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구입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나도 20대이니까 당시에 매우 힘들었다. 열심히 해야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너무 벅찬 스펙 쌓기가 정말 짜증이 났다. 영어야 뭐 개인 경쟁력이나 앞으로 더 다양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방법 중에 하나라 생각을 하면 할 만 했지만 상식공부를 하다니 정말 머리속에서 합리화 하려고 해도 취업을 위해서 이런 것까지 해야하냐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보통은 내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없었다. 시류에 휩쓸리는 기분이 싫어서도였지만 청춘이 겪는 아픔 앞에서 나도 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젊은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들은 주로 


열심히 달려라

네 땀이 결실을 맺는다

남들보다 무조건 더 열심히 해야 살아 남는다


라는 서바이벌 식의 권유가 주류였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 이 책이 달랐던 건 위로의 말이 담긴 책제목부터였다. 이 말에 시선을 빼앗긴 수많은 청춘들은 이 책이 비슷할 줄 알면서도 구입했을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책을 다 읽은 후에 같이 기억에 남는 건 아직 청춘은 인생의 아침밖에 안되는 시간이며 그리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쓴 김난도 교수의 말들은 위축되고 쓸쓸한 청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며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해주며 멘토가 되어주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아픈 청춘을 달래는 말은 가족에게도 필요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듣기를 우리는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픈 청춘이라는 말에서 나 혼자가 아픈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프다는 보편성을 또한 원했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사실로 생각되었다.


 고1 때 수학 앞부문에 나온 명제 단원은 한 가지 유용한 지식을 남겼다. 명제가 타당한 것인가 생각해보려면 대우 명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이면 아프다'로 바꿀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대우 명제는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이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상당 수 이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아무래도 우리 모두가 아픔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공통으로 겪는 아픔이 있어서 청춘의 아픔은 보편성을 지니고 모두가 겪는 통과의례로 생각이 된다. 하지만 우리 세대의 아픔은 조금은 다르다. 저자가 겪었던 아픔도 겪지만 그것보다 더 사회 구조적인 병폐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픔도 있다. 우리가 특히 이 책에 열광한 이유는 우리는 다른 시대보다 희망을 볼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단순히 내 아픔이 사라진다고 우울한 청춘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희망을 갖지 못한 내 주위도 우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우울은 개인 경쟁력 강화라는 노력만으로 해결이 안된다. 개인의 미시적 노력보다 사회에서 청춘이 겪는 아픔을 토해내는, 변화를 요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래서 나도 납득이 갔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항진 명제가 아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들 중 많은 이가 아파하고 있다. 그리고 역으로 '청춘이 아니면 아프지 않은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세대는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우리 부모세대는 아픈 우리들을 위해서 또한 희생을 거듭해 그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무한 경쟁으로 입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청소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다들 불안해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아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김난도 교수의 책을 구매한 것은 슬럼프에 빠진 대학생들에게 쓴 감명깊은 글을 누군가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후, 나도 슬럼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글을 쓴 사람이 저자라는 걸 알게되었다. 어찌되었든 저자는 힘들어하는 청춘을 향해 힘이 나는 글을 써주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간에 그래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건 우리의 아픔을 껴안아줄 저자를 포함한 누군가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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