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연습 - 서동욱의 현대철학 에세이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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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괴로운 이유


 철학은 왜 많은 이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까? 수많은 알 수 없는 개념어들과 난해한 문장구조들? 일상어가 아닌 외래어들이 난무해서 단지 언어가 주는 혼돈이 그 이유인가? 생각해보건대, 나는 가끔 철학이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비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엄습하는 두려움에 알면서도 쳐다보기 싫었던 부분은 애써 비추려하는, 바라지 않는 정직성 때문에 외면하고 싶었다. 현대철학은 엄청난 전쟁의 두려움, 계몽의 기획의 실패가 던지는 그림자를 추적한다. 가끔 드러난 현실, 본질은 고통을 유발한다. 철학은 그래서 괴롭다.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거울


 하지만 플라톤이 폄하했던 유사 영상(phantasma) 혹은 환타지에 삶을 맡길 수는 없다. 환상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지 않는 곳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본래적으로, 혹은 구조적으로 원래 그곳으로 필연적인 운동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성 혹은 절대적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움직임에 반해서 우리는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보아야 한다. <철학 연습>은 그래서 스피노자, 키에르케고르, 니체, 프로이트에서 볼 수 있는 현대철학의 기본 사상을 미리 알려준다. 불안, 예속에 빠지는 어리석은 사람들, 플라톤과 기독교를 전복시키고 새 가치를 추구하는 움직임, 의식이 사라진 곳에서 볼 수 있는 무의식 등 심층적인 사유를 통해 현대철학이 가지는 난해함의 맥락, 기원을 미리 이해한다.


1부 현상학과 구조주의 - 현대 철학의 두 흐름


 그래서 1부에서 만나는 현대철학은 현상학과 구조주의로 양분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식에 대해서 고민했던 후설, 존재와 존재자에 대해 사유했던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지만 새로운 익명의 의식과 저주받은 자유를 이야기한 사르트르, 의식에서 타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레비나스, 의식이 가지는 보이지만 애써 거부한 몸을 이야기한 메를로 퐁티는 현상학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인류가 가지는 심층적인 공통된 구조를 발견하려 했던 <슬픈 열대>의 레비스트로스, 선험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에피스테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파헤친 푸코, 스피노자와 니체의 영향 아래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원리를 탈주하려는 들뢰즈, 전통 서양철학의 순수성을 해체하고 비근원적인 것, 순수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 근거들을 지탱해왔던 침입이라는 것을 이야기한 데리다는 구조주의 아래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과 엄밀하게 두 사상에 의해서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기에 현상학과 그 너머, 구조주의와 그 너머로 말하고 있다.


 1부에서 의외로 전체주의의 기원, 거대담론으로만 이해되었던 헤겔의 사상이 사실은 현대철학의 태동을 이끄는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지식이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수많은 지식들 중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 등 헤겔의 수많은 저서에서 푸코와 하이데거, 들뢰즈는 이야기를 시작해나가고 있다. 단순히 현대철학이 기존 철학에 대한 반발이라고만 이해했는데, 이전 철학자의 사상의 연결 혹은 발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기존 상식을 깨는 즐거움을 주었다.


2부 철학 연습 - 거울이 된 철학으로 비추는 보이지 않는 현실  


 이 책의 기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2부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은 현대철학의 사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가장 시원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관상으로 헤겔의 시원한 목소리(관상학자의 따귀를 때리며 골상학자의 머리를 부수다)를 들을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은 행위이며 인간의 운명은 의지와 행위를 통해 개척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듣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후련해진다. 


 사랑과 정치, 존재 등 이야기를 쉽게 이어나가기 힘들 것 같은 일상의 모습을 철학으로 보는 것은 늘 유쾌하지는 않다. 진리는 오히려 고통스럽고 그러한 고통은 감정을 수반하며 인간의 감정은 의식과는 달리 수동적으로 나타나는 유일한 것이다(어디서 봤는데 누구의 주장인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가 이야기한 풍크툼처럼 우리가 철학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그 아픔 때문일 것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삶의 괴로움이 가져다 주는 아픔을 없애기 위해 생각하는 과정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처럼 피하고도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마주쳤을 때, 내가 알지 못한 타자의 존재와 곳곳에 드러나는 새로운 길 때문이라도 철학은 계속 이어나가게 만드는 여정을 반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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