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 신념을 넘어 서로에게 연결되고 싶은 비건-논비건을 위한 관계 심리학
멜라니 조이 지음, 강경이 옮김 / 심심 / 2022년 5월
평점 :

언제나 마음은 비건을 지지하지만 실천을 못하는 이유는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주 예전에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고 3개월 정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돼지들이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모습을 본 게 계기였다. 돼지들의 몸은 온통 채찍을 맞아 빨갛게 상처가 나 있었고, 눈은 가스가 찬 질식할 것 같은 비좁은 공간 속에서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더 이상 예전처럼 즐겁게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내 삶은 엄청나게 불편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고, 내 신념을 밝히면 그럼 식물은 안 불쌍하냐는 식으로 조롱했다. 함께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면 동물성 고기가 안들어간 음식을 찾기 어려워서 밑반찬만 먹어야 했고,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너 때문에 밥을 어떻게 차려야할 지 모르겠다며 나를 불편해했다.
내 생활은 급속도로 쪼그라 들었고, 결국 억지로 버티고 있던 내 비건 생활은 삼겹살 외식에 동참하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서 오랫동안 비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든다. 그들이 겪었을 소외와 좌절이 그려져서. 보통 나같이 나약한 사람은 하루도 버텨내지 못할 단절을 이겨내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라는 다정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비건과 논비건이 서로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신념을 넘어 서로에게 연결될' 수 있게 돕는 관계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멜라니 조이는 전작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을 통해 동물 복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작가다. 비건 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사회 심리학자로 '관계 코칭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비건과 논비건이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법을 설파한다.
책은 비건과 논비건의 관계로 주제를 한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한 내용은 서로 다른 신념과 생각으로 갈등을 빚는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저자는 어떤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이며 이런 관계는 안정감과 교감 위에서 자란다고 말한다. 안정과 교감을 위해 필요한 건 진정성이다.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연민하고 공감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진실된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가 잘 자려면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매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상대의 희생에 무임승차하려는 것과 같다." - p46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볼 때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보고 있어요. 당신과 공감하고 당신에게 마음을 쓰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셈이다. 상대에게 진정으로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 삶과 문화에서는 흔치 않은 큰 선물이다. 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느낌으로 삶을 살아간다.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어떤 부분을 숨겨야 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상처와 수치심, 두려움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자신에게조차 '가식'을 던다. 그러므로 타인을 지켜보는 증인이 되는 일 또한 큰 선물이다. 누군가 자신의 취약성을 당신과 공유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진정성을 믿는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p53~54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를 진심으로 관심 가져주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연민의 마음으로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의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해야한다. 이 책은 우리가 부정적이라 오해하고 있는 감정들을 새롭게 정의하고 바로 잡아준다. 욕구 역시 부정적 감정으로 평가절하 받지만 욕구는 그저 감정일 뿐이라는 것, 욕구를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나아가 채워주는 관계가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
저자는 차이를 받아들이는 현명한 방식도 제안한다. 우선 차이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차이 자체만을 강조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이에서 우위를 따지다보니 서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려 혈안이 되고, 그러다보면 혐오만이 남는다. 이건 비건-논비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로 제기되는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를 오롯이 상대 본연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차이에 대해 비판하기를 멈추는 것이 갈등해소의 중요한 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무례한 행동은 용인해선 안되고 견딜 수 없는 차이라면 관계를 끝내라고 조언한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것은 비건이 사회적 소수자이며 약자라는 사실이다. 논비건이 주류인 사회에서 이들이 겪는 폭력적인 상황은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대다수의 주류 문화가 가진 근거 없는 신화와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외면하기 위해 공고히 다져온 반대 프레임들을 저자는 육식주의를 다루는 장에서 파헤친다. 그리고 논비건이 무지에서 벗어나 비건과 연대하는 용기를 내기를 촉구한다.
비건 역시 비건이 되기를 결심하게 만들었던, 동물을 착취하는 끔찍한 트라우마 서사에서 벗어나 회복 탄력성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본래 다른 존재와 공감하도록 태어났으므로 공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고통에 '민감해졌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무감해지기'를 멈췄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 p146
"비건은 육식주의와 비거니즘 모두를 이해하는 이중 언어 사용자다." - p205
사실 비건을 다루는 책은 주류인 논비건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그들의 각성만을 촉구하기 쉬운데, 이 책은 서로를 연결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비건에게도 완벽주의에 너무 갇히지 말 것과 논비건의 개별성을 인정할 것, 트라우마 서사에서 벗어날 것 등 비건 측의 노력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비건이 논비건에게 연대와 존중을 제안하기 위한 제안의 말을 실질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비건과 논비건이 진정으로 연대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비건과 논비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폭넓은 관계 심리학으로도 삶에 굉장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게다가 차이만을 강조하고 다름을 혐오하는 양극단을 달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이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