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2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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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강을 과신하는 편이다. 살아가며 병원 신세도 거의 진 적이 없고, 소화기관은 워낙 튼튼하고, 감기 같은 병은 약 먹고 푹 자면 금세 떨어져 나가는 편이다. 면역력도 좋은 편이라 전염병이 유행해도 설마 내가 걸릴까하는 안일한 생각을 품는다. 하지만 나도 내 고통을 설명하지 못해 마음 깊은 곳까지 좌절하고 소외된 느낌에 우울해졌던 기억이 있다.



회사 일로 한창 바쁜 때, 나는 의자에 발가락이 걸려 넘어질 뻔했고, 그 하찮은 사고가 발가락 골절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땅에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결국 정형외과를 가서 깁스를 했다. 고작 발가락이 부러졌을 뿐인데 내 생활은 상상도 못할 만큼 불편해졌다. 샤워를 하는 일상의 일도 혼자 하기 어려웠고,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모든 이동이 숨이 찰 만큼 힘들었다. 집안에서든 회사에서든 나는 바퀴가 달린 의자를 휠체어처럼 끌고 다녔다. 하지만 모든 동선이 나에게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 의자가 통과하지 못하는 턱이나 좁은 곳을 지날 때 결국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나를 배려하는 손길도 있었지만 자주 배려를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요구를 꾹꾹 눌러 담다가 정말 필요할 때 부탁하는 눈치도 보게 됐다. 계단이 많은 곳을 가야할 때는 머리가 아찔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목발을 오래 짚다보니 겨드랑이 아래 멍도 들고, 온 몸이 쑤셨다. 그때의 기억은 모든 나무의 잎이 다 떨어져나간 썰렁한 겨울 날씨와 함께 나를 제대로 우울의 늪으로 끌어내렸다. 매일 밤 베개가 눈물에 젖어 축축했다.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두 번째 책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는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 오희승은 CMT라는 희귀병과 관절염이라는 흔한 병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관절이나 근력이 약했던 그녀는 몸을 쓰는 일에 작은 불편을 느껴왔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온 몸이 고통에 지배 당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희귀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생겼다는 것에 '실존을 인정 받은' 느낌을 받는다. 그동안 애매한 고통을 설명하지 못하고 공감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CMT의 증상은 스스로 느끼는 불편과 달리 겉으로는 멀쩡해서 언제나 자기 증명을 해야하는 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해 '고통의 경험을 인정받고', '불필요한 실체 활동의 참여를 거부할 권리'를 얻고자 했지만, 아주 짧은 검증 시간 동안 그녀가 실제 겪는 어려움은 담당 공무원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결국 장애인 등록에 실패한다. 그녀의 고통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더욱 더 심적 고립을 느낀다. 



반면 그녀가 앓고 있는 또다른 질병, 관절염은 흔해서 쉽게 공감을 얻지만 또 그만큼 중대한 병 취급을 받진 못한다. 그녀의 남편이 가진 태도도 돌봄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아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는 감사하지만, 그녀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관절염 증세는 삶의 질을 더욱 떨어뜨려 결국 그녀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모멸감도 느끼고 끝없는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신체는 불편하더라도 언제나 말끔한 용모를 유지하려 애쓰던 그녀에게 간병인이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병원 생활은 비참함 그 자체다. 돌봄 역시 무한정 요구할 수는 없어 그녀는 사소한 욕구는 꾹꾹 참아낸다. 그래서 매일 머리를 감던 그녀는 며칠째 떡진 머리를 견뎌내고,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역겨움을 느끼며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게다가 환자다움을 강요하는 시선은 그녀를 더 심적으로 고립시킨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여가를 즐기는 것도 고통을 줄곧 호소하던 자신은 누려선 안되는 사치같아서 눈치를 보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를 이해받으려 고통을 호소하다보면 주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고, 불만투성이인 자신만 덩그라니 남아 있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고통을 숨긴 채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그들의 삶에 불타는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처럼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만나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그녀, 하지만 CMT 환우회에서도 각자 자신의 고통을 얘기하고 그 경중이 달라 서로의 고통을 견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뿐이었다. 고통 속에 있으면 이렇게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걸까.



"고통 그 자체는 절대적이기에 나의 고통이 너의 고통보다 심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대화는 소통을 막아버린다." p45


"돌봄을 받으며 감사와 사랑, 축복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매 순간 충만한 돌봄을 받을 수는 없다. 

돌봄은 인내의 한계와 능력의 부족함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과정이다. 

그러한 돌봄이 일상이 되면 지리멸렬하고 기복이 심해서 거기에서 위대성을 찾는게 억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사랑과 축복을 받은 느낌이 사라졌을 때의 황량하고 막막한 느낌, 

불편함과 억울함도 다 제각기 진실한 감정이라는 걸, 지금은 받아들일 수 있다." p114




다리가 불편했던 2개월의 시간은 저자가 겪은 고통과 비교했을때 너무나 하찮은 경험이지만 나 역시 저자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다. 나를 이해받지 못해 외롭고,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이유 없이 주눅들었던 나날들. 저자는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냈다. 저자의 삶이 희망적인 건 글쓰기가 스스로의 고통을 객관화하고 자신이 지낸 외로움의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고통의 시간에 느낀 감정들을 글로 기록해서 마음 속의 모순들도 직면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를 찾아가는 중인 그녀는 이제는 예전처럼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봄의 두 번째 플라워에디션의 표지는 이번에도 무척 의미가 깊었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말을 가진 미선나무가 가득 채운 표지는 적절한 위로의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이 독자의 아픔과 슬픔을 거둬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진했던 우울함이 산뜻하게 가셔가는 연보라빛도 인상적이다. 어느새 나에게 믿고 보는 에디션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역시나 예민한 감수성으로 쓰여진 두 번째 책에서도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공감의 폭을 넓히고, 유사한 경험에서 위로 받았다. 이런 게 독서를 하는 이유니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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