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2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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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봤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그리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할 고독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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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시작되는 곳 I LOVE 그림책
에바 엘란트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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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개념을 아이에게 어떻게 알려주면 좋을까? 우리는 쉽게 행복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 단어를 정의하긴 쉽지 않다. 행복은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고,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그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행복을 어떻게 설명해줄까?



나에게는 파란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이 '행복'의 실체였던 때가 있었다. 저녁에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회사에서 조금 일찍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환승 대기 시간이 좀 길어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가 '엄마 행복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이때의 감정을 말해주며 행복이라 설명하기에는 너무 구차하다. 괜찮은 행복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마침 좋은 그림책이 나왔다. 네덜란드 작가 에바 엘란트의 <행복이 시작되는 곳>. 표지에는 분홍색 소시지처럼 생긴 괴생명체가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 얘가 바로 '행복'이다. 그림책은 아이가 이 분홍색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보여준다. 행복을 시각화한 것이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떠올리게 하고, 마침 생김새도 뭔가 어린 시절 상상 속의 친구 '빙봉'을 닮은 듯하다. 


사랑, 목표, 나눔, 친구와 가족, 초콜릿, 햇빛, 포옹, 정말 재밌는 말들, 갓 구운 파이 냄새 등.


아이는 찬장에 가득 찬 우리를 즐겁게, 기쁘게, 보람차게, 감동스럽게, 가슴 벅차게 만드는 다양한 일들 사이에서 '행복'을 잡기 위해 힘껏 손을 뻗는다. 행복은 그렇게 갖가지 모습으로, 다른 이름의 감정으로 불린다. 


가끔은 행복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행복을 찾아 떠난 길에는 행복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그래서 그 길을 끝까지 걸어 도착한 아이를 꼬옥 안아주는 행복의 모습이 참 포근해보인다. 





나무에서 다람쥐를 만나거나, 친구와 종이배를 띄워보고, 물구나무 서기에 성공하고, 맛있는 컵케이크를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고, 아빠 품에서 하늘을 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페이지에는 새로운 길을 찾을 때 행복은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줄 거라는 믿음도 심어준다.  언젠가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새롭지만 두근거리고 설레는지, 기대와 달랐지만 더 즐거웠는지 대화를 나눠보며 이 페이지를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거센 폭풍 같은 격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꾸 밑으로 끌어내리는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나에게 다시는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순간, 그림책은 '가만가만 숨을 쉬어 봐'라고 말한다. 행복은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속에 있었다는 걸 책은 일깨워준다.



"행복은 항상 거기에 있었으니까.

그것을 잘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렴.

결국 행복은 너에게서 시작되는 거니까."



정말 그렇다. 행복은 내 마음 먹기 달린 것이다. 어떤 상황이 나를 잠시 기분 좋게 만들지만, 그걸 행복하다 느끼려면 긍정적인 마음이 충만해야한다. 가진 것이 많아도, 더 높은 것을 이뤄내도 욕망이 끝이 없고, 내 마음이 빈곤하면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결국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달린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행복이 어디에 있냐 물으면 가슴을 콕 찍어줘야겠다. 니 마음 속에 분홍색 행복이가 살고 있다고. 그걸 잊지 말라고.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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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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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를 뒤로 한 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오두막으로 자발적인 고독을 찾아 들어간 한 인간. <삼시세끼>, <숲 속의 작은 집> 같은 나영석 표 예능은 먹고, 자고, 나머지 시간은 자연을 즐기는 단순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단순한 삶이 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마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파라다이스가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지쳐있다. 


나영석 표 예능의 모태는 어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적적한 시골의 외딴 집에서 지친 몸을 쉬어가는 삶을 꿈꿨기에 <월든>은 꼭 읽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책이었다. 그렇게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너무나 친숙한 고전 <월든>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고, 내가 이 책의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다 안다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70여년 전 소로는 미국 메사추세스 주 콩코드 근처의 월든 호수에서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하는 삶을 실험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 근처의 월 임대료 값에 호수 옆 터를 사고 집을 짓는다.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 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고, 가구는 만들거나 버린 것을 가져와 쓴다. 생활하는데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숲의 새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숲의 변화가 얼마나 시시각각인지 자연을 오래 들여다본 자라면 알 수 있는 그 경지에 이를 정도로 자연에 푹 빠져 살아가지만 그의 실험은 그저 자연을 만끽하는 힐링의 목적이 아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과잉생산하고, 자연을 도구로 보며 착취하는 농업과 산업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삶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P121



