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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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 단순히 병리학적 증상이 아니다


 저자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다. 이 책이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예상과는 달리 110여쪽의 얇은 이 책은 단순히 피로사회만을 담은 것은 아니고 저자의 제안에 따라 우울사회를 덧붙인 책이다. 


 피로사회와 우울증이라는 말을 표지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성과사회로의 진입 이후 자기 착취로 변화한 상태에서 겪는 우울증은 독일 사회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뼈아픈 말을 남겼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기를 착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즉각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p.7)"



타인을 위한 착취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착취로의 변화


이전 사회는 규율사회로 불린다. 푸코가 분석한대로 근대는 강제와 규율이 사회를 억누르고 감시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은 감시로 인한 부작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양태를 보인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스리며(이상적인 신체를 향한 욕구, 능력있는 주체를 향한 열망) 긍정적인 격려를 사방에서 받는다. 


 자기 계발서나 TV에서 볼 수 있는 강연은 거의 "할 수 있다"를 외친다.  모두가 오바마처럼 "Yes We Can"이라 스스로 되뇌이며 긍정성을 자발적으로 띤다. 이것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발적이어서 더 강력한 동인이 된다. 규율보다 성과를 내는 것이 더 큰 권력, 그리고 자발적인 힘으로 내면화된다.


긍정성의 과잉 - 부정성이 없는 무한증식 상태 


저자는 긍정성의 과잉이 불러오는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과거 사회에 대해서 병리학적 비유는 면역 사회로 설명된다. 타자나 이질적인 것에 대한 반발, 그것을 공격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면역작용이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무한한 긍정성의 과잉, 활동상태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상의 상태인데 왜 우리는 아파하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부정성이 없는 활동이 더 역효과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긍정성과 활동성의 과잉을 떠올리며 무한한 생성을 보여주는 우리 몸의 이상상태, 암세포가 떠올랐다. 면역성이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는 점 그래서 무한증식이 보여주는 삶의 생생한 표시이면서 죽음을 향해가는 상태이다., 혹은 이것이 지나친 생리학적 비유일수도 있겠지만 부정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가 늘 최상의 상태가 아닐 것이라는 것은 어쨌든 인식할 수 있을 것 같다.


무한한 자유, 이상적 자아와의 괴리


 근대 이후로 우리는 자유와 이를 지닌 주체를 부르짖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것이라 생각했다.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우리는 충분한 자유, 혹은 지나친 자유를 지녔지만 오히려 더 불안하다. 공격성은 타인을 향하기보다는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의 자아를 공격하고 부인하며 자신에게 폭력적이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사회인가? 왜 우리는 사방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받는데도 더 침잠하며 우울해지는가?


프로이트의 논리가 대표하는 억압과 규율은 끝났다


 정신분석학적인 억압과 규율이 지배했던 규율사회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을 효과를 잃었다. 현재 정치철학적인, 윤리학적인 입장에서 새로이 관심을 얻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도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호모 사케르이면서 주인이다. 타자와의 관계가 끊어진 자아는 오히려 더 무형성을 띠며 유대관계마저도 얇아졌다. 우리가 기댈 곳은 어디인가? 이 책은 이에 관한 완벽한 해답은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글에서 이상이 없다고 느꼈던 현상의 이면에 가려진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큰 반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안내하는 길 중의 하나는 깊은 심심함, 긍정성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색의 힘, 과잉 활동을 멈추고 생각하는 사람, 호모 사피엔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것은 컴퓨터 혹은 기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우리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 책은 성과를 내기 위해 어린 아이부터 부모까지 가족 자체를 쫓아오는 성과의 압박, 이 현실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한국 사회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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