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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 피터 버거의 지적 모험담
피터 L. 버거 지음, 노상미 옮김 / 책세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글을 시작하기 전에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고 들어가자면 저는 피터버거의 저작을 딱히 읽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학자인지, 자신의 분야에서 선연한 족적을 남겼는지 알 길이 없군요. 이게 피터버거의 그냥 자서전도 아닌 '지적행보의 자서전' 을 표방하고 나선 책인만큼 그래도 그의 학문적 업적을 경애하거나 그가 밟아온 길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감동이 배가될 터인데 아 저에겐 그럴 가능성을 애초에 봉인하고 시작한 독서니 시작부터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순리대로라면 무작정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집어들고 읽기 전에 피터버거의 연구 논문이라도 한두편 찾아읽고 '음, 피선생은 이런 양반이셨구만!' 하고 사전지식을 쌓는게 도리겠습니다만 일단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무례는 피선생도 양해해주실 분이라 믿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에 얻은 결론인데 피터버거 선생은 이 정도의 무례함은 충분히 '익스큐즈' 해줄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남다른 아량을 가진 '굿가이' 라 이겁니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따라붙는 책이 한권 있습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 입니다. 파인만씨의 경우도 한 분야에서 추앙받는 석학의 자서전이면서 대필작가가 대신 써준티가 뚝뚝 묻어나는 양산형 자서전의 형식을 벗어난 유쾌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 엑시덴탈 소셜로지스트와 쌍둥이 같습니다. 각기 전문분야는 사회학과 이론물리학으로 판이하지만 버거선생이나 파인만박사나 틀에 갇히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 합니다. 더불어 애초에 '아! 나에게는 이 길 뿐이야! 나는 00학자이 길을 가겠어!' 라고 결연히 떨쳐 일어선게 아니라 '아니 그냥 하다보니 재미있어서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군요...' 라는 결론도 그렇습니다.


피터버거 박사는 나치를 피해 2차대전중에 미국으로 이민와 처음엔 루터교 목사가 되어 사목생활을 할 생각이었다지요. 그런데 목회자가 되기 전에 '교양' 차원에서 다니던 대학원 (거의 모든 수험이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사회인 대상이 야간 대학원) 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 재밌어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지도교수를 만나 필드워크를 정하고 학위를 밟고 가다보니 사회학자가 되어 있더라, 마 이런 식 입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한 분야의 석학소리를 듣게 되었다니, 거 참 자기 일이라고 말은 편하게 하는구만! 이라고 빠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노릇 입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피터버거가 타고난 친화력과 유머감각을 발휘해서 좋게좋게 표현했을 뿐이지 깊이 헤아려보면 결코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거란걸 알 수 있을겝니다. 일단 그의 모교부터 '뉴스쿨' 이라는 아무런 학문적 자양분이나 상징자본을 갖지못한 야간대학원 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가 신선하고 창발적인 연구로 대중적 명성을 얻던 중년까지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주류학계는 그를 철저히 변두리의 학자로 규정하고 은근히 따돌려 왔던 겁니다. 그럼에도 그를 널리 기억되고 또 거듭나게 할 수 있었던 저력은 과연 무엇이냐? 유머감각 입니다. 만년에 CURA에서 독자연구를 거듭하던시기 그가 낸 저서 <웃음의 구원성>에서 보여지듯 그는 명랑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만들어낸 친화력과 수용력이 그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겠지요.


그러니까 어쩌다 우연히 사회학자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건 '명랑' 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자기 자신이 직업에 대해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임을 명심합시다.


사회학자란?

가장 가까운 유곽을 찾아가는데 백만달러를 기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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