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 다이어리 - 철학자와 영화의 만남 시네필 다이어리 1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요새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을 쓴 정여울씨가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쓴 내용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책을 찾게된 이유는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여행을 읽고서 남는 아쉬움을 찾기 위해 다른 책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엿보고 싶었던 '에반게리온'과 '원령공주' 혹은 공각기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석해주기를 원했는데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안썼다는 저자의 말에 찾아낸 책이다. 이 책과 나를 이어주는 것은 '원령공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철학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떠나는 철학여행'은 동양철학과 각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정답게 이어주었지만, 정여울은 서양철학과 애니메이션을 이어주었다. 유명한 철학자도 있지만, 사진 이론에 나오는 롤랑 바르트도 있다. 나처럼 철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은 철학 입문서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수없이 나오는 해괴한 용어와 수사학적 표현, 그리고 번역체가 주는 낯설음과 두려움은 철학에 대한 발을 내딛다가도 도로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여울은 서문에서부터 솔직한 이야기로 시선을 잡는다. 이 책에서 '철학의 멘토, 영화의 테라피'를 주장하는 그는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세상의 편견에 대해 필요의 범위가 잘못 규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식이나 금융지식과는 관련없지만


 친구를 구하고 혼란스런 인생에서 인생이 나침반이 필요할 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할 때, 나랑 전혀 다른 타인을 이해할 때(이 부분에서 왠지 '어린왕자'가 생각났다), 진정한 존재의 독립을 꿈꿀 때, 예술과 역사와 문학이 바꾼 세계의 지형도에 눈뜰 때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철학자의 주장은 때로는 가슴에 큰 충격을 주기도 하지만 몰입하기에는 다소 어렵다. 하지만 영화 한 편을 본 우리의 감정과 마음을 통해 다시 살펴본 또다른 삶을 보여주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매력적인 해설을 읽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어려운 선택의 순간, 경계에 놓여있을 법한 모습들에 대한 8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철학책과는 달리 몰입이 쉽기 때문에 테라피로써 정한 거지만, 개인적으로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견디고 볼 수 없는 나의 부족한 집중력에도 대부분 이해할 만하고 유명한 화젯거리의 영화들이 나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8편의 또다른 삶을 보여주는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조지프 캠벨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굿 윌 헌팅과 수잔 손택>, <니체와 쇼생크 탈출>이었다.)

 

 조지프 캠벨이 이야기하는 신화이야기를 통해 본 센은 서로 일상의 영웅이 어떻게 자기 안에 숨겨진 신화를 일깨우고 변화하게 되었는지 다시 이해하게 한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소녀에 대한 환타지에 대해서 정여울은 신화적 모티프의 대상이라 이야기한다. 소녀가 가진 불안정한 경계성, 그리고 그들이 가지는 또다른 힘에 대한 신비함이 아마 소녀를 구원자로 그리는 것 같다.(이에 대비해 <일본열광>을 쓴 김정운은 일본 애니에 나오는 소녀들은 왜 하얀 팬티에 무기를 들고 있을까는 질문에 대해 주체적 행위가 부정되는 통제와 세뇌의 맥락에서 경험되는 욕구 좌절의 폭력적 트라우마가 제복 속에 숨겨진 하얀 빤스의 소비라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에 갇힌 센이 여러 난관을 넘어서 자신이 간직했던 가치를 뒤엎고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만나는 과정에서 여신 포스를 가지게 된 것에서 우리가 일반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잠재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에 대해서 지나친 휴머니즘적 분위기를 어릴 때부터 싫어했던 나는 그런 영화는 잘 안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 누명을 써서 억울했을 부정적 감정보다는 매일 내가 속한 공간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려는 치열하고 하지만 침착한 앤디의 모습에 감동하게 되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생각난다) 니체가 이야기하는 현실과 먼 곳에만 존재할 것 같은 초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앤디가 행하는 삶 그 자체는 니체를 알든 모르든간에 이미 주변을 변화시키는 초인이다. 니체의 훌륭한 이론의 개념은 단지 현상을 설명할 뿐이다.


 무감각한 나에게도 삶의 아름다움과 어려움을 이기는 여러 방법에 대해 꿈꾸게 하고 이성 중심의 철학이 보지 못한 틈새와 그 균열을 설명하는 여러 철학자와의 만남 또한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정여울의 글솜씨에도 감탄한다. 내가 원래 듣고 싶었던 <원령공주>에 대해서도, 몽상(daydream)의 힘과 원령공주 산과 자연에 대한 시선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감동을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느꼈다. 그래서 원령공주에 대해 생각할 이야기를 던진 바슐라르를 인용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오래 생각할 만한 것이었다.


모든 대상들은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상징적  의미를 끄집어 낼때,

강렬한 드라마의 기호들이 된다.


그것들은 감수성의 확장되는 거울들이 되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서 우리가 그것들의 깊이를

모든 것에게 부여할 때,

우리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슐라르 저, 김현 역, <몽상의 시학>,홍성사, 168쪽



 철학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감수성 깊은 글들은 철학을 읽으면서 이성의 힘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만났던 있을 법한 인물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멘토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우리가 삶을 만날 때, 혼란스러운 그 순간에 도움이 절실할 때, 가상이지만 있을 법한 그 순간을 헤쳐나간 주인공들의 삶을 해설해주는 철학의 힘보다도 오히려 인물들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누가 읽어도 좋을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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