그러기 위해 그는 삶을 구석으로 몰아 붙여 가장 밑바닥 조건을 탐구했다. 그 방법으로 생활을 단순화시켰다. 의, 식, 주에 관한 한 그가 취하는 행동은 가히 생명을 연장할 정도에 가깝다. 그 외는 과잉이고 사치이다. 그의 이런 실험은 생명을 연장할 정도로만 먹고, 추위를 피할 정도의 집에서 산다. 자급자족에 필요할 정도만 일하며 나머지 시간은 호숫가 주변에서 묵상을 하는 아주 단순한 삶이다. 자연과 내면의 세계에 더 가까운 삶이다. 충만한 자신만의 시간은 삶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평범이라는 미명 하에 타인의 시선에 갇힌 채 정해진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삶을 꾸역 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총기를 잃어버렸다. 나다움의 반짝임도 사라졌다. 산업이 더 고도화되고, 개인의 삶을 파편화된 분업에 몰아넣을수록 사람들은 '풍요로움' 이면의 빈곤을 절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삶을 단순화시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선택한 소로의 후예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실험을 통해 이것을 알았다.

만약 우리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전진하면서 상상해온 생활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보통 때엔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뒤에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어가게 될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고, 좀 더 자유로운 법이 주위와 내부에 설정되기 시작한다.

아니면 예전의 법이 좀 더 확대되어 한층 자유로운 의미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되고, 우리는 존재의 더 높은 질서에 순응하며 살게 될 것이다.

생활을 단순화하는 비율에 따라 우주의 법도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다.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더 이상 가난이 아니며, 허약함은 더 이상 허약함이 아닌 게 된다." p428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그의 사유는 잠언집처럼 깊은 깨달음을 주지만, 현실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날카롭고 신랄하기 그지없다. 대다수가 농경사회였을 당시를 비판하는 말들이 왜 오늘날에도 위화감 없이 적용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소로의 경고가 지금 어떤 상황을 초래했는지를 떠올려보면 그의 선구안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과잉 생산은 전세계적인 불평등을 초래했고, 전쟁을 끊이지 않게 만드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소로가 그토록 경계했던 자연을 대하는 인간중심적인 태도는 이제 기후 위기까지 불러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재앙을 낳고 있는 인간의 욕망은 소로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브레이크가 없는 차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이 책이 오랫동안 읽히면서 많은 지성인들이 소로의 후예가 되어 자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것. 물질적 욕망이 그저 덧없는 파괴적 행위에 지나지 않다는 걸,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이 책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 책 속에는 소로가 머물던 콩코드 지역과 월든 호수 풍경을 담은 사진 자료가 66장이나 실려 있어 소로의 삶을 머릿 속에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게다가 상징과 비유가 많은 소로의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고전 전문가 이종인의 해제는 고전의 문턱을 한 층 낮춰준다. (해제의 제목도 <조용한 절망을 깨는 도끼>라니 너무나 시적이다.)



사실 <월든>을 직접 읽기 전까진 나는 소로가 평생을 호수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다른 삶을 위해 아주 애매모호한 이유로 실험을 끝냈지만, 아마도 그의 평생은 호수에서 얻은 진리와 삶의 태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나 역시 뒤늦게나마 <월든>을 읽고 진정한 자유가 있는 삶을 추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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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산모 수첩
야기 에미 지음, 윤지나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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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은 나의 세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박차고 남편을 따라 타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한창 일자리를 찾던 중 계획하지 않은 아이가 찾아왔고, 원치 않게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놓였다. 서류 전형이 통과되어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던 공공기관은 코로나 상황에 시험을 보러 기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친정 부모님이 격하게 만류했다. 스스로도 갓 입사한 직원이 출산 휴가 얘기부터 꺼내는 상황은 민폐일 거라는 생각에 구직활동을 꺼리게 되었다. 집에 콕 박힌 채 무료한 하루가 이어졌다.



