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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평점 :
코진스키 저의 『정원사 챈스의 외출』 을 읽고
작가의 힘이 무서우리만치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작가의 작품이 영상화하여 매체로 티비나 영화로 방영이 되면 더더욱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 작품의 시기와 맞물려 사회적인 상황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 만큼 좋은 작품은 언제 어디에서 누가 읽어도 감동을 주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에는 '사회적 지위'라는 것이 있는데 그 지위가 높게 되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더욱 더 강력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 특권층을 되기를 소망하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명문대학 입학, 대기업 입사와 같은 좁은 문을 향해 돌진한다.
노력의 보상과 최상위 자아실현의 달콤한 열매의 멋진 결실이다.
그러나 성공의 뒷면에는 '특권계급의 형성'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드리워지는데 이 소설도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실상을 날카롭게 꼬집은 모던 클래식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원조로 불리는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저자도 바로 우화 형식을 빌려 본질에는 관심 없고 허상을 좇는 대중과 매스미디어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챈스는 분명 살아서 '거기' 존재하지만 자신을 법적 서류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증명할 방법이 없는 한 '비존재'나 마찬가지로 인식된다.
그러한 비존재가 뭇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사회 지도층 인사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삶 그 자체(실상)보다 사회적 시선(허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시원시원하면서도 속으로는 허망하기 짝이 없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챈스는 어려서부터 정원에서 생활을 해왔었다.
고아로 자라나 약간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일보다도 오직 정원 일을 하고 배웠다.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일을 하고 나서는 안에서 오직 TV와 함께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집주인이 죽으면서 퇴거명령이 떨어지자 집을 나오면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챈스는 자신을 다치게 한 랜드씨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집은 뉴욕 금융계의 거물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챈스는 그저 한마디 하지 않고 오로지 촌시라는 이름으로 촌시 가드너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고 그의 과묵한 말 한마디에 뉴욕의 금융계와 거대한 사교집단에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매력남으로서 일약 월스트리트 거물의 후계자로, 대통령 정책고문으로, 미디어 아이콘으로 부상하면서 격동의 뉴욕 사교계와 정가를 접수한다.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데다 TV로 세상물정을 배운 그에게 진짜로 아는 것이라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성쇠를 반복하는 정원 속 식물들의 세계뿐이었다.
갑자기 부상한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유일하게 잘 아는 정원 애기로 피하고 말지만 오히려 그런 과묵하고 순진무구한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켜서 그를 대단한 식견의 소유자로 오판하게 만든다.
참으로 감히 생각해볼 수 없는 모습들을 발견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진정으로 엄청난 의미를 주면서도 근래 볼 수 없었던 진한 진동으로 가득 찬 변화와 풍자를 느끼게 했던 감동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