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꽃이 피었습니다 - 로컬 꽃을 피우는 발자취를 따라서
윤찬영.심병철 지음 / Storehouse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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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꽤 오래 일을 하다 지방으로 내려온 나에게 사람들은 종종 '그 좋은 서울에서 왜 내려왔냐'고 묻는다. 서울에서의 나는 유난히 지쳐있었다. 거친 바람을 쉼 없이 뚫고 질주하다 날개는 망신창이가 되고 기력을 죄다 잃은 새처럼, 나는 내가 쉴 안락한 둥지를 찾아 부모님이 있는 지방 소도시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그 곳은 내게 유년시절의 추억이 서린 고향이자 나를 품어줄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지방은 서울 생활에 치여 얻은 상처를 핥으며 쉬어가기 좋은 곳일거라 생각했다. 일을 쉴때는 좋았지만 다시 생업을 이어가려니 참으로 막막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서울로 돌아가야하나 수차례 고민했다. 어떤 날은 면접을 보러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로컬 콘텐츠 문화를 진흥하는 기관에서 일자리를 찾게 되었고 로컬에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려는 예비 창업자들과 대학생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의 뜨거운 열정과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지방이 그들에게 과연 기회의 땅이 되어줄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그만큼 지방엔 괜찮은 일자리가 없었다.



<로컬 꽃이 피었습니다>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윤찬영 센터장과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심병철 책임연구원이 지역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로컬 크리에이터와 도시 재생 사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들이 뿌리 내리는 과정 등을 생생하게 취재한 기록이다. 공주, 군산, 속초, 거제, 충북 청주와 충주, 괴산 일대 사례를 담고 있다.



공주의 예쁜 한옥 거리라고만 여겼던 제민천 일대가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일본식 가옥과 짬뽕 외에는 볼 게 없던 군산이 어떻게 젊은이들이 누비는 힙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성지가 되었는지, 부산 영도 앞 바다의 쇠퇴한 조선산업과 깡깡이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새로운 문화로 탄생했는지, 속초 청년들을 다시 U턴하게 만드는 새로운 활기는 어떻게 조성되었는 등등 우리가 관광스팟이라 여겼던 지방 도시들의 스토리가 진하게 담겨 있다. 


이 중 '로컬라이즈 군산'과 부산 영도 사례는 로컬 크리에이터 쪽에서 워낙 유명한 사례여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볼 수 있어 의미가 컸다.



저자는 지방이라는 말 대신 줄곧 '로컬'이라 명명하는데, 지방이란 말에는 서울 외의 지역, 변두리라는 편견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확실히 지방에서 살아가다보면 수도권의 식민지가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는 해당 지방도시만의 경제 기반이 있었고, 일자리가 창출되어 청년들이 굳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4차 산업으로 고도화되자 제일 먼저 타격을 입었다. 한때 경쟁력 있었던 지방국립대마저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위기를 맞이했다. 청년들이 더 이상 지방에서 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속의 사례들이 의미 있었다. 몇몇 힙한 가게들이 모인 거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공동체가 청년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활기였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단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지원이 더하면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사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려는 중앙 정부 개입에 다소 회의감을 느꼈다. 국토를 균형발전시킨다고 여러 인프라를 세금을 들여 지방에 짓는데 뭔가 시설을 만들기위해 억지로 사업을 만들고, 지역 현실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다보니 실제 이용자는 없는 유령 건물만 만들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있는 사례들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고 눈덩이처럼 뭉쳐, 이를 거대하게 구르는데 지자체와 정부의 지원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가서 성공한 케이스가 되었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려면 민-관이 공동의 비전을 명확하게 공유하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할 것 같다. 마지막 충북 로컬 크리에이터 생태계처럼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의 진정성도 중요하다.



