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 고단한 동료 생명체를 위한 변호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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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벌써 몇 해째 후원하고 있는 동물보호단체였다. 장기간 후원한 회원을 대상으로 정회원 자격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불에 덴 듯 따끔했다. 매달 계좌로 돈은 빠져나가고 있지만 처음 후원을 할 때의 가졌던 동물을 향한 연민은 세상살이에 지쳐 희미해져 버린 것이다.



그때 이 책 <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을 만났다. 이 책을 쓴 남종영 작가는 세계 각국을 돌며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취재하는 환경 논픽션 작가이다. 동물권 단체가 보내준 소식지에서 읽은 적 있던 제주 바다에 방사한 돌고래 제돌이 사건 역시 그가 집중 취재한 사건이라고 한다. 작가는 동물과 인간 간의 관계를 오랫동안 탐구했다. 그리고 소개를 보면 인간의 동물 통치 체제와 생명 정치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의 정확한 표현은 '인간 동물'과 '인간이 아닌 나머지 동물'일 겁니다. (중략)

우리가 동물을 비인간동물로 부르는 것이 그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p30



책은 우리 속에 있는 종차별적인 시선을 은근하게 지적하며 시작된다. 사실 인간도 동물인데 우리는 동물을 마치 인간보다 하등의 존재처럼 여기며 경시하고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오지 않았나. 저자는 인간과 동물 두 존재 간의 우열을 가라지 않는 태도를 위해 동물들을 '비인간동물'이라 칭한다. 인간들은 기를 쓰고 동물과 다른 점을 찾으며 인간이 가진 고유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든다. 하지만 문명이 도래하기 전 오랜 세월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동물적 본능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역시 동물임을 보여준다. 동물들은 어떤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동물을 지배하게 된 기원을 수렵채집 생활에서 정착 농경생활로 변하며 자본으로서의 가축이 필요해진 점을 꼽는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함께 숲 속에서 경쟁하면서도 공생하던 수평적 관계에서 어느 한 쪽이 지배하는 관계로 바뀌지만 당시 동물들은 인간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자 삶의 일부였다. 인간은 자신이 기르는 동물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삶을 끝까지 지켜봤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구가 도시로 몰리고 우리는 동물과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끔찍하게 아끼면서 저녁으로는 어떤 고기를 먹을까 기대하는 모순은 이 때문에 생겼다. 고도의 산업화 속에 인간은 마트에 진열된 팩에 담긴 고기로 닭과 돼지, 소를 접한다. 살아 있을 때 우리처럼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저자는 이게 다 동물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책에는 인간의 인위적 개입과 동물의 생명을 자본의 원리로 대할 때 생기는 끔찍한 재앙 역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평생을 동물이 가진 고유의 본능을 거세 당한 채 착취만 당하는 공장식 축산, 온갖 유전병에 시달려야하는 순종견 집착,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동물들, 납치되다시피 끌려와서 좁은 독방에 갇힌 채 인간의 눈요기가 된 전시동물들. 동물 후원단체에 내 발 길을 이끌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슈들이었다. 최근에는 동물권에 대한 경각심이 일어나며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던 기존의 법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지구 상에 일어난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 재해도 아니면서 대 멸종을 부를 재앙을 끌고 온 것도 인간의 이기 때문이 아닌가. 효율을 강조하고 우리 안의 종차별적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문제일 것 같다.



"인간과 비인간동물이 평화롭게 사는 방식은 예로부터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과 동물은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대면할 때면 살짝 피해 주었죠.

인간이 동물에게 잘못했을 때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동정하고 보살폈고요.

아직도 동물원과 수족관에는 본능적인 삶을 박탈당한 동물들이 있어요.

혹시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방문해 그들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면, 또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미 동물권을 향한 긴 여정에 몸을 실은 것이랍니다." p143



이 책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종차별주의의 근원을 역사 속에서 찾은 것처럼 동물권 철학이 탄생한 철학적 배경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동물 윤리 철학이나 칸트의 '간접적 지위론'과 같이 각을 잡고 해당 분야를 파면 머리 아파서 금방 나가 떨어질 것 같은 어려운 개념도 알기 쉽게 풀어써서 이해를 돕는다. 



철학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한 권이 관련 핵심 주제들을 모두 톺아볼 수 있게 친절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나는 이전에 종차별주의에 대해서는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동물의 감정과 특성 연구에는 템플 그랜딘의 <동물과의 대화>를, 그 밖에도 동물원의 역사나 채식주의에 대한 책 각각의 책들을 찾아 읽었는데, 이 책에는 그 내용들이 쉽고 명료하게 다 담겨 있었다. 





