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논리 -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수정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철학과 일상은 밀접한 관련이 있을까? 나 역시도 의문이다. 학문의 가치가 단순히 우리 삶의 '즉각적' 효용성에 기준을 두고 있는 이 시대의 일반적인 판단은 철학이 '그들만의 것'이라고 치부하게끔 한다.


 그러면서도 철학자나 혹은 배운 지식인(예를 들면 진중권), 혹은 대중 철학자 강신주처럼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책을 사거나 강연을 듣고, 동시대의 시사에 대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은 무슨 심리인가? 다들 그들이 가지는 일상의 '통찰', 철학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도 그들의 철학적 통찰력을 부러워하고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궁금해서 책의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너무나 단순하게, 어린 시절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걸린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라는 슬로건이 인상에 남아서, 그들을 만든 책을 기계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철학적 통찰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체계적 혹은 이론적 사유 없이 그만한 통찰을 자연스레 삶의 지혜로서 갖출 힘은 내게는 없다. 깨달은 것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칸트의 이야기나 프랑스 철학의 기발한 생각은 넘어서더라도 일상의 모든 사람들이 판단을 잘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은 논리학이 아닌가 싶다. 나는 논리학을 수업으로도 들은 적이 없어서 너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런 철학자의 책은 난해한 문장으로 나를 괴롭히지도 않고, 가짜 논리라고 치부할 만한 문장들을 라디오밴드 톰 요크의 말이나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the unknown knowns 같은 꽤 유명한 논리적 비약들)의 말들을 사례로 하여 우리가 얼마나 가짜 논리에 휩싸이고 넘어가기 쉬운지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심지어 대중 철학책에서도 줄리언 바지니가 언급한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세히는 생각이 안나지만 이런 생각을 안하는 사람은 제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라든가. 삶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꼭 봐야 한다는 것은 전제를 이미 선취함으로써 반박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 편협한 문제 설정을 이루고 있다.


 허수아비의 오류라든가, 화려한 수사학적 문장을 파헤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못 보게 하고 논증 대신에 무력한 말들만 내놓게 하므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이나 명제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한다. 그런 판단은 우리가 옹호하는 측에서 내놓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문장에서도 발견하는데 충분한 증거가 없다거나, 일부의 옹호를 지지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이나 할 법한 부정확한 일반화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영국식 유머를 좋아하는데 철학자의 냉소적인 어투를 여기서 보게 되어서 즐거웠다. 

이 대목이 나오는 가짜 논리의 예시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명한 거짓말이다.

나는 그 여자, 르윈스키 양과 성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절반의 진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거짓 암시의 기미를 전부 제거하기 전부 제거하기 위해 드러내고 밝혀야 하는 괄호 속의 말들, 뒤에 감춰 뒀던 말들을 생각해 보라. 지방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높지요),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그런 사랑은 아니야), 셔츠 색깔 근사한데 (하지만 모양은 형편없어).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하얀 거짓말과 고약한 꿍꿍이를 숨긴 절반의 진실 사이의 경계는 희박하다. 그 경계는 어디서 무너질까? (200~201)


52. 거짓과 진실의 교집합 -절반의 진실 Half Truths 

 

책은 전혀 어렵지 않고, 또 짧게 끝난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으로서 이색적인 것은 장하석(경제학자 장하준의 동생) 교수의 연구 성과가 인용된 것이다. <Inventing the temperature>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는 우리가 물이 100도에서 끓는다는 진리로 간주되온 명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쉽게 진리라는 주장에 넘어가지 말 것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장하석 교수의 주장이 책에 등장한다. 물이 담는 용기에 따라서도 끓는점은 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의심했을 법한 사실을 비판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고 그는 따라서 <Is Water H2O?>라는 책도 발간했다. 


 장하석 교수를 검색하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최근 강연한 내용을 보기도 했는데, 철학의 가치를 세상이 경직된 사고를 하는 것을 막고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사회에는 자기처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코의 다르게 생각하기가 떠올랐다) 자신의 연구사례를 들면서 말하는 그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주장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영미권 과학철학자로서 그가 밝히는 철학의 유용성이 오히려 일반 대중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장하석 교수는 현재 캠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과 과학사(Department of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과 석좌교수다). 나는 사회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고 개인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편인데, 그의 주장에 대해서도 동감한다.


어쩌다보니 서평이 철학의 유용성과 가짜 논리로 확장된 주제를 향해가고 있지만, 일상에서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를 원하는 사람, 이성을 자기 힘으로 사용하기를 말하는 칸트식 계몽주의의 후예들, 생각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논리학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을 들춰도 좋을 것이다. 나도 이 서평을 쓰면서 의도적으로 가짜 논리를 하나 이상 사용하기는 했는데 ... 메시지의 전달과 논리적 오류 사이의 간극은 꽤 좁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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