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 변해야 교회가 산다 밀알 아카데미 12
필립 클래이튼 지음, 이세형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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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체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활동방식은 보수적인 방식과 진보적 방식으로 구분된다. 진보적 방식으로 교회를 개혁하고자 저자는 꾀한다. 진보적 신학자가 교회에 관심없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은 이 책을 읽고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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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활 - 창간호 - 2013 7-8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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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창간호라고 하니 사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사서 읽고 있다.

필자의 면면이 참으로 다채롭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진경, 김상봉, 이택광, 박노자, 가라타니 고진, 지젝 등

이건 우리나라에서 진보적인 얘기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부른 것 같다.

앞으로 이 잡지가 단순히 진보 담론 소개지로 갈지,

아니면 어떤 지향점을 독자에게 제시하게 될 지

궁금해 진다.

 

잡지 안에

홍세화 발행인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대담이 실려 있다.

이 땅의 지배 세력에 저항하는 홍세화 발행인,

아예 다른 틀을 제시하는 김종철 발행인.

나는 김종철 씨의 발상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창간호 만으로 잡지의 모든 것이 평가될 수 없겠지만,

오랜만에 무언가 작은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은 잡지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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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지혜 동문선 현대신서 14
알렝 핑켈크로트 지음, 권유현 옮김 / 동문선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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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알랭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라는 책을 읽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정말 좋은 입문서다. 이런 좋은 입문서를 왜 진작에 알지 못했을까?
대학원에서 레비나스와 바흐친 세미나를 할 때 레비나스를 좀처럼 이해, 공감할 수 없었다. 위협적인 타자 앞에서 어떻게 윤리를 우선시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가끔씩 <Totality and Infinity>를 한 쪽씩 읽어 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생겼다. 나이를 먹다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지긴 하더라.

우리가 잘 알다시피 레비나스의 새로움은 정치의 세기에 도덕을 말한 점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도덕의 주소를 '이동'시킨 점에 있다. 선을 종국 목표(유토피아의 천국에, 역사가 완결한 빛나는 미래)에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시작(타인과의 만남이라고 하는 태고적의 경험)에 위치시킨 점에 있다. 대타적 존재의 원래 의미는 투쟁이 아닌 윤리이다. 타인과의 대면은 우리에게 책임감을 느끼에 할 뿐 투쟁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나와 대결하기에 앞서서, 얼굴은 나를 부른다. 마치 자기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라도 되는 듯이. "윤리적 관계는 여러가지 자유의 출현에 선행한다. 또 헤겔이 말하는 역사의 동인이 되는 전쟁에 선행한다."(레비나스) 이 말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이 모두 평화로웠다는 말이 아니다. 사실 "윤리적 폭력"이 의식의 충돌이나 적대관계보다 선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선은 나를 사로잡고, 내 동의 없이 내게 부과된다. 내가 선을 선택하기 이전에, 그것이 나를 선택하였다. 나는 그것에 복종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도망갈 수는 없다. 악이라고 해서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고, 타자의 얼굴에 대해서 느끼는 구속을 단절하거나 거절할 수도 없다. "악은 바로 죄이다. 본의 아니게 책임을 회피한 것에 대해서 져야 할 책임이다. 악은 선의 옆이나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지 않고, 다음 자리에, 선보다 한결 낮은 곳에 위치한다."(레비나스)<사랑의 지혜, 31쪽)

아무도 읽지 않을 긴 인용문을 옮겼다. 나는 너무 좋다. 레비나스를 너무 잘 정리한 문단이다. 타자의 얼굴 앞에서 나는 책임을 지라는 윤리적 명령("윤리적 폭력")을 받는다. 그것이 시작이다. 타자가 어떤 나쁜 놈일지라도 나는 윤리적 명령 앞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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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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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에 한국사회에 대단히 심하게 바뀌었고,

병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저자의 의견에 100% 공감한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모든 사람을 생존경쟁에 몰아넣고,

경쟁에서 '살아남기'으려면 미친듯이 뛰어야만 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동의한다.

우리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그 말이 맞다.

힘들어하는데, 왜 힘들어하는지 모르고,

이 힘듦이 자신의 삶에 행복을 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냥 매일매일이 힘든 인생이다.

그냥 남들보다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악박감 속에서 산다.

 

저자의 주장이 맞다.

그 경쟁의 불안, 생존 보장 미흡의 불안이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가져온다.

 

그런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제시하면서도

근거 제시에는 미흡하다.

사대주의를 설명하고자

몇백년 전의 역사까지 올라가는 것은 심하다.

물론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얼마든지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심리학자의 사회심리학적인 책 아닌가.

그렇다면 사소한 주장을 하나 하고자 해도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안 그러면, 술자리의 푸념이 되어 버린다.

 

그의 주장에는 거의 대부분 공감을 하는데,

이 사회에 대한 걱정, 분노가 가득하여 학문적 침착함을 잠깐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런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별 두개.

 

공감하며 읽었지만,

남들에게 추천하기는 뭣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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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 갤리온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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홰외여행, 외국유학 별로 부럽지 않다.

그 돈과 시간이면 국내 일주를 해보고 싶다.

나는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코너 우드먼은 부럽다.

외국으로 나가서

현지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목격하고,

전세계적인 시각에서 그 아픔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며 대안을 고민할 수 있다면,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

 

콩고의 주석, 라오스의 고무, 나카라과의 바닷가재에

그 나라 사람들의 목숨이 들어가 있고,

우리는 그 사람들의 목숨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하고 있다.

내 한 목숨 살자고 그들의 목숨을 소비한다.

이게 세계화구나.

인간은 죄인이 맞구나.

 

이 책을 보면

이미 제1세계의 기업들이 세계 곳곳을 자원 식민지화 한 상태이고,

또 1세계 기업들의 공백을 중국이 차지하여 자원 식민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원 식민지, 참 무서운 일이다.

전통적 삶의 방식 파괴, 제국에 종속.

새로운 삶의 질서 확립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이 일 때문에 필요할 것인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슬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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