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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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예전에 자주 들었던 용어 중의 하나가 ‘쓰리’란 말이었다.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 예전에 살기가 정말 힘이 들 때에 지갑 같은 남의 것을 슬쩍 한다는 말인 이 용어가 쓰일 만도 했겠다고 이해가 되었다. 비록 소설을 통해서나마 일본에서의 프로 소매치기라는 직업에 대해서 또는 소매치기를 하는 자의 심리 등의 섬세한 묘사가 작품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로 느끼게 만들고 있다.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직업의 귀천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직업의 귀천에 따른 여러 차별과 함께 같은 인간인데도 다른 사람의 생 자체로 취급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차별받게 된 사람들의 극단적인 생각들이 결국 여러 범죄 등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한 인간의 생활에서의 평범함이 엉뚱하게 인간으로부터 고립이 되어가면서 오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으로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천재적인 소매치기이다.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때부터의 남의 물건을 훔친 체험이 결국 그 길로 빠져들게 되었고, 천재적인 모습으로  남의 지갑 등 소지품을 감쪽스럽게 소매치기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예술 자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서로 얽히고 얽혀 있는 이 소매치기 집단에서의 활동에서 독자적으로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빠져 나와서 조용히 살고 싶어도, 또는 혼자 활동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다시 호출이 도거나 연관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바로 한 아이에 대한 동정이다. 한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본 것을 계기로 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새 남자와의 관계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돈을 주고서 아이를 위한 여러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아동 시설에 보내도록 부탁하고 배려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하는 말 “너는 아직 새로 살아갈 수 있어. 뭐든 할 수 있어. 소매치기나 도둑질은 잊어버려.” 아이가 “왜?”하니까, “이 세상과 어울려 살 수 없어.”하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소매치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류 기술자라 하더라도 사람인 것이다. 사람은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인공도 결국은 인간의 고립을 조장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바로 우리 독자들에게 그런 교훈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유난하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서로 마음을 다하면서 협동하는 의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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