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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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과연 열심히 일하고 모으는 사람이 당연히 잘 산다는 동화 속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믿고 사는 것일까? 어쩌면 비극적인 그 결말을 애써 눈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어긋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들추어 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20대 후반인 나는, IMF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준 경제불황시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위축되는 사람들, 가정, 그리고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생존'이라는 단어를 내면화하게 되었다. 이전의 샴페인을 터뜨리며 밝은 미래를 보도하던 방송국도 해외 촬영까지 자제해가며 국가경제에 신경썼고, 어려운 경제를 살리겠다고 금모으기 운동도 벌어졌다. 삶이 경제적 수준에 따라서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나는 그 어려움에 절대 처하지 않겠다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한다는 교훈을 자연스레 습득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15년이 지난 이후에 생각해보지만, 그 당시에 가졌던 막연한 희망보다 오히려 더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근면과 성실을 체득한 누군가는 여유로움을 가진 경제적 상위계층보다 더 악착같이 일해도 이를 벗어날 수가 없다. 경제가 불황이든 호황이든(사실 IMF이후로 딱히 호황이라 할만한 시기는 없었던 듯 하다)이들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빈곤상태에 처한다.


세계경제의 25%수준의 GDP를 자랑하는 최강대국 미국에서, 심지어 2000년대의 호황을 누린 그 시기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조금 무모한 시도를 한다. 비숙련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마치 단순히 글을 쓰는 데 6개의 직종을 거친 사람이 가볍게 겪은 생활기라고 볼 수 없다. 안다는 것과 직접 한다는 것의 차이를 그는 나름 생물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실험해보기로 한다.


그녀가 어떤 책을 전에 썼는지는 전혀 지식이 없었지만 그녀의 직업체험기는 <쇼퍼홀릭> 등에서 보는 상위층을 향한 노동과는 대비된다. 지역을 옮겨가며, 직종을 옮겨가며 겪는 주거의 문제, 직장에서의 인권, 보수, 건강의 문제, 그리고 삶을 살면서 없어지는 여가 등은 그녀가 이전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녀가 일하면서 한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의 시간을 1시간당 얼마라고 판다는 것은,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겠지만 사실은 인생을 파는 것이다. (252쪽)


저자는 자신의 근무태도나 직업을 향한 노력이 B나 B+ 이상은 된다고 평가한다. 긍정적으로 일을 하려고 했고 또한 주위의 사람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행위도 한다. 그리고 백인의 여성으로서 그보다 못한 인종적인 차별을 받는 히스패닉계나 흑인, 아시아계 이민온 이주노동자들 보다야 좋은 조건에서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며 또한 그녀는 부양할 가족도 없이 혼자서 생계를 꾸리면 되었다.


그러나 호황기에 치솟는 집값을 대기에는 시급 7달러는 너무 부족했으며 호황으로 인해 늘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는 그들이 가진 자산이나 저축으로는 턱없이 비싼 주택에 입주하는 것조차 꿈꾸지 못하게 한다. 적정 수준이라 여겨지는 30%의 주거비 이상으로 소득의 60~70%를 지출해야 했으며, 식사는 역시 신선한 음식보다는 인스턴트 음식 등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다. 역기나 에어로빅으로 건강을 다져와서 그렇지 반복적이고 휴식이 없는 비대칭적인 활동은 건강상의 문제를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도 의료보험체계의 문턱이 높지 않지만, 비싼 의료보험을 감당하지 못해 항생제마저 구입하지 못하는 2000년도의 미국이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2008년 경제 위기이후로 기대치가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묘사된 의료혜택을 못받는 워킹푸어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만 한다.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글솜씨로 책은 쉽게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 그녀가 생생하게 겪은 현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변화를 불러오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책이 의미있는 것은 아마 이 책에 나타난 현실이 결코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숙련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그녀가 느낀 워킹푸어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이 결코 실업수당만을 받으며 게으르게 노는 것이 아님에도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그들에게 중간관리자나 고객이 대하는 태도는 노예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이 일자리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지 않는 임금 때문에, 수요-공급의 법칙에 반하는 실제의 현실세계의 법칙으로 고통받고 있다.



실업이 빈곤을 야기한 경우라면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지('경제가 그만큼 빨리 성장하지 못해서'라는 전형적인 설명이 따라붙는다.),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해결책이 무엇인지('완전 고용')도 알고 있다. 그러나 완전 고용이나 그에 가까운 상태여서 누구나 일자리를 찾으려 들면 구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빈곤이 발생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서 '사회 계약'을 구성하는 믿음의 체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294쪽)


그들이 겪는 문제가 단순히 제도적인 문제라고만 여기지 말자. 전문가들로 불리는 경제학자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이들의 문제는 삽시간에 사라져야 한다. 이론상의 모델로 움직이지 않는 게 인간이 아닌가?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또한 단순히 가시적인 문제가 아닌 심층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르포르타주는 충분히 노동의 배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의 해결책이 전부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 자체를 이해하고 쉽지는 않더라도 저항하고 워킹푸어의 희생으로 누군가는 봉사받고 부를 축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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