게다가 공장식축산 농장을 아우슈비츠로 비유한 동물권 예술가 조 프레데릭스의 <날마다>와 공장식 축산의 실체, 동물과 인간의 상황이 뒤바뀐 때를 상상한 만평 등 책 속에 삽입된 적절한 이미지들은 마음을 움직이는데 더욱 결정적 한방처럼 작용한다.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각성과 환기가 되어주고,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이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 줄 동물권에 대한 한 권의 책. 특히 어린 시절부터 우리를 둘러싼 생태계와 생명체들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는 교육이 필요하다 느끼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읽히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책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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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인간동물님들! - 고단한 동료 생명체를 위한 변호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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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에 대한 모든 이슈를 담은 친절한 책. 보고 나면 동물에 대한 연민이 다시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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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 사랑해 보드북 3
캐롤라인 제인 처치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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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유아 도서 카테고리에서 부동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기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 권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준비해 둔 책이었다. 그리고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신생아 시절부터 거의 매일 이 책을 읽어주었다.



나처럼 '사랑해'라는 낯 간지러운 말을 차마 아기에게 조차 잘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성격의 엄마라면 '사랑해' 시리즈는 아이의 정서를 위한 최고의 처방전이다. 책 속에 있는 사랑한다는 말만 읽어도 아이에게 여러 번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페이지 마다 그려진 아이의 작고 귀여운 모습을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겁게 차올랐다.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원없이 할 수 있는 책이라 너무 고마웠던 '사랑해' 시리즈, 최근에는 잠자리에서도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 영어 원서 <Good Night, I Love You>도 들였다. 

- 이 책은 아직 국내 버전이 출시되지 않았는데, 국내 버전 출시되면 쌍둥이 책으로 당장 들일 예정이다-



​영어로만 읽는 게 못내 아쉬울즈음 이 시리즈의 새로운 책 <사랑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가 출간됐다. 


공교롭게도 가지고 있는 <사랑해> 시리즈 책들의 판형이 다 다른데, <사랑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를 포함해 새롭게 출간된 사랑해 보드북 시리즈는 모서리가 둥근 두꺼운 보드북으로 되어 있어 아직 구강기라 잡히는 것마다 물고 빠는 아이에게도 적합했다. 내지도 두꺼운 하드 코딩지여서 구겨지지 않아 안심이다.


- 양장으로 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구판은 모서리가 날카로워서 아이에게 못 만지게 하고, <Good Night I Love You>는 표지는 엠보싱이 있고 모서리가 둥글어 좋은데 내지가 다소 얇아서 빨았더니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내 마음도 함께 너덜너덜...ㅠㅠ -



책의 사이즈 역시 아직 돌이 안된 아이가 잡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요즘 부쩍 책을 넘기는 걸 즐기는데 갖고 노는 책으로도 잘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가 아기의 볼에 가볍게 뽀뽀해주며 들려주는 느낌이라면, <사랑해 온 마음으로 사랑해>는 품 속에 꽉 껴안으며 읽어주고 싶은 제목이랄까. 아이가 아직 '온 마음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알진 못하겠지만 소리 내는 순간 그 울림이 한층 깊어서 아마도 하루 하루 더 짙어지는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책 속에는 캐롤라인 제인 처치가 그려낸 동글동글 귀여운 아기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기의 애착 곰돌이도. 내용은 그야말로 Baby Busy World!! 아기들의 하루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기의 하루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이제 막 직립을 배운 아기들은 아직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넘어지지만 그러고도 신이 나서 꺄르르 거린다. 쿵쿵 뛰고, 휙휙 돌고, 굽혔다 일어나고, 같은 동작을 무한히 반복하면서도 제 몸의 움직임이 신기해 지루할 줄을 모른다. 서기 시작하자 안가는데가 없어진 아기들은 정말 '요기조기' 다 가본다. 엄마는 지치는데 아기들은 좀체 지칠 줄도 모른다. 


하루 종일 그렇게 '함께 나눌 게 아주 아주 많은' 아기들은 어느새 천사의 모습이 되어 새근새근 잠이 든다.



