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 - 경제학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
마티아스 빈스방거 지음, 김해생 옮김, 선대인 감수 / 비즈니스맵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 무한경쟁의 논리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다. 학력? 미친듯이 공부한다. 소수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위하여 제 나이에 누려야할 삶보다는 근면과 희생을 우선시한다. 그 속에서 겪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어린 나이에 자살하는 불쌍한 청소년들도 늘어간다. 이 경우에는 우리가 가정한 경쟁의 논리가 과연 법칙화할 정도로 모든 범위의 영역에 적용할 만한 것인지 의심해볼만 하다.

 

 저자인 마티아스 반스빙거는 경제학 내에서 이런 무한경쟁을 꼬집는 학자이다. 단순히 유럽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대륙에서 활동했으며(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 스위스 바젤대학교, 중국 청도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지냈다) 현제도 금융과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왜 그는 이러한 주류경제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 이론과 주된 논리를 공격하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로부터 이어져 온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신화적 믿음은 스토아학파의 주장에서 기원한다. 스토아 학파는 창조론자의 지적설계론처럼 신(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이 세운 계획에 따라 세상은 늘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29쪽). 이런 믿음은 후기 스토아 학파 철학의 대표자인 에픽테토스(Epictetos)의 사상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익증진에 기여하지 않는 한 결코 부유해질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이유는 보편이성의 상징인 제우스가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조정했기 때문이다.

 

 신화적 믿음이 18세기 도덕철학자인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서도 내려온 것을 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공익의 실현에 대한 믿음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경쟁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이 진실로 현실세계에서도 이루어지는 마법이 환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쟁의 논리는 단기간에 좋은 효과를 줄 수도 있겠지만, 학계, 의료계, 교육계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허튼 짓(내 기준에서는 삽질)을 생산해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환상과 실제의 괴리를 체험한다. 교수들의 논문 수 증가가 과연 학계의 질적 수준 증가로 이어질까? 오히려 쓰나마나한 주제를 내놓는 빈약한 산물이 아닐까? 교육계에서는 다양한 이익집단(학생, 교수, 관료집단)의 이익으로 학생 수의 증가와 학위를 따기 위한 기간이 증가한다. 그렇다해도 이런 교육이 실제 그들의 직업이나 향후 집단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만을 내놓는다(이 책에서는 우리가 찬양하는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도 칼날을 들이댄다).

 

 현재 한국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포괄수가제에 대해서도 유럽에서 긍정적인 결과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히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치료를 장기간의 치료로 끌 수 있으며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치료 거부 등 의료계의 수요자인 소비자들마저 원하는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얻을 수 없고 의사들마저도 양심상의 치료를 계속 이어나갈 수 없는 현실을 유럽 각국의 사례를 통해 들을 수 있다. 또한 포괄수가제 그리고 행위별 수가제의 도입으로 오히려 환자와 의료행위자의 접촉을 줄일 수 밖에 없고 새로운 체제를 관리하기 위한 관료집단이 증가하는 변태적 행위의 생산을 낳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스위스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은 2011년이므로 지금 이 시기에 한국의 쟁점과 맞닿은 이 이슈를 제3자의 입장에서(경제학자)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경쟁의 파기는 아니다. 경쟁이 불러오는 자기파멸적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경쟁과 시장이 항상 대칭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특히 이를 주장하는 집단이 숨기고 있는 부작용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만인에 대한 경쟁이 모든 집단의 질적 수준 증가로 이어질 수도 없다.

 

인간의 행위를 모두 통제할 수 있고 양적 측정이 가져다주는 신화에 대해 제동을 거는 책은 지금 이슈가 되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다. 관리자들이 경계하는 검은 양은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다수는 이러한 경쟁의 논리 없이도 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무한경쟁의 제동을 걸어야한다는 한다는 좌파의 경제학자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스위스 어느 곳에서도 들리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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