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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ㅣ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평점 :
계몽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기득권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아마도 계몽의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만의 상태를 일깨워 이성과 문명의 상태로 이행시키려는 '계몽'의 노력은 수많은 식민지 국가를 거느리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당한 침탈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 때문인지 다양성과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는 부정적 가치를 내포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지금 다시 계몽>은 이런 반(反) 계몽을 전면 반박하며 우리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계몽의 가치를 다시금 내세운다. '인류의 삶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 그걸 왜 부정하는가?'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야만과 폭력성이 현저히 줄어든 문명사회에 대해 저술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이어 <지금 다시 계몽>에서도 같은 주장을 거듭한다. 인간이 가진 이성과 지성이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고. 무지와 낭만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몽이야 말로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책은 3부에 걸쳐 지금 이 시기에 계몽이 중요한 가치로 다시 대두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1부 '계몽'에서는 18세기 시작된 계몽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해 그 시대 계몽주의자들이 지금 시각에선 무지한 부분도 있지만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당시 만연했던 종교적 해석과 무지에서 비롯한 수많은 오류들을 시정하고 인류의 삶을 진일보시킨 지식들을 쌓아 올렸다고 설명한다. 당시 칸트가 내린 계몽의 정의는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권위를 가지고 누군가를 계도하는 차원이 아닌 종교적, 신화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이성으로 사고 독립을 하는 것에 가깝다. 이성과 과학은 계몽을 위한 최고의 도구인 셈이다.
2부 '진보'에서는 생명, 건강, 식량, 부, 불평등, 환경, 평화, 안전, 테러리즘, 민주주의, 평등권, 지식, 삶의 질, 행복, 실존적 위협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우리의 삶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의 주장을 통해 접하는 사회에 대한 비관론은 실제 추세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지나친 논리적 비약인지를 꼬집는다. 핑커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의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고, 불평등은 사회가 나빠졌다는 증거가 아니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향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다. 환경에 있어서도 자원고갈, 인구폭발 등 녹색주의가 주장한 종말론에 가까운 주장들이 얼마나 과장되어 있는 것인지, 데이터로 증명한다. 또한 그는 기후 위기의 대안은 '탈성장'이 아니며,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다른 것들은 이견이 없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다. 민주주의 성장의 긍정적 예로 한국을 언급하기도 하고, 평등권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3부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서는 계몽의 두 축인 이성과 과학 외에도 새로운 계몽의 개념으로 휴머니즘을 꼽는다. 이성과 과학적 진보가 낳은 부작용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 휴머니즘인 셈. 핑커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인류의 번영-생명, 건강, 행복, 자유, 지식, 사랑, 풍부한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말한다. 핑커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을 가로막는 의외의 적들을 지적하며 계몽의 가치를 옹호하는데, 그 의외의 적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자, 정치적 부족주의를 만드는 부정적 민족주의, 과학이 가져온 진보를 부정하는 낭만주의자 뿐만 아니라 허무주의를 낳는 문학, 예술 등 주류 지식 문화 분파들이다.
핑커가 숫자에 근거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을 보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떤 잘못된 프레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불평등과 빈곤을 혼동하는 것은 총량 오류, 즉 부를 제로섬 방식으로 나눠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이 갖게 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더 적게 갖게 된다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핑커의 말처럼 우리는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들어 불평등을 해결하려 한다. 핑커에 말에 의하면 우리가 느끼는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이라는 '좁은 시각'에 갇힌 비관적인 생각이다. 부의 전체적인 파이를 더욱 확대하려하는 계몽주의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왜 마음 깊이 공감이 가지 않는걸까. 한국 사회만 해도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높아졌지만 빈부의 격차와 동등한 기회 제공에 있어 불평등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는데, 눈 앞에 데이터를 보니 내가 체감하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과 과연 숫자가 모든 진실을 대변할 수 있는지 의구심에 빠졌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미화하고 현재를 더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사회로 상정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테러리즘과 기후위기를 포커싱해 보도하고 있는 언론과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피폐해지는 일상 등으로 모든 기술적 진보를 부정하고 포퓰리즘에 선동되기 쉬운 현실에서 이 책의 주제의식은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와 예전에 읽었던 <포스트피크>와 유사했다. 이성과 과학 기술은 인간을 이롭게 만드는 답을 찾아낼 것이고, 인류적 관점에서 세상은 분명 나아졌다는 것.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팍팍한 내 현실이 전혀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미래에 한가지 단단한 믿음을 전해준 것 같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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