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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을 고백하다 - 의자왕과 계백, 진실은 무엇인가? ㅣ 백제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재발견 2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1년 10월
평점 :
『의자왕을 고백하다』를 읽고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오래 된 역사 시대의 내용을 오늘날에 그대로 알 수가 있으면서 재현을 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볼 때가 있다.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많은 축제 행사에 재현되는 경우도 있고, 최근에는 텔레비전에서도 각 시대의 사극을 많이 방영함으로써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얼마나 정확한지는 솔직히 예측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당시를 정확하게 기록한 기록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저자의 주장과 같이 잘못된 내용들을 지금의 우리들이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여러 역사적인 내용 중에서 바로 백제의 역사도 한 부분을 차지하리라고 생각한다. 한때 중국과 일본까지 아우르는 강대한 국가였던 백제가 너무 허망하게 망했다는 자체부터 또한 의자왕의 궁녀 3천명과 노는데 빠졌고, 성충, 홍수 등의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고, 계백 장군의 5천 결사대가 10배나 많은 신라군과의 4차례 승리 등의 모습들이 과연 정확한지 의구심을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우려에 대해서 저자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 등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비교적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한 결과들이 모이고 서로의 합의를 통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역사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저자는 나름대로 복안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의자왕하면 삼천궁녀 때문에 결국 백제를 망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의자왕을 사치향락과 술과 여자에 찌들린 사람으로 매도하기 위해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의자왕이라는 사람이다. 왕자시절과 초기 왕 시절에는 정치를 꽤 잘한 왕으로 나타나 있다. 신라도 백제에게 대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의자왕은 후반부에 매도될 정도로 흐트러진 왕이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계백 장군과 황산벌 전투 모습이다. 백제의 마지막 최고 명장으로서 계백을 사실보다는 많이 미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충신의 모습을 잘 보여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황산벌 전투의 모습도 많이 과장되어 있다는 추측이다. 여러 여건상 질 수밖에 없었던 전투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의자왕과 백제의 멸망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편견이나 오류나 실수로 볼 수밖에 없다. 백제는 신라 못지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삼국의 대립 시대에 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런 애매한 점들은 집중적으로 연구에 몰두하여 확실한 결과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