이 책은 유사한 책들이 보여주듯 단순히 성공 사례만 나열한 그런 책이 아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도시가 다시 생기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스토리텔링처럼 그려내고 있어 너무나 흥미롭다. 로컬에 살고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로컬 크리에이터가 모여 한 도시의 고유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이 어벤저스를 보는 듯 가슴이 웅장해질 것이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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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의 대화 - 개정 완역판
템플 그랜딘.캐서린 존슨 지음, 권도승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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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나보다 늦게 태어나서 먼저 보낸 작은 동생들이 있다. 강아지 참치와 달콩이, 고양이 빈치. 그 녀석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나에게 다른 종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심어 주었다. 하지만 항상 주의깊게 살펴보고 미리 문제를 인지하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관계이기에 쉽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기쁜지, 아니면 슬픈지, 질투를 하고 있는 건지, 나에게 화가 났는지. 표정으로 읽으려해도 아마 내가 괜한 의인화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지금도 내 곁에는 작은 생명체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녀석들과 더 행복한 삶을 살려면 동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면 좋을 것 같았다.



<동물과의 대화>는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자폐인인 템플 그랜딘이 쓴 동물에 대한 안내서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불우함을 말을 타며 치유했고 '그저 동물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폐증을 앓았기에 남들보다 더 비범하게 동물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데, 동물들의 뇌 구조가 자폐를 앓고 있는 인간- 언어 생활이 불가능한 자폐증 환자-과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자폐를 가진 천재들이 사회성은 결여되어도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듯 동물들 역시 보통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함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폐라는 프레임으로 동물의 행동과 심리를 바라보는 틀이 색다르고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동물들의 특성- 인지, 감정, 학습, 본성 등은 과학적인 해석도 있지만 상당 부분 템플 그랜딘이 직접 동물들과 부딪히며 경험하고, 자폐증을 앓던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동일시해 해석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보통의 사람이 생각이나 감각, 인지 등에 추상적인 영역이 발달한데 비해 자폐인과 동물들은 사물에 대한 추상적 개념보다 있는 그대로만 본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이 자신의 관념에 갇혀 잘못된 판단이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부분을 자폐인과 동물들은 하지 않는다. 보다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해줬던 동물 친구들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이해관계에 얽혀 애정의 크기를 저울질할때, 동물들은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나를 대한다. 삐친다던가 질투를 한다던가, 미움을 가진다던가하는 개념이 없을텐데 내가 오히려 오해하며 내 감정을 주입해 판단하려 들었던 건 아닐까?




 




책을 읽다 내내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동물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과 지식이 동물도축장 설계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동물들이 느낄 통증과 정서를 끝없는 관찰과 자신의 성향을 통해 이해해낸 저자는 자폐인 자신을 온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저자는 난폭하게 변하는 동물들이 얌전해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는, 죽음 앞에서 동물들이 평온해지는 기구를 고안해낸다.  실제 저자가 설계한 동물도축장은 미국의 3분의 2에 채택되어 있다고 한다. 이 지점은 <동물과의 대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이 사실상 대화보다는 통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쳐 불편하지만 소, 돼지와 같은 산업동물이 더욱 비윤리적이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사는 동안 삶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않고, 죽는 순간을 보다 존엄하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맞이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야 할 것 같다.  



동물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동물이 감정을 느끼지 않는 기계와 같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산업동물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고, 효율에 의해 돌아간다. 얼마전 닭들의 산란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보름 이상을 굶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접했는데, 인간은 왜 다른 종 앞에서 공감능력을 상실했는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럴 때 이 책은 효용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동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소비해야하는 우리에게 보다 동물권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동물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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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 페미니스트 엄마와 (아직은) 비혼주의자 딸의 자력갱생 프로젝트 : Flower Edition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1
권혁란 지음 / 그래도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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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페미니스트라 자칭하지 않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 뾰족한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살아왔다. 어쩌다 남초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됐을때는 만연한 성차별적 상황들에 노골적으로 분노하다가 장년 아재들의 얼굴을 여러번 붉히게 만든 바람에 회사 생활이 힘들어지기까지 했지만, 엄마는 그런 딸을 크게 걱정한 적이 없었다. 결혼 정년기가 한참 지나고도 집구석에 붙어있자 오히려 마음을 놓아버린 듯 함께 오붓히 살아가는 미래를 꿈꿨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해버렸고 그때부터 엄마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스스로는 남편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그간 딸의 독립적인 삶을 지지했던 엄마였기에 그러한 태세 전환이 놀라웠다. 엄마에겐 조신하지 못하고 제 수가 틀리면 나이 불문 말대답을 꼬박 꼬박하는 독불장군 같은 딸이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불안했나보다. 시댁에게 자주 연락드려라, 남편에게 그러면 안된다,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한다 등 순종적인 며느리와 아내가 되길 강요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페미니스트 엄마라면 어떨까?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라이프>는 페미니스트 엄마와 비혼주의자 두 딸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권혁란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글을 써왔고 여러 권의 여행서를 낸 작가이다. 그녀가 보여준 엄마의 모습은 우리의 통념과는 사뭇 다르다. 길 위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자주 집을 비웠고, 딸들은 알아서 잘 컸다. 항상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 하느라 진짜 자신은 잃어가는 모성애 신화 속 엄마의 존재는 그녀에게서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딸들에게 기대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엄마다. 



