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
스티븐 랜즈버그 지음, 김세진 옮김 / 부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경제학은 내 판단에는 이 시대와 철학이다. 과거 철학자가 가지는 학문의 권위(철학자가 당시에 하던 학문은 철학이 아니라 학문으로 통칭되었다)는 지금 경제학이 가지는 위상과 비슷할 것이다. 노벨상에 생긴 경제학상은 현실세계에 대한 경제학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학과 철학의 만남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포함관계일수도 혹은 교집합 관계 일수도 있을 몇몇 영역들의 충돌이 기대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랜즈버그는 수학, 경제학, 물리학 등의 학문에 두루 흥미를 가진 경제학자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기적 유전자>,<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 저서<현실,그 가슴뛰는 마법>은 내 기준에서는 철학과 과학의 만남을 다룬 책이다. 두 책 모두 철학적 질문에 대해 각 영역의 학문의 입장에서 답을 내놓으려고 한다.


 왜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서부터 믿음, 지식, 옳고 그름, 생각하는 방법 등 철학적 주제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는 현실의 사회과학, 응용학문이 가지는 의견의 방향성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한 저자의 입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학적 논리의 명증성과는 달리 현실의 문제는 가설처럼 단순한 가정을 포함하지 않는다. 가정 외에 생략된 변수들의 복잡성은 역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수학자인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드러낸 체계의 모순성을 저자가 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GR(Economist's Golden Rule,경제학자의 황금률)로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식은 파격적이다. 10억명의 두통과 1명의 목숨을 이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1명의 희생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비윤리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대로 10억명의 고통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EGR로 단순히 결론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기준을 따라서 생각해볼 꺼리를 만들 수는 입장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도덕적 판단을 수학적, 경제적, 물리적 확실성을 가지도록 EGR을 적용한다는 것은 논리실증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또 도구적, 계산적 이성이 가져다 준 파멸을 생각했지만 이 역시 비약인 듯 하다.


 책을 열기 전의 기대만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펼치는 몇 몇 주장의 맨큐의 경제학에서 느꼈던 당혹감과 비슷하다. 일반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논리적 추론의 결과로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만, 맨큐의 경제학이 간과하고 있는 점들을 이 저자 역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몇 몇 현실의 문제에 냉혹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판단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몇몇 가설들이 생략시킨 전제 혹은 가정들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책의 장점은 논란이 될 주제에 대해 독자들을 참여시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히려 매 순간 찬양할 만한 책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경제학자가 내놓은 답변들은 과학자가 내놓은 답변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한 확신 때문에 설득력이 덜한 것 같아, 그리고 재미가 덜한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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