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Work - 열심히 일하면 어디까지 올라갈까?
CrimethInc 지음, 박준호 옮김 / 마티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삶이 과연 만족스러운가?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힘을 늘 이겼다고 생각해왔다. 1000년 넘게 지배해 온 익명의 신의 힘에서, 또는 국가의 왕권으로부터. 그리고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쟁취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부터 그리고 뒤늦지만 20세기에서라도 우리는 근대의 신화를 체험했다.

 

 이제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의지만 있으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과연 그러한가? 그런 우리의 삶을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장밋빛 미래로 가득 채우고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피라미드에서 살고 있다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는

 

 그에 비해 우리는 우리의 삶, 그리고 그를 지탱하는 힘으로 익명의 자본을 택했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우리 안에 내면화시키고 그에 순응하며 살고있다. 이 체제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능력만 있으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세뇌당한다. 개인의 불만족스러운 현재 상황보다 멋진 미래를 꿈꾸게 하며 현재를 부정하게 한다. 우리의 현재 위치는 우리의 게으름이거나 혹은 더욱 치열한 경쟁을 못해서이다. 우리가 원하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일 WORK을 최상의 가치로 원한다면 그들이 제일 많이 해야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을까? 자본주의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노력한대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얻어야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일해도,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순응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돈은 쉽사리 우리 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노동, 일 WORK는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지탱해주는 수단이라기 보다는 역진하는 쳇바퀴 위를 움직이게 할 뿐인 것 같다. 우리의 삶, 영혼, 자존감을 팔아서 얻는 댓가가 과연 동등한 가치의 교환인가? 

 

 

어이, 이 무능한 친구야. 자네가 더 열심히 했다면 당연히 빌 코스비나 힐러리 클린턴이 될 수 있었다고!  (p.65)

 

 

 

 

삶의 곳곳을 지배하는 무언가

 

 자본주의 피라미드에서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챕터는 특히 우리의 삶 전체가 자본주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꼭대기에서, 재벌, 정치가들, 직장 상사, 수퍼스타, 전문가, 중간관리자, 자영업, 공장, 선생과 학생, 서비스 산업, 가사노동, 섹스 산업, 군인, 경찰, 사설 경비원, 이주노동자, 감옥, 실업과 노숙, 시장의 바깥, 동물, 식물, 광물

 

 집안의 가사노동마저 근대의 산물로서 가부장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봉사되는 일이다. 또는 우리가 찬양하는 레이디 가가가 개인의 잠재력과 창의성을 실현하는 꿈을 꾸게 해준다고 믿지만 그 역시 우리의 관심을 재화로 환원하는 자본의 논리를 피하지 않고서 작동될 수 있을까?

 

 군인, 경찰, 사설 경비원에서는 우리의 재개발 과정에서 용역들이 하는 잔혹한 폭행의 과정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확인해준다. 자본의 잔혹한 지배는 국가를 가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경제적 계급을 위할 뿐이다. 그들이 수호하는 것을 그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그들을 지배하는 자의 이익이다.

 

 또는 작년 서울시장 선거를 뒤흔든 복지에 관한 문제도 들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복지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왜 남의 세금에 무임승차 하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정치인이나 기업주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가난한 모든 이의 노동이 부자들에게 무임승차를 제공하고 있으니 말이다. 복지정책에 사용되는 돈은 경제 피라미드에서 노동을 담당하는 거의 모든 계급에게 돌아오는 거의 유일한 예일 뿐이다. (p.173)

 

 하지만 복지정책의 의미하는 부와 자선은 역시 부자의 관점에서 분배된다. 우리는 우리의 불평등을 강제하는 또다른 형태의 시혜성 정책에 만족하는 지도 모른다.

 

 시장의 바깥에서는 노동력을 단순히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얻는 새로운 방식의 자본주의를 이야기한다. 이같은 논의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근 화제가 된 <피로 사회>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긍정의 에너지를 먹는 과잉 사회 또는 크라우드 소싱처럼 무료로 제공되는 플랫폼에 올리는 참여자의 행위가 그들의 막대한 부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움직인다고?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는 유급의 노동자가 따로 필요없다. 그리고 익명의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 또는 관심은 막대하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룬다면 우리의 어려움 역시 가중될 것이다. 익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이룬 페이스북의 주가를 생각해보라. 우리는 무료로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듯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막대한 부를 만들어내는 무급의 노동자일수도 있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한방은 없다

 

 이렇게 거대한 자본의 힘을 이해한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우리가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전과 같이 왕권에 의해, 신권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도 역시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없을까?

 

 이 책은 저항을 택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처럼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점차 끊임없이 전략과 전술을 바꾸며, 우리 삶 전체를 내던지지 않고도 살 수 있다. 혁명이 거부스럽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라. 우리의 자리에서 저항하며, 정당성을 주장하며,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피라미드의 비극성을 알았다면, 그 쳇바퀴 속에서 더는 올라설 수 없고 아래로 내려가는 일만이 남는 것을 알았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기존의 기구를 뒤집고, 그들의 역할을 파악하고 그 역할을 넘겨받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자본이나 경찰이 없더라도 억압과 소외를 불러올 완전히 새로운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자유로운 세상을 곧장 자동적으로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근거가 얻다. 모두가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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