임산부가 되자 전에는 받아보지 못한 배려에 둘러 싸였다. 불룩 튀어나온 배만 보고 친근하게 말을 거는 사람들도 늘었다. 대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중년 여성들이었고, 그들의 배려는 따듯했다. 하지만 나날이 달라지는 신체적 변화에 불편함이 앞섰다. 게다가 물리적 불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나는 날개가 꺾인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임신 중인 시간이 나에겐 그나마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제 36회 다자이 오사무 상 수상작이라는 야기 에미의 <가짜 산모 수첩>을 읽다보니 나의 임신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소설은 직장인 시바타가 일상적인 차별에 빡쳐서 느닷없이 '위장 임신'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거래처 답례품 나눠주기, 냉장고에 썩은 음식 버리기, 누가 쓰다 갖다놓은 행주 빨기, 커피 타오기, 남이 먹은 커피잔 씻기 등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자질구레한 일을 다 떠맡은 시바타. 담당 업무가 늘어가도, 밑에 신입 직원이 들어와도 아무도 하고 싶지 않아하는 잡무들은 팀 내 유일한 여자직원인 그녀의 담당이다. 어느날 시바타는 왜 이런 일을 자기가 해야하는 지 짜증이 솟구쳐서 충동적으로 임신을 했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나온다. 그 후 시바타의 생활은 임산부에 대한 배려 속에 묘한 활기를 띤다. 상사 눈치를 보느라, 쓸데 없는 회의에 붙잡히느라 늘 야근을 해야했던 시바타는 오후 5시 정시에 퇴근하며 저녁의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대충 도시락으로 때우던 끼니도 신선한 재료로 정성드려 만들어 먹고, 운동도 착실히 하며 오히려 전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책의 홍보문구가 꼬집듯 '여자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임신'을 역설적으로 택한 것이 아이러니하다.



문득 예전 회사에서 심의위원회 출석 같은 곤란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일부러 배가 남산만큼 나온 임산부 직원을 보낸다는 농담을 떠올리게 했다. 임신으로 마치 일상의 차별과 폭력에서 한발짝 빗겨난, 성역에 머무르는 것 같은 상황. 시바타 역시 '여자 역할'로 규정된 온갖 잡무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그녀를 대하는 태도들도 일순 달라졌다. 마치 성녀가 된 것처럼 무례하고 상스러웠던 남자 직원들의 행동이 제법 친절해진 것이다.



한편 시바타는 임산부 에어로빅 교실에서 만난 임산부들과 유대감을 쌓아간다.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행복한 임신 생활을 이어가는 그녀들, 시바타 역시 남편이 있는 것처럼 거짓에 거짓을 더해간다. 그리고 자꾸만 거짓말이 쌓여 진짜 임신을 한 듯 자신의 몸도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시바타는 출산 후의 삶이 더 가혹한 지옥이라는 것을, 에어로빅 교실 동료 호시노를 통해 전해 듣는다. 아기를 제 몸으로 품었다는 이유로 부부가 공동으로 수행해야할 과업인 육아는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된다. 남녀 모두 부모가 된다는 사실은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남자에게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허용된다. 엄마는 지금 당장 울어대는 아기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밤낮을 모르는 아기를 돌보느라 잠을 줄여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다. 발 끝이 다 얼 것 같은 추운 날씨에 잠든 남편의 짜증을 받아내기 힘들어 우는 아기를 안고 거리를 배회하는 호시노의 모습에서 아기를 안고 혼자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육아휴직은 어떤가. 여자의 육아휴직이 디폴트라면, 남자는 여전히 보조적이다. 경력을 깎아가며 자신의 생을 육아에 헌신해야하는 건 여자에겐 당연하고, 남자에게는 고려해볼만한 옵션인 것. 그래서 아이의 육아를 위한 고민- 가령 어린이집을 보내거나,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지 등의 방향을 잡는 것 등-은 대체적으로 엄마의 몫이다. 오죽하면 자녀교육에 필요한 3가지 조건 중 하나가 엄마의 정보력이고 또 하나가 아빠의 무관심이겠는가.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나 세상은 나아진 것 같지만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념은 공고하기 그지 없다. 마치 시바타가 다니고 있는 지관공장 속 '굳은 집념과 절실함'을 담은 채 한 치의 이탈도 없이 흘러가는 작업 공정을 보는 것처럼 흘러간다. 개별적인 여성이었을 때는 차별받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하나의 틀에 박힌 관념적 존재가 되는 여성의 삶. 어쩌면 임신은 그런 폭력과 차별 속에 잠시 벗어나는 유예기간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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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 매일 쓰는 사람 정지우의 쓰는 법, 쓰는 생활
정지우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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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매년 나의 신념다짐 1호였다. 경험적 풍요가 물질적 풍요보다 더 귀하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값진 경험에서 얻은 감정들은 어딘가에 써두지를 않으니 금세 희미해졌다. 뒤늦게 아쉬워해봤자 내 게으름만 탓할 뿐이다. 지난 해는 좋은 기회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결실을 얻기도 했지만 글 쓰는 삶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 매번 다짐만 할 뿐이다. 올해는 제발 글을 써보자.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애먼 작법서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숱한 노하우를 알아봤자 하루아침에 글이 써질리 만무하다. 시작이 어렵다. 아마도 그건 글에 대한 나의 태도 때문일테다. 지나친 완벽을 기대했거나,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거나, 글쓰기가 내겐 너무 심.각.했.거.나.