그런 엄마를 둔 탓에 첫째는 속깊은 K-장녀이면서 집안 대소사를 모두 책임지는 똑부러지는 살림꾼이 다됐다. 둘째도 취업을 한 뒤 제 앞가림을 해나가며 스스로 삶을 잘 꾸려나가는데, 이 딸들 독립할 생각이 없다.


세상이 너무 험해서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 도사린 온갖 위험들. 데이트 폭력으로 사그라진 여린 목숨들. 무서운 세상에 엄마는 딸들에게 감히 연애하라 종용할 수 없다. 결혼은 또 어떤가. 집 한 채 마련해줄 수 없는 부모인데 어떤 미래를 그리라고 결혼하라 마라 간섭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여성이, 그리고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가 무시로 느껴졌다. 딸을 낳아 '자식 없는 팔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설움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딸을 낳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떤 일을 당할지 노심초사 걱정이 된다. 장성한 딸들과 살아가는 가정에 제멋대로 판단내리는 무례한 눈길도 견뎌야 한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가 겪었던 시대의 야만은 지금보다 여성에게 훨씬 가혹했지만, 어쩔 수 없다 체념했던 시대였다. 그래도 저자는 이래서는 안된다 소리를 내는 발화자였기에 딸들의 시대는 달라야한다는 의지가 책 속 곳곳에서 읽혔다. 여성의 삶을 속박하는 구식 풍습들을 견뎌낸 엄마이기에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차별적 시선과 여성의 평범한 삶을 짓누르는 굴레들을 찾아내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공감이 가면서도 내가 너무 무딘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자각도 하게 된다. 



결국 방이 3개 뿐인 아파트에서 네 가족이 각자의 방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리모델링 공사를 감행한다. 함께 하지만 각자의 길을 존중해주는 가족의 동거 생활에는 내 가족만이 최고라는 편협한 가족애도, 서로에게 마이너스이기만 한 질척임도 없다. 딸들의 삶을 염려하는 저자도 우선 제 삶을 살아가기 바쁘다. 코로나로 발이 묶였지만 언제든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는 엄마라서, 딸들의 등을 밀어주는 바람은 아니지만 삶을 가로막는 맞바람만 아니길 바란다.



지금 우리 엄마의 걱정은 내게 어떤 바람일까? 우리 엄마는 자신이 살았던 시절을 기준으로 나를 걱정한다. 엄마의 걱정은 내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달라진 시대, 달라져야할 생각과는 반대로 흘러버렸다. 혼자일때는 얼마든 자유로울 수 있지만 결혼한 여자에게 자신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사랑받는 아내, 며느리가 되는 것이 지상 최고의 과제인 것처럼. 그렇게 되면 나를 잃어가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이건 전혀 내 삶을 응원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나는 유난히 그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 딸이 살아갈 시대를 이렇게 이해해달라고. 




