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발전소 - 철학자에게 배우는 논리의 모든 것
옌스 죈트겐 지음, 도복선 옮김, 유헌식 감수 / 북로드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가끔 원제를 각국의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쓰지 않을 때도 있다. 영화의 제목을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청춘 스케치(1994)>라는 젊은이들의 청춘을 보여준 영화의 원제는 <Reality bites>이다. 한국에서의 제목은 청춘의 낭만에 대한 호기심과 추억을 보여주지만 원제는 현실의 아픔을 느끼는 청춘을 말한다. 아마 <현실이 아프다>는 요새 식으로 말한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닐까? 이러면 또 대박쳤을지도 모른다


<철학자에게서 배우는 논리의 모든 것 '생각발전소'>는 원제가 독일어로 <Selbstdenken>이다. Selbst는 자신, 자아를 뜻하기도 하고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denken은 생각하다라는 뜻이므로 <스스로 생각하라>는 뜻이다. <생각발전소>나 <스스로 생각하라>나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리의 모든 것이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생각의 기술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서문에서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이 이 책의 원형이지 않을까 싶다. 불과 19살이나 20살의 청년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 스스로 써먹기 위해 모아둔 일종의 생각하기 연습 같은 <수사학>이 논리학의 시초로 여겨졌을 줄 그는 알까? 아무튼 다양한 경우에 되풀이하여 나타나고 이용되는 생각의 틀과 이야기 전개 기술을 그는 'topoi'라 했다.('topos'는 본래 터나 자리 혹은 그 경지를 뜻하는 말이었던 것이 한 번쯤 깊이 따져볼 만한 생각의 자리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본문 11쪽 인용)


 암튼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쓴 <수사학>은 300개의 생각의 기술을 담고 있었다. 스스로 가르치는 입장이 된 후 수업 교재로도 이용된 이 책은 철학 입문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교양 수업 교재였다. 당시 교양 있는 사람의 기준은 나름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새로운 생각과 논거를 만들고 그 생각을 가지고 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의 목표는 생각의 기술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해방의 힘을 갖는 것이다. 착상, 생각, 판단을 자유롭게 하는 목적을 가진 이 책은 비슷한 부류의 책들보다 오히려 더 경쾌하게 읽힌다. 독일 저자가 썼기 때문에 독일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우리가 갖는 딱딱한 독일 문화 대신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부담스럽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술인 것이다.


 논리의 모든 것이라고 부담스럽게 소개한 부제는 빼는 편이 낫겠다. 생각에 대한 책이므로 20개의 생각 기술 중 <10 논리에 날개 달기 : 추론 >에 가장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어렵다기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근본 원리를 수학자 오일러가 처음으로 논리 구조를 그림으로 명료하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말장난보다는 그림으로 쉽게 설명한다. 


 <11 공격과 비난>에는 아도르노가 68혁명 시기 수업시간에 당한 비이성적 테러가 나온다. 어느 목격자에 따르면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갔다는 이야기에 웃음을 가장한 공격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합리성으로 유명한 위르겐 하버마스가 겉보기에는 프랑크푸르트 슈바르츠발트 농사꾼으로 보였다는 우스개소리도 들어있다. 독일인 저자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소소한 이야기가 많다. 내가 느끼기에는 머리를 엄청 굴리면서 읽을 부분은 없다.


 굳이 청소년 저자가 아니라 모든 독자층을 대상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철학 입문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장려하는 많은 철학 책 중에서도 간간이 실려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하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잘 실려있는 내가 좋아하는 부류, 좋아하는 문체를 가진 위트있는 철학책 중 하나가 되었다. 잊지 말자, 생각의 기술로 자유롭게 생각을 갖고 놀아서 Selbstdenken, 스스로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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