정지우 작가의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글쓰기에 대한 에세이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이 1년 동안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거의 매일 글을 쓴다는 정지우 작가.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게 만드는 화수분 같은 그의 비법이 무엇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책 속에는 흔한 작법서에서 볼 법한 소재 찾기나 문장 잘 쓰기류의 비법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글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오랫동안 공들여 이야기한다. 시선의 존재가 되기 위해 쓰고, 살아있기 위해 쓰고, 타자를 붙잡기 위해 쓰고. 글쓰기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여정이자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인도하는 것.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글 쓰는 행위 자체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마음이 돋보였다. 



책을 읽으며 글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닮고 싶었다. 내 글을 읽을 타자를 생각하며 글을 정제하고, 절망과 슬픔이 나를 잠식해도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뛰쳐나와 글 한 편으로 가라앉은 자신을 구하는, 글로써 삶을 다독이며 나아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오직 문자로만 이해할 수 있는 당신의 깊은 마음, 우리의 관계, 문자를 매개해서만 정확하게 되살릴 수 있는 나만의 기억들, 내가 품어온 꿈과 세상에 대한 이해, 무한하게 펼쳐질 수 있는 상상적인 세계가 점점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아쉽다.


여행이나 일상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동영상도 많이 남기려 한다. 그것들은 때때로 생생하게 그 순간을 살려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순간일 뿐이다. 결국 그 시절을 통째로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게 기억하게 하는 건 그때의 이야기이고, 그 시절 남겨두었던 나의 언어들이다." (p122)




이 글을 읽을 때 나 역시 오래전 여행을 추억하며 그날 찍은 사진보다 그때 끄적인 일기를 더 자주 들춰보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내가 값지다 여기는 모든 경험들은 글로 기록될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아이의 시간도 내가 기록해줬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가 되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제목 때문에 좀 더 가볍게 글쓰기에 접근하는 책일거라 오해했는데, 오히려 글쓰기의 매력을 설파하고 삶을 글로 만드는 방식에 대한 책이었다. 물론 작가가 쓰는 법을 다루고 있기에  글쓰기에 대한 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방법으로 글쓰기에 대한 부차적인 욕망을 찾아보라는 조언, 굉장히 솔직하고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비루한 내 삶을 좀 더 포장하고 싶은 욕구,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를 채우고 싶어 글쓰기를 자꾸 열망해온 것은 아닐까. 심지어 유명 작가 중에도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글을 썼을 것이라는데, 이런 솔직하고 어쩌면 속되보이는 욕망도 작가는 기꺼이 옹호하고 응원한다. 글쓰기는 내 감정에 대해 더 깊숙이 생각하고 나만의 언어로 빚어내고, 타인을 상정하며 말을 거는 듯 써내려가는 과정 속에서 어떻게든 삶을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줄테니까. 



그러니 올해는 정말로 이루고 싶다. 매일 글쓰기라는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를.


마음이 나약해질때마다, 백지 앞에서 막막해질때마다 정지우 작가의 뜨거운 진심을 떠올리면서 오롯이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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