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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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기득권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아마도 계몽의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만의 상태를 일깨워 이성과 문명의 상태로 이행시키려는 '계몽'의 노력은 수많은 식민지 국가를 거느리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당한 침탈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 때문인지 다양성과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는 부정적 가치를 내포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지금 다시 계몽>은 이런 반(反) 계몽을 전면 반박하며 우리 세상을 나아지게 만드는 계몽의 가치를 다시금 내세운다. '인류의 삶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 그걸 왜 부정하는가?'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야만과 폭력성이 현저히 줄어든 문명사회에 대해 저술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이어 <지금 다시 계몽>에서도 같은 주장을 거듭한다. 인간이 가진 이성과 지성이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고. 무지와 낭만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몽이야 말로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책은 3부에 걸쳐 지금 이 시기에 계몽이 중요한 가치로 다시 대두되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1부 '계몽'에서는 18세기 시작된 계몽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해 그 시대 계몽주의자들이 지금 시각에선 무지한 부분도 있지만 이성과 과학을 기반으로 당시 만연했던 종교적 해석과 무지에서 비롯한 수많은 오류들을 시정하고 인류의 삶을 진일보시킨 지식들을 쌓아 올렸다고 설명한다. 당시 칸트가 내린 계몽의 정의는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 상태나 종교적·정치적 권위의 도그마와 인습에 나태하고 소심하게 복종하는 상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권위를 가지고 누군가를 계도하는 차원이 아닌 종교적, 신화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이성으로 사고 독립을 하는 것에 가깝다. 이성과 과학은 계몽을 위한 최고의 도구인 셈이다. 



2부 '진보'에서는 생명, 건강, 식량, 부, 불평등, 환경, 평화, 안전, 테러리즘, 민주주의, 평등권, 지식, 삶의 질, 행복, 실존적 위협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각종 데이터를 근거로 우리의 삶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의 주장을 통해 접하는 사회에 대한 비관론은 실제 추세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지나친 논리적 비약인지를 꼬집는다. 핑커의 주장에 따르면 빈곤의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고, 불평등은 사회가 나빠졌다는 증거가 아니다. 또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도입이 검토되고 있는 기본소득이 향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다. 환경에 있어서도 자원고갈, 인구폭발 등 녹색주의가 주장한 종말론에 가까운 주장들이 얼마나 과장되어 있는 것인지, 데이터로 증명한다. 또한 그는 기후 위기의 대안은 '탈성장'이 아니며, 제도적이고 기술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 다른 것들은 이견이 없이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는 것들이다. 민주주의 성장의 긍정적 예로 한국을 언급하기도 하고, 평등권은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3부 '이성, 과학, 휴머니즘'에서는 계몽의 두 축인 이성과 과학 외에도 새로운 계몽의 개념으로 휴머니즘을 꼽는다. 이성과 과학적 진보가 낳은 부작용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 휴머니즘인 셈. 핑커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인류의 번영-생명, 건강, 행복, 자유, 지식, 사랑, 풍부한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말한다. 핑커는 이성, 과학, 휴머니즘을 가로막는 의외의 적들을 지적하며 계몽의 가치를 옹호하는데, 그 의외의 적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자, 정치적 부족주의를 만드는 부정적 민족주의, 과학이 가져온 진보를 부정하는 낭만주의자 뿐만 아니라 허무주의를 낳는 문학, 예술 등 주류 지식 문화 분파들이다. 