아이들은 책 속의 내용이 자신의 생활과 유사할 때 더 큰 호기심을 보인다는데 한창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내 아이에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잠자리 동화로 딱 좋은 그림책이었다. 역시 국민 그림책답게 아이도 단번에 호기심을 갖고 책에 집중했다. 이렇게 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있어 다행이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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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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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출간되어 화제를 일으켰던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새로운 표지 '여우눈 에디션'으로 재출간됐다. 맑은 하늘에 내리는 이벤트 같은 비를 여우비라 하듯 무지개가 뜬 하늘에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걸 여우눈이라 하나보다. 출판사는 표지에 대해 '겨울에 내리는 눈송이는 손끝에서 금세 녹아버리지만 우리를 따뜻한 정서로 빠져들게' 한다고 소개한다. 정말 이 책의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표지인 것 같다. 책을 읽고 있으면 추운 겨운 날씨에도 마음 안쪽에서 뜨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게다가 대단한 행운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 같은 '여우비'처럼 작가의 글은 '예사로운' 일상 속에 '깜짝 놀랄 빼어남'을 발견하는 일화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11년 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가 남긴 산문들의 정수를 모은 에세이집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국 문학을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는 나는 박완서 작가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한창 한국문학을 읽어대던 대학교 때, 도대체 작품을 읽어는 보고 얘기한 건지 지금에 와서는 의심스럽지만 나에게 꽤 영향력을 끼치던 누군가의 혹평이 나에게 '박완서는 고루하다'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만들었다. 게다가 당시에 난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설정에 푹 빠져있던 터라 나이 많은 작가의 글은 별로 읽고 싶지 않았었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무지이자 멍청한 판단이었는지, 책 첫 장을 읽는 순간 대번에 깨달았다. 



남자들로 가득한 문학판에서 여성으로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름을 올리려면 얼마나 벼르고 벼른 글을 써내가야 할까, 얼마나 예리하게 독자들의 심금을 건드려야 할까. 박완서는 부족함이 없는 작가였다. 


일상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도 작가는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타인의 배려와 인정에 기꺼이 감동하고 세상 사는 맛을 즐기다가도, 영악한 자신을 못내 부끄러워하며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이 좀 더 선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는 작가의 정직한 글은 읽는 내내 마음을 콕콕 찔렀다.



특히 앉은뱅이 거지를 보며 그의 비참함에 마음이 쓰이다가도 그 뒤에 연결된 착취의 카르텔을 배불리하는 짓이라는 생각에 모질게 외면한 사연은 자주 적선하는 사람들의 불운을 애써 못본 척한 나를 비추는 듯했다. 작가가 느꼈던 소박한 인간성의 상실과 그로 인해 헐벗은 듯한 느낌이 그때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의 동요를 적확한 언어로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대범한 성격이다가도 자신이 타인에게 끼친 민폐를 미리 염려하며 몸과 마음을 사리는 소심한 면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지갑을 잃어버린 건지 두고 나온 건지 카드와 민증 없이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어 막막했던 에피소드에서 이미 유명세를 얻고 있던 시기에도 어쩌면 못나보일 수 있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전원생활 에피소드들은 곳곳에 명랑한 노년을 보내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일제강점기에 나고 6.25를 겪은, 그야말로 남존여비가 당연한 세상 속에 살아온 작가지만 지금의 페미니스트 못지 않은 성평등한 시선도 놀랍다. 딸들에게 경제적 독립이 있는 삶을 강조했지만 막상 출산과 육아로 회사를 떠나야 할때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서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낭패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가 아닌가. 




 



 



이 작품이 처음이라 몰랐지만 박완서 작가가 그간 써온 작품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체험적 진실'에서 출발해 천민자본주의, 가부장제 등 한국 사회의 병폐를 꼬집는, 시대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런 깨어있는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작가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작가의 어머니 영향이 컸다. 타인에게 좋은 점 하나는 꼭 발견하라는 가르침을 전한 현명함, 사랑 받은 기억만 남도록 해준 따뜻하고 넉넉한 품, 어떤 통증도 녹아 내리는 평화로운 입김. 우리는 이렇게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과 무한한 긍정의 마음으로 또 다른 사랑을 대물림하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미사어구가 범벅되지 않은 그야말로 정갈한 글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려한 작가의 소신처럼 글 속에서 마주한 나의 민낯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진실이 마냥 무겁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아리면서 새 살이 돋는 듯 간질간질하기도 했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해서일까. 게다가 이 할머니 왜 재밌기까지 한지, 이렇게 귀여운 노인으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작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팬들은 물론이고, 나 같은 박완서의 세계에 첫 입문하는 사람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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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2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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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강을 과신하는 편이다. 살아가며 병원 신세도 거의 진 적이 없고, 소화기관은 워낙 튼튼하고, 감기 같은 병은 약 먹고 푹 자면 금세 떨어져 나가는 편이다. 면역력도 좋은 편이라 전염병이 유행해도 설마 내가 걸릴까하는 안일한 생각을 품는다. 하지만 나도 내 고통을 설명하지 못해 마음 깊은 곳까지 좌절하고 소외된 느낌에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회사 일로 한창 바쁜 때, 나는 의자에 발가락이 걸려 넘어질 뻔했고, 그 하찮은 사고가 발가락 골절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결국 정형외과를 가서 깁스를 했다. 고작 발가락이 부러졌을 뿐인데 내 생활은 상상도 못할 만큼 불편해졌다. 샤워를 하는 일상의 일도 혼자 하기 어려웠고,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모든 이동이 숨이 찰 만큼 힘들었다. 집안에서든 회사에서든 나는 바퀴가 달린 의자를 휠체어처럼 끌고 다녔다. 하지만 모든 동선이 나에게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 의자가 통과하지 못하는 턱이나 좁은 곳을 지날 때 결국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나를 배려하는 손길도 있었지만 자주 배려를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요구를 꾹꾹 눌러 담다가 정말 필요할 때 부탁하는 눈치도 보게 됐다. 계단이 많은 곳을 가야할 때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목발을 오래 짚다보니 겨드랑이 아래 멍도 들고, 온 몸이 쑤셨다. 그때의 기억은 모든 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나간 썰렁한 겨울 날씨와 함께 나를 제대로 우울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매일 밤 베개가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두 번째 책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는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 오희승은 CMT라는 희귀병과 관절염이라는 흔한 병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관절이나 근력이 약했던 그녀는 몸을 쓰는 일에 작은 불편을 느껴왔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온 몸이 고통에 지배 당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생겼다는 것에 '실존을 인정 받은'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애매한 고통을 설명하지 못하고 공감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CMT의 증상은 스스로 느끼는 불편과 달리 겉으로는 멀쩡해서 언제나 자기 증명을 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해 '고통의 경험을 인정받고', '불필요한 실체 활동의 참여를 거부할 권리'를 얻고자 했지만, 아주 짧은 검증 시간 동안 그녀가 실제 겪는 어려움은 담당 공무원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결국 장애인 등록에 실패한다. 그녀의 고통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더욱 더 심적 고립을 느낀다. 



