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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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즐기는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아릿하게 기억에 남는 지인의 대답은 "그냥 느끼세요." 였다. 질문의 요지가 ’어떻게 느끼는건데요?’ 였는데, ’그냥 느끼세요’ 라니. 더 물어볼 엄두가 안나 ’아, 그렇군요.’ 로 짧은 문답이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도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생각에 책장에 꽃혀있는 몇 편의 시도 볼 생각 없이 묵혀두고 있던 차였다, 이 책이 나에게 온 건.

사랑과 행복. 두 개의 키워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아끼고 애타게 찾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사랑. 아무리 말해도 모자라고, 아무리 들어도 고픈 이 한 단어, 사랑. 시가 가장 많이 노래한 주제도 ’사랑’이었다. 바로 이 주제를 가지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애송되는 알짜배기들을 모아 장석남, 김선우 시인의 해설을 덧붙인 책이 바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다.

사랑으로 풀어낸 50편의 시는 아름답고, 잔잔하고, 때론 위트있으며, 지독히도 고독하기도 하고, 발칙하기도 한 노래들이다. 안도현 시인은 쉬운 가사말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며 고백하고, 황지우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기다림의 고통을 살갑게 노래한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 며 당돌하게 고백하는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 시인의 노래는 수줍지만 솔직한 속마음의 표현일거다. 그런가하면 남진우 시인은 ’어느 사랑의 기록’ 속에다가 발칙한 사랑의 장면을 그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달짝지근하기만 할까? 신달자 시인은 상처조차 감싸안는 ’열애’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러거나 이러거나 사랑이란 결국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문재 시인이 똑부러지게 사랑을 정의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올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 이라고 말이다. 즐거운 일을 할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누군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자신이 보인다면, 그렇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고 간단한 사랑 정의가 또 있을까 싶다. 결국, 사랑이란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이 아닐까.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책을 뒤적뒤적이다가 문득 무릎을 탁 쳤다. 그 때, 지인이 했던 말이 가슴으로 징-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느"끼라던 말, 도대체 잔뜩 멋부린 글자 몇 개를 어떻게 느끼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시를 읽는 데 글자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여졌다. 아, 이런 게 시를 읽는다는 거구나. 아직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도 명쾌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도움을 청하는 당신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다. "그냥 느끼세요."

다행히 이 책에는 여전히 어려움에 허우적대는 나와 당신을 위한 친절한 길잡이가 있다. 장석남과 김선우 시인의 친절한 해설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느낌의 두 해설자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 그리고 시인 이야기는 아리송한 시의 골목골목을 짚어주는 휴대용 네이게이션과도 같다. 물론 한낱 기계보다 더 친절하고 사람 내 가득한 입심을 보여준다. 시인의 나이까지 콕 집어가면서 숨은 얘기를 전해주는 장석남 시인과 도발적인 감성으로 해석을 가미한 김선우 시인의 해설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나의 책 사용법

 시란 혼자 몰래 즐겨도 애틋하니 즐거운 법이지만, 나눌 때 그 기쁨이 배로 커지는 게 아닐까. 주제가 사랑인지라 읽는 내내 누군가가 문득 동그마니 떠오르기도 하고, 애타게 그리워지기도 하고, 괜시리 기억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소설에서 나오듯 편지에 꾹꾹 눌러 적어볼까 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에 들었던 글귀를 적고는 그의 번호를 누르고 가만히 전송 버튼을 누른다. [너에게보내는] 으로 시작해 짧게 글귀를 적어놓고, 마지막에 _시인의 이름 석자를 적어 보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답장이 왔다. 딩동-. "누가 할 소리를 이리도 먼저 콕콕 집어 해놓은거야? 얄밉게 시리..." 라며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그.

52분부터 10분마다 시간맞춰 2분 12분 22분 32분 42분 52분 다시 2분 12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찍어 보낸 9통의 문자에 그는 즐거웠다며, 더더 사랑하게 됐다며 대답해줬고, 조금은 느리게 가던 토요일 오후는 기분좋은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여자건 남자건. 사람이란 때로 작고 별것아닌 것에 큰 감동을 느끼게 마련. 조금 생소하고 닭살돋을지 모르지만, 오늘 사랑하는 님을 위해 맘에 드는 구절 몇 자 꾹꾹 눌러 색다른 문자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시인만이 아는 비밀을 꽁꽁 감추어둔 시 구절 속에서, 우리만의 사랑스런 기억을 끄집어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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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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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책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헉' 이었다. 온갖 찬사를 받은 책이었지만 일단 두꺼운 책을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첫 만남부터 삐걱 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펼쳐 조금씩 읽어나가는데 몇 번씩이나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실제로 집어던져놓고 하루 이틀 후에야 다시 집어들기도 했다.) 고백하건데 이 책의 줄거리는 날 화나게 했다. 정말로 많이.

 

주인공은 13살 소녀 안나. '전골수구백혈병'이란 희귀병을 앓는 언니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 맞춤으로 태어난 안나는 13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언니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줘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돈을 모아 한 변호사의 사무실 문을 연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라는 당돌한 한 마디와 함께. 재판에서 이기는 것만을 우선으로 하는 이기적인 변호사 캠벨은 왠일인지 소득도 안될 이 일에 뛰어든다. 엄마로 살기 위해 버렸던 변호사의 일을 자신의 딸과 싸우기 위해 다시 잡은 안나의 엄마 사라. 고소장을 받은 순간부터 집 안은 냉랭한 한기가 들고,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안나를 위해 아빠인 브라이언은 자신의 소방서 방으로 안나를 데려간다.