덧붙여 저자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글이 너무 아름다웠다. 분노하는 순간 조차 정갈한 한복을 입고 다붓하게 앉은 여인의 모습처럼 기품 있었다. 어떤 글을 말 맛이 살아 있어 시어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존'이라는 꽃말을 가진 호자나무를 탐스럽게 그려낸 Flower Edition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잘 어울려 참 멋진 책이었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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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 페미니스트 엄마와 (아직은) 비혼주의자 딸의 자력갱생 프로젝트 : Flower Edition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1
권혁란 지음 / 그래도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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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삶은 서럽고 지난했어도 내 딸은 그러지 않길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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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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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내 To Do List 1순위는 '글쓰기'였다. 지금보다 더 많이, 내 삶을 기록해보자고 연초마다 굳건히 다짐하지만 언제나 작심'1'일 조차 못하는 의지박약자. 그래서 나는 항상 '읽는 자'와 '쓰는 자' 경계에서 머뭇거리며 과감하게 발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읽은 책이라도 글로 남기자 싶어 참여하게 된 서평단 활동은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나의 감상문'과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는 '나의 고백'은 한 발 앞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 가닿을 이야기가 되지 못했다.



솔직히 소설보다 에세이나 르포를 쓸 때 더 빛나는 작가 장강명,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 은유. 그리고 '오발 하라리'라 불리는 글 빚는 참재주꾼 작가 오후. 이 세 사람의 추천사가 앞에 떡하니 붙은 작법서라니, 안 읽을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 잭 하트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 상의 심사위원이자 1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잡지 <오레고니언>의 편집장이라고 한다. 35년 간 그의 가르침을 받은 수 많은 기자들이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이 책은 정말 '찐'이다. 사실 그동안 일상을 다루는 에세이나 소설 작법서는 자주 접했지만 대놓고 이 책처럼 '논픽션 스토리텔링'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책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하긴 미국은 논픽션 자체가 거대한 장르이고, 미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한데에 반해 한국은 잘 쓴 논픽션은 물론 논픽션 전문 작가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물론 요즘들어 다양한 층위의 삶을 다룬 에세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기자들이 심층취재해 건져올린 괜찮은 주제의 책들도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논픽션은 폭로 위주의 선정적인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반면 작년 독서모임에서 읽은 <깃털도둑>은 논픽션임에도 소설을 읽는 듯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면서 '동물권'에 대한 깊은 토론을 이끌어냈다. 거기서 논픽션이 가진 강력한 힘을 경험하며 생각했다. 우리의 인식을, 그리고 세상을 확실히 움직이려면 마성의 스토리를 갖춘 논픽션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 낼 갖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국어시간에 흔하게 배웠던 '발단-전개(상승)-위기-절정-하강(대단원)'의 내러티브와 시점이 풍부한 예문과 기자들의 생생한 작성 과정을 만나 살아 숨쉬듯 와닿는다. 캐릭터에 살을 입히고,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 스토리의 틀을 짜고 장면들을 골라 넣는 것. 어떤 디테일을 건져올릴 것인지 기준을 정하는 것. 논픽션이라 해도 픽션 못지 않은 세심함이 필요하다. 



적절하게 삽입된 도표들은 마치 열정적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글로만 쭉 풀어놓는 것보다 플롯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스토리의 절정은 어떻게 완성시키는지, 장면들은 어떤식으로 삽입하면 좋을지,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짜듯 눈에 그려졌다. 


 




"스토리는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눈송이를 닮았다."

존 프랭클린-퓰리처상 두 차례 수상




어떤 식으로 내러티브를 완성할 것인가, 어떤 장면을 쓰고 어떤 장면을 버릴 것인가. 스토리 내러티브는 글을 완성시키는 결정적 키이다. 대체적으로 호흡이 긴 논픽션 글쓰기 강의지만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는 팟캐스트도 다루고, 다양한 내러티브에서는 칼럼, 경수필, 다큐멘터리 영화 등도 다룬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필드에서 오래 글을 쓴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논픽션의 윤리를 다루며 더욱 사려 깊은 강의를 완성한다.



'좋은 스토리는 가르침을 준다'는 저자의 말은 백번 옳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내 삶에 맞닿아 있기에 더 큰 용기와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어지는 저자의 '문장력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미천한 글 재주를 가진 나에게도 기회의 땅이 저기 있다고 가르키는 구원의 손길 같다. 제대로 된 주제만 있다면, 이 책이 알려주는 방법론을 따라 글을 써보면 좋겠다. 



벌써 도구는 마련되었다. 이제 사용하는 일만 남았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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