반면 그녀가 앓고 있는 또다른 질병, 관절염은 흔해서 쉽게 공감을 얻지만 또 그만큼 중대한 병 취급을 받진 못한다. 그녀의 남편이 가진 태도도 돌봄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는 감사하지만, 그녀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관절염 증세는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려 결국 그녀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모멸감도 느끼고 끝없는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신체는 불편하더라도 언제나 말끔한 용모를 유지하려 애쓰던 그녀에게 간병인이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병원 생활은 비참함 그 자체다. 돌봄 역시 무한정 요구할 수는 없어 그녀는 사소한 욕구는 꾹꾹 참아낸다. 그래서 매일 머리를 감던 그녀는 며칠째 떡진 머리를 견뎌내고,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역겨움을 느끼며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환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은 그녀를 더 심적으로 고립시킨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여가를 즐기는 것도 고통을 줄곧 호소하던 자신은 누려선 안되는 사치같아서 눈치를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를 이해받으려 고통을 호소하다보면 주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고, 불만투성이인 자신만 덩그라니 남아 있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고통을 숨긴 채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의 삶에 불타는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처럼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그녀, 하지만 CMT 환우회에서도 각자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고 그 경중이 달라 서로의 고통을 견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뿐이었다. 고통 속에 있으면 이렇게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걸까.



"고통 그 자체는 절대적이기에 나의 고통이 너의 고통보다 심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대화는 소통을 막아버린다." p45


"돌봄을 받으며 감사와 사랑, 축복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매 순간 충만한 돌봄을 받을 수는 없다. 

돌봄은 인내의 한계와 능력의 부족함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과정이다. 

그러한 돌봄이 일상이 되면 지리멸렬하고 기복이 심해서 거기에서 위대성을 찾는게 억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사랑과 축복을 받은 느낌이 사라졌을 때의 황량하고 막막한 느낌, 

불편함과 억울함도 다 제각기 진실한 감정이라는 걸,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p114




다리가 불편했던 2개월의 시간은 저자가 겪은 고통과 비교했을때 너무나 하찮은 경험이지만 나 역시 저자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다. 나를 이해받지 못해 외롭고,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이유 없이 주눅들었던 나날들. 저자는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냈다. 저자의 삶이 희망적인 건 글쓰기가 스스로의 고통을 객관화하고 자신이 지낸 외로움의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고통의 시간에 느낀 감정들을 글로 기록해서 마음 속의 모순들도 직면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찾아가는 중인 그녀는 이제는 예전처럼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봄의 두 번째 플라워에디션의 표지는 이번에도 무척 의미가 깊었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말을 가진 미선나무가 가득 채운 표지는 적절한 위로의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이 독자의 아픔과 슬픔을 거둬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진했던 우울함이 산뜻하게 가셔가는 연보라빛도 인상적이다. 어느새 나에게 믿고 보는 에디션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역시나 예민한 감수성으로 쓰여진 두 번째 책에서도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공감의 폭을 넓히고, 유사한 경험에서 위로 받았다. 이런 게 독서를 하는 이유니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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