핑커가 숫자에 근거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을 보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떤 잘못된 프레임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불평등과 빈곤을 혼동하는 것은 총량 오류, 즉 부를 제로섬 방식으로 나눠야 하고, 따라서 더 많이 갖게 된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더 적게 갖게 된다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됐다"는 핑커의 말처럼 우리는 정의와 공정의 문제를 들어 불평등을 해결하려 한다. 핑커에 말에 의하면 우리가 느끼는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이라는 '좁은 시각'에 갇힌 비관적인 생각이다. 부의 전체적인 파이를 더욱 확대하려하는 계몽주의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왜 마음 깊이 공감이 가지 않는걸까. 한국 사회만 해도 전반적인 삶의 수준을 높아졌지만 빈부의 격차와 동등한 기회 제공에 있어 불평등 문제는 더 심화되고 있는데, 눈 앞에 데이터를 보니 내가 체감하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과 과연 숫자가 모든 진실을 대변할 수 있는지 의구심에 빠졌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미화하고 현재를 더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사회로 상정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테러리즘과 기후위기를 포커싱해 보도하고 있는 언론과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 피폐해지는 일상 등으로 모든 기술적 진보를 부정하고 포퓰리즘에 선동되기 쉬운 현실에서 이 책의 주제의식은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와 예전에 읽었던 <포스트피크>와 유사했다. 이성과 과학 기술은 인간을 이롭게 만드는 답을 찾아낼 것이고, 인류적 관점에서 세상은 분명 나아졌다는 것.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팍팍한 내 현실이 전혀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미래에 한가지 단단한 믿음을 전해준 것 같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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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대한 두근거리는 예언
류잉 지음, 이지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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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남주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나쁜 남자파와 다정하기 그지 없는 선한 남자파, 이렇게 두가지 타입이 있다면 나의 취향은 무조건 후자였다. <환상 게임> 유귀부터 시작된 내 '종이 남친'들의 계보는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로 이어졌고, 언젠가 내 인생에도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초절정 미소년이 나타나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니 결혼을 하면서 순정만화를 보지 않게 되었다. 순정만화 속 수많은 두근거리는 상황과 온 학교를 뒤흔드는 인기인 주제에 별 볼 일 없는 여자 주인공에게 반해버려 수시로 얼굴을 붉히는 상큼이를 현실에서 만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졌으니까. 그만큼 내 감정도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오랜만에 대책없이 두근거려 보기로 작정하고 대만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웹소설 <너에 대한 두근거리는 예언>을 읽었다. 한때 잠시 생활을 했던 대만은 나에게 정서적으로도 너무 친근한데다 대만표 청춘 로맨스 영화 <나의 소녀시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은 주제가만 들어도 마음이 찌릉 울릴만큼 내 취향이었으니까.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선한 남주의 전형! 아 이런 소년 너무 좋아!! 읽고 나니 '바이상환' 이 녀석 때문에 너무 두근거려 아줌마는 잠들 수가 없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야오커쉰은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다. 성적이 나빠 우등반에서 보통반으로 강등되고 엄마에게 혼난데다 친구 우신위에게 인기 많은 남친 허빙쉰을 빼앗기기까지 했다. 참담한 여름방학(보통 다른 나라는 9월 학기 시작이니까)을 보내고 있던 중 새로운 반 반장 바이상환의 전화가 걸려온다. 부끄러우면 전학을 가던가 현실을 직시하고 임시 소집일에 나오라는 뼈 아픈 충고를 던진 그 녀석의 전화를 받고 물러서지 않기로 다짐한 커쉰, 하지만 등교를 한 첫 날 자신이 탄 스쿨버스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사고가 나고 커쉰은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1년이 지나 있었다. 이상한 것은 자신이 방금 반 친구 아린의 빗자루에 맞아 정신을 잃은 상황이라는 것. 게다가 1년 동안 엄마는 부자 아저씨와 재혼했고 밥맛 없는 반장 바이상환은 세상 스윗한 남자친구가 되었으며, 주변에 처음보는 친구들이 넘쳐났다. 커쉰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과 감정들로 답답함을 느끼던 중 눈 앞에서 바이상환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정신을 잃는다. 다시 1년 전 사고 후 자신으로 돌아온 커쉰. 그것은 꿈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미래를 다녀온 것일까?



학교로 다시 돌아온 커쉰은 꿈에서 본 상황들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너무도 선명했던 그 꿈이 예지몽임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바이상환은 끝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될텐데 이를 어쩐담. 그냥 딱봐도 잘생긴데다, 알고 보면 마음도 따뜻한 바이상환이 점차 좋아지는 커쉰, 그럴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간다. 두 사람의 썸은 너무 달달하기만 한데, 꿈 속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바이상환을 독하게 밀어내는 커쉰.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계속 차올라서 이제는 거부할 수 없다.  



공부도, 연애도 내 맘 같지 않았던 커쉰은 바이상환을 만나 비로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미래를 보기 전까지 주변 시선에 끌려가듯 살아왔다면, 지금은 남자친구가 죽는 미래를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운명 개척자가 됐으니까.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운명도 내가 내린 결정 하나 하나로 조금씩 바뀌어간다. 과연 커쉰은 바이상환을 구해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공부에 짓눌린 채 학창시절을 보내야하는 대만 사회, 그래서 소설 속 학교가 전혀 낯설지 않다.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바이상환, 이 녀석 뿐. 내 학창시절엔 이런 멋진 십대 소년은 없었다고.





