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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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를 뒤로 한 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 오두막으로 자발적인 고독을 찾아 들어간 한 인간. <삼시세끼>, <숲 속의 작은 집> 같은 나영석 표 예능은 먹고, 자고, 나머지 시간은 자연을 즐기는 단순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했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단순한 삶이 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마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파라다이스가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지쳐있다. 


나영석 표 예능의 모태는 어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적적한 시골의 외딴 집에서 지친 몸을 쉬어가는 삶을 꿈꿨기에 <월든>은 꼭 읽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책이었다. 그렇게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너무나 친숙한 고전 <월든>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고, 내가 이 책의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다 안다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70여년 전 소로는 미국 메사추세스 주 콩코드 근처의 월든 호수에서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하는 삶을 실험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 근처의 월 임대료 값에 호수 옆 터를 사고 집을 짓는다.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 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고, 가구는 만들거나 버린 것을 가져와 쓴다. 생활하는데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숲의 새 소리가 얼마나 다양한지, 숲의 변화가 얼마나 시시각각인지 자연을 오래 들여다본 자라면 알 수 있는 그 경지에 이를 정도로 자연에 푹 빠져 살아가지만 그의 실험은 그저 자연을 만끽하는 힐링의 목적이 아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과잉생산하고, 자연을 도구로 보며 착취하는 농업과 산업화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삶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으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을 직면하고, 삶이 내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을지를 살폈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P121



그러기 위해 그는 삶을 구석으로 몰아 붙여 가장 밑바닥 조건을 탐구했다. 그 방법으로 생활을 단순화시켰다. 의, 식, 주에 관한 한 그가 취하는 행동은 가히 생명을 연장할 정도에 가깝다. 그 외는 과잉이고 사치이다. 그의 이런 실험은 생명을 연장할 정도로만 먹고, 추위를 피할 정도의 집에서 산다. 자급자족에 필요할 정도만 일하며 나머지 시간은 호숫가 주변에서 묵상을 하는 아주 단순한 삶이다. 자연과 내면의 세계에 더 가까운 삶이다. 충만한 자신만의 시간은 삶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평범이라는 미명 하에 타인의 시선에 갇힌 채 정해진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삶을 꾸역 꾸역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총기를 잃어버렸다. 나다움의 반짝임도 사라졌다. 산업이 더 고도화되고, 개인의 삶을 파편화된 분업에 몰아넣을수록 사람들은 '풍요로움' 이면의 빈곤을 절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삶을 단순화시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선택한 소로의 후예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실험을 통해 이것을 알았다.

만약 우리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전진하면서 상상해온 생활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보통 때엔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뒤에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어가게 될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고, 좀 더 자유로운 법이 주위와 내부에 설정되기 시작한다.

아니면 예전의 법이 좀 더 확대되어 한층 자유로운 의미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되고, 우리는 존재의 더 높은 질서에 순응하며 살게 될 것이다.

생활을 단순화하는 비율에 따라 우주의 법도 덜 복잡하게 보일 것이다.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더 이상 가난이 아니며, 허약함은 더 이상 허약함이 아닌 게 된다." p428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그의 사유는 잠언집처럼 깊은 깨달음을 주지만, 현실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날카롭고 신랄하기 그지없다. 대다수가 농경사회였을 당시를 비판하는 말들이 왜 오늘날에도 위화감 없이 적용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소로의 경고가 지금 어떤 상황을 초래했는지를 떠올려보면 그의 선구안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과잉 생산은 전세계적인 불평등을 초래했고, 전쟁을 끊이지 않게 만드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소로가 그토록 경계했던 자연을 대하는 인간중심적인 태도는 이제 기후 위기까지 불러와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재앙을 낳고 있는 인간의 욕망은 소로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브레이크가 없는 차처럼 멈출 줄을 모른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이 책이 오랫동안 읽히면서 많은 지성인들이 소로의 후예가 되어 자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것. 물질적 욕망이 그저 덧없는 파괴적 행위에 지나지 않다는 걸,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이 책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 책 속에는 소로가 머물던 콩코드 지역과 월든 호수 풍경을 담은 사진 자료가 66장이나 실려 있어 소로의 삶을 머릿 속에 그려내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게다가 상징과 비유가 많은 소로의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고전 전문가 이종인의 해제는 고전의 문턱을 한 층 낮춰준다. (해제의 제목도 <조용한 절망을 깨는 도끼>라니 너무나 시적이다.)



사실 <월든>을 직접 읽기 전까진 나는 소로가 평생을 호수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다른 삶을 위해 아주 애매모호한 이유로 실험을 끝냈지만, 아마도 그의 평생은 호수에서 얻은 진리와 삶의 태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나 역시 뒤늦게나마 <월든>을 읽고 진정한 자유가 있는 삶을 추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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