬한 나라는 어디일까? 프랑스가 아니다.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의 인구 비만율은 3.3%로 OECD에서 가장 낮다. 대한민국은 OECD에서 가장 날씬한 나라다. 그것만 일등이 아니다. 한국여자는 OECD에서 가장 많이 일한다. 여성 노동자 10명중 4명이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며 같은 일을 하고도 남성노동자의 62% 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는다.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할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아예 일하지 못하는 여자들이 더 많다. 대한민국의 여성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에서 꼴지고 반대로 여성 자살률은 1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프랑스 여자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벌면서 훨씬 마른 한국 여자들에게 대뜸 프랑스 여자처럼 엣지있게 살라고 주문하는 건 마리앙투아네트 같은 짓이다. 


- 이상 한국 여성의 노동시간과 환경에 대한 자료는 "여성정책연구원, 'OECD 주요 통계로 본 한국 여성의 삶과 지위' 2009.7" 를 참조



한국적인 삶을 한 번 그려보자. 빡빡한 점심시간을 쪼개 식당가를 찾았다. 월급은 오른 적이 없건만 계속 오르는 물가에 매번 점심시간은 고민의 연속이다. 결국 오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오천원 백반집에 앉아 밥상을 기다린다. TV에선 앙상한 몰골의 걸그룹들이 연신 흐느적 거린다. 나도 저렇게 뼈다리는 못될 지언정 살은 빼야 할텐데, 작년에 산 스키니가 어째 뻑뻑하더라..관리를 받을까, 아니야 그것도 다 돈인데, 다이어트만 잘해도...하는 사이 밥 한공기 뚝딱 비워진다. 반찬이 많이 남았는데 한 공기 더 시킬까...그래 내가 무슨 다이어트를. 점심시간이 이렇게 끝나간다. 식후땡으로 자판기 커피라도 뽑아들고 광합성하려면 슬슬 일어나야한다. 그런데 이게 사는건가?


엥겔지수가 역전될 정도로 잘먹고도 살이 찌지 않는 프랜치 패러독스의 비밀은 와인이 아니라 생활습관에 있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태도로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2,3분만에 나오는 패스트푸드 대신 두세시간에 걸쳐 서빙되는 '프랜치 다이닝' 을 느긋하게 음미할 여유가 있어서 살이 안찐다. 신선한 제철과일과 제대로된 쇼콜라를 흠향하는 지혜를 할머니에게서 전수 받았기 때문에 살이 안찐단다. 즉 프랑스 여자가 살찌지 않는 이유는 제1세계의 경제적 풍요와 안정된 사회시스템, 그리고 오랜시간 축적된 문화적 토양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말이된다. 사회복지와 경제적 안녕이 보장된 유럽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다양한 미각 체험을 도와준 부모를 만난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이걸 뒤집으면 미국 여자들이 살찔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쉽게 풀이된다. 신생 미합중국은 척박한 문화적 토양을 딛고 속도와 경쟁을 내세워 최강대국이 됐다. 부모들은 편리함을 내세워 농장보다 공장에서 나온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였다. 콜라, 햄버거, 감자튀김과 같이 싸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이 환영받았다.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스트코와 월마트에 있다

농장에서 온 식품과 공장에서 온 제품 가운데 어느것이 건강할까?


결국 프랑스여자처럼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영양과 요리에 대한 체험기회.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의 복구. 안정된 고용과 노동환경을 제공해주는 법적제도. 스트레스와 분노가 적은 사회 분위기 한마디로 유러피안 드림이다. '프랑스 여자'가 보이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다. 프랑스 여자가 살찌는 않는 가장 이유는 바로 프랑스에 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를 순전히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양 설파한다니 얼마나 못된 희망고문인가. 특히 한국전쟁 이후 자유와 선진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틀을 이식받은 대한민국은 '속도와 경쟁' 이라는 면에서 미국에도 뒤쳐지지 않는다. 우리에겐 프랑스처럼 식량 자급도 100%를 달성할 대지도, 안정된 고용과 노동을 돕는 제도도, 사회적 안정망과 복지제도도, 2시간 동안 정찬을 즐길 삶의 여유도, 샴페인도, 치즈도 없다.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내 누이들의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이와중에 신기하게도 비쩍 마르기까지 했다. 여기에 유러피안 드림을 은근슬쩍 내비치며 '날 따라하면 너희도 똑같이 될 수 있어' 라고 권하는 이 '프랑스 여자' 가 나는 너무도 얄밉다.  

 

총평을 하자면 '프랑스 여자' 는 꽤 잘 팔릴만한 내용을 담고있다. 운동처방 보다 식이조절을 선호하는 대중들의 기호와 '프랑스' 라는 브랜드가 가져다 주는 막연한 동경이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인이 실천하기엔 이론과 실재 사이의 벽이 그 어떤 다이어트보다 크다. '프랑스 여자' 를 좇아 범인음식인 흰쌀밥을 체포하고 리크스프를 대신할 '대파국물' 한사발씩 들이키면 우리도 빠리지앵처럼 살 수 있을까? 차라리 진짜 프랑스 여자처럼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빵을 달라.


첨언

성정치학적으로 봤을 때 '제1세계 변두리에 사는 동양인 남자' 가 '제1세계 중심부에 사는 백인 여자' 의 논리에 공감하기란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정량적인 분석과 기전에 대한 논리적 설명대신 개인적인 경험과 피상적인 감상을 늘어놓는 방식도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이 프랑스 여자 다이어트를 통해 큰 도움을 받은 분들이 있다면 어찌됐든 그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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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