핑크빛으로 물든던 내 머릿 속 세계는 책을 덮고 나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른 시공간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고 있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타임슬립을 한다는 설정보다 소설 속 바이상환 같은 완벽한 남자친구의 존재가 이제는 나에게 더욱 판타지적인 상황 같다. 하지만 원래 로맨스의 의의가 그런 것 아닌가? 현실에서 겪어보지 못한 빛나는 청춘을 대리체험하고, 잠시나마 두근거림에 잠 못드는 것. 그래서 로맨스물은 연애를 하지 못하는 자의 정신적 아편 같은 것이다. 해로운 걸 알면서도 끊을 수가 없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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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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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별 금지법'이 또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인종,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지향성,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인 '차별 금지법'은 이미 여러 차례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 


사실 나는 '차별 금지법'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왜 이걸 굳이 법으로 만들어야 하나 생각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고용과 처우에서 차별 당한다. 나 역시도 임신을 한 이후 주변의 분위기를 알기에 재취업에 대해 망설였고, 경력단절의 길로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여성이란 성별도 그럴지인데 수적으로 더욱 소수인 약자들은 어떻겠는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녀는 27년간 미국 연방대법관으로 지내며 양성평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섰던 진보의 아이콘이다. 이 책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그녀가 여성과 소수자 권리를 위해 개진한 법정 의견서 13편을 담고 있다. 




"법에 자유를 더 깊이 새겨 넣기 위해 긴즈버그만큼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드물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p23



미국 헌법의 모든 대명사는 남성형으로 씌여져있다고 한다. 미국이 건국되고 법이 만들어지던 시기,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2등 시민이었다. 투표권은 물론 재산권에도 제한을 받았고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제공받지 못했다. 1920년 수정헌법을 통해 여성의 투표권이 생겼지만 주 법 곳곳에 성평등을 제한하는 요소들이 만연했다.


긴즈버그는 법적으로 성평등이 보장받도록, 여성이 더 넓은 범위에서 자유를 누리고 권리를 보호 받도록 투쟁했다. 그녀가 생전 추구한 자유는 3가지 주제로 나뉜다. 여성에 대한 동등한 보호, 생식의 자유, 시민권. 이 책에는 3부로 나눠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과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을 침해한 사건들에 대해 그녀가 남긴 의견들을 정리했다. 그녀는 항상 헌법과 평등 보호 조항 근거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연방대법관으로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설령 그 의견이 소수의견으로 남았을지라도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산 집행인으로 여성보다 남성을 더 선호하는 아이다호주의 법을 위헌으로 이끌었고, 주류 판매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의 허용 연령이 더 낮았던 오클라호마주 법을 철폐 시켰다. 남자보다 부당하게 적었던 여성의 임금에 대한 임금 평등 재판에서 그녀의 의견은 소수의견이 되었지만 국회에서 평등 임금 법안을 통과시키게 만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큰 이슈가 되었던 낙태금지법에 대해서도 그녀는 줄곧 생식의 자유를 옹호하며 위헌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사회도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사회인지라 생명존중을 우선으로 하는 분위기에서 그녀의 의견은 급진적인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 중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우선 보호함으로써 생식에 있어 여성의 자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인식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녀는 여성 뿐만 아니라 인종, 장애 여부 등과 관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아래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했다. 그들도 여성처럼 종속적인 관계로 여겨져 차별과 제한 속에 갇혀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책이 인종 차별을 더욱 부추기고, 그들을 상처주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변화를 촉구하고, 장애인의 공적 생활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평등 조항에 맞지 않는 낡은 법의 핵심을 꿰뚫으며 날카롭게 반문하고,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던지며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는 그녀. 그리고 사회가 가진 생각의 틀을 바꾸게 만드는 위대한 의견들. 

그녀의 의견서를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존 법을 해석하는 의견서다보니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데  코리 브렛슈나이더 교수의 해설은 감동을 배가 시켜주는 데 정말 적절했다. 이 의견서가 나온 배경 설명과 핵심이 무엇인지 간결하게 정리해주어 몰입을 도왔다. 



때로는 법이 사회 인식 변화를 급진적으로 견인한다. 일례로 낙태금지법이 생겨서 이제 더 이상 낙태를 죄스럽게 여길 분위기는 사라질 수 있다. 차별 금지법도 더딘 사회 인식 변화를 기다리느니 법으로 강제해서 우리 사회를 보다 평등하고 건강하게 만드려는 염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법감정은 사회의 변화된 인식보다 더 과거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비해 평등을 저해하는 낡은 법들은 폐기되고, 약자를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법들이 입법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판결들이 나와 우리를 뜨악하게 만드니까.


우리에게도 만인의 평등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충분히 멋진 헌법이 있음에도, 법은 여전히 기득권의 편에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진보적인 변화를 부를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에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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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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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에 위배된 낡은 법을 꼬집고, 사회가 가진 생각의 틀을 바꾸게 만드는 위대한 의견들. 그녀의 의견서를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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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사회 - 공정이라는 허구를 깨는 9가지 질문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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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로 한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는 그 정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공정'을 화두로 꺼낸 현 정권에서 왜 끊임없이 공정 담론이 등장하는 걸까. 문재인 정권은 정권 초기부터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인상하는 소득주도성장과 비정규직 철폐를 주창해왔지만 사회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보수 언론의 여론 몰이로 보기에는 내 주변의 진보적 성향을 지녔던 사람들 다수도 이 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실 나는 너무 시의성 강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칼럼으로 읽어도 그만인 글을 굳이 책을 사서 봐야할 이유가 있나라는 편협한 생각 때문일게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난 해 가장 이슈였던 사건들을 다루면서 정의와 공정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과 대답을 내놓고 있어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책의 저자 이진우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니체 전문가이기도 하지만 현실 정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의심의 철학자'다. 철학은 고고한 상아탑이라 여겼던 편견을 여지없이 깨주는 인물이다. 그의 신간 <불공정사회>는 '누구나 공정을 외치지만 아무도 공정을 따져 묻지 않는 사회'에 던지는 의심과 질문이다. 이 책에 담긴 9가지 질문은 평등은 왜 이리 더디게 이뤄지는가, 과연 평등과 공정함이 가능은 한 것일까를 고민해왔던 나의 관심사를 정확한 언어로 정리해놓은 듯하다.



합법적인 것은 반드시 정당한가?

능력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가?

뛰어난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가?

내 것은 정말 나의 것인가?

부는 집중되어야 생산적인가?

경쟁은 효과적인 분배 방식인가?

연대는 언제 연고주의로 변질하는가?

정의는 이념 갈등에 중립적인가?

신뢰를 더는 사회적 덕성이 아닌가?



그리고 추미애-윤석열 항명 사태, 조국 자녀 입시 비리, 인국공 사태와 같은 최근에 벌어진 이슈부터 학벌, 능력주의, 연고주의 , 대기업에 의한 독점, 지나친 경쟁, 저신뢰 사회 등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병폐들을 진단한다. 현 정권에서 나온 이슈들은 공정의 문제를 착각하여 일으킨 잘못들이었다. 과정이 불공정한데 결과만 '공정을 이뤘다'고 외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특히 최근 이슈들에서 현 정권이 내로남불 정권으로 불신을 받게 된 것에는 '공정'에 대한 잣대가 자신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국 엘리트들은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한다. 저자의 지적대로 능력주의는 마치 그들이 공정한 경쟁의 대가로 해당 지위를 얻은 것처럼 눈속임을 할 뿐이다. 



"지배적 가치를 결정하고 그것을 손아귀에 넣는 사람들이 결국 나머지 가치들도 연쇄적으로 얻게 된다. 

어느 시대나 지배적 가치를 결정하는 자가 그 지배적 가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를 지배한다."

<불공정 사회> p100



정치적 이념도 뚜렷하지 않으면서 패거리로 뭉쳐 반대를 위한 반대로 분열하기만 하는 '부족주의' 정치 행태는 정말 악질 중의 악질이다. 민주주의를 퇴보하게 하고 우리 사회를 저신뢰 사회로 만든다. 저신뢰 사회는 치뤄야하는 기회비용도 상당하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선진국으로 가기엔 아직 멀기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가 내린 진단들은 대체적으로 공감이 갔지만 '자격을 갖춘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절차 마련'과 같은 세세한 대안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론 그런 방식은 그야말로 비정규직의 노예화를 부추기는 희망고문일 뿐이다. 차라리 비정규직에게는 일드 '파견의 여왕'처럼 소속감과 책임감을 덜 가져도 될 권리를 주는게 낫다고 본다.) 하지만 읽는 내내 현 정권이 마음에 들진 않고, 지금의 한국 사회는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구체적인 원인을 말할 수 없던 답답한 마음을 저명한 사상가들의 깊이 있는 이론과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언어화해준 것 같아서 속이 후련했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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