 

고소의 목적은 안나의 '의료 해방' 즉, 안나의 동의 없이 부모의 의견만으로 안나의 신체를 의료적 행위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데 있다. 그 발단은 병이 재발한 언니 케이트에게 신장 이식을 해 줘야 하는 현실이었다.  왜 안나는 여태껏 당연스럽게 해 오던 일에 STOP을 제기한걸까? 13살이 된 지금에서야 자신의 상황에 부당함을 느낀걸까, 아니면 단순히 언니에 가린 자신을 중심에 놓고 싶었던걸까?

 

아직 부모가 아니어서 그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어서였는지, 두 딸의 어려움 사이에서 힘들어하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거라고 주장하는 사라의 모습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한 딸에게 모든 신경을 쓰는 바람에 다른 자식들 즉, 제시와 안나에게 소홀할 수 밖에 없던 부모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한 명의 딸을 살라기 위해 한 명의 딸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게 괜찮은걸까. 내가 안나라면? 글쎄.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마 난 그렇게 강한 소녀가 되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안나는, 복수를 원했던 것도, 자신만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던 안나는, 정말 강하고 멋진 소녀였다.

 

이야기의 결말은 아름답다면 아름답고, 조금은 슬픈 해피엔딩이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안나는 원하는 걸 얻고, 자신이 바라는 마지막 소망을 지킨다. '첫 번째 별은 아주 밝게 빛나지만, 두 번째 별을 알아볼 때쯤이면 너무 늦어버'리는 쌍둥이별과 같이, 주변 사람들은 안나를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끊임없이 빛나고 있었는데 말이다.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 완벽할수만은 없다. 때론 누군가 양보해야 하고, 누군가는 아파야 한다. 책의 결말이 나름대로는 모두  빛나는 듯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소설같은 결말이라, 혹은 소설같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어 마음이 아렸던 책. 최고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 모른다. 모두가 최고일 수 없기에 오늘도 우리의 선택은 힘들지만, 적어도 '최선'이라 말할 수 있도록 오늘도 생각하고 살아가기에 우리의 삶은 빛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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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Book, The Cities of Ballpark : New York, Boston, Chicago, Atlanta, Los Angeles - 전5권 - 뉴욕, 보스턴, 시카고, 애틀란타, 로스엔젤레스에서 만나는 야구의 모든 것
F & F 엮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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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 올림픽. 우승컵을 거머쥔 한국 야구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야구 경기 하나 제대로 관람하지 못하는 어벙벙함을 가진 내 손에 쥐어진 <The Cities of Ballpark>. 올림픽 이후로 야구란 운동종목에 관심이 생겼기에, 야구의 원조격인 미국 야구가 궁금하단 욕심에 집어든 책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

 

이 책은 일단 세 가지 매력이 있다. 하나는 미국 주요 5도시와 그 곳을 기점으로 한 구단, 구장을 소개함으로써 '야구'에 대한 정보와 흥미를 담았다는 점. 둘째는 선정된 도시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점 (구체적인 가게 정보 및 위치 소개는 실제 그 도시에 놀러가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하게 쓰일 듯 싶다). 마지막으로 도시별 낱권 분리로 휴대가 쉽다는 점.

(개인적으론 야구 자체에 미친듯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책 자체만으로도 큰 선물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MLB와 삼성출판사가 함께 만들어낸 이 새로운 스타일의 travel book은 시각적인 효과로 독자를 매혹시킨다. 물론 나같이 기본 정보조차 부족한 사람들이야 길지 않은 소개글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글을 대충 훑어본 후 책을 휘휘 넘기다 보면 수많은 현지 장소와 사람들의 사진에 넋을 놓게된다. wow! 당장이라도 그 도시로 날아가, 야구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도심을 휘젓고 싶은 마음이 뭉클하게 올라온다.

 

<The Cities of Ballpark>에서 소개하는 도시는 총 다섯 곳, 뉴욕, 보스턴, 시카고, 애틀랜타, 그리고 로스앤젤레스다. 야구를 기본 소재로 한 트레불 북이니 잠시 각 도시의 대표 구단을 소개해볼까? NY모자로 너무나 유명해져버린 뉴욕 양키즈, 양키즈의 사랑을 양분하는 뉴욕 메츠. 보스턴으로 넘어오면 정열의 레드삭스가 기다리고 있다. 시카고로 건너가볼까?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컵스 그리고 화이트삭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다른 도시들보다 조금은 생소한, 그러나 역사가 살아숨쉬는 애틀랜타에서는 보스턴에서 연고한 브레이브스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박찬호로 대표되는 LA 다저스까지. 명문 중의 명문인 야구 구단들을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나를 이끈 건 각 도시의 모습을 스케치할 수 있는 Play Ground 였다. 지금 그 곳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열정과 젊음을 사진 너머로나마 느끼고, 당장은 못가지만 사진으로 만나는 도시 곳곳의 모습들을 마음속에 눈도장 찍어 넣어둔다. 언젠가 간다면 꼭 들러봐야지! 라고 다짐하면서.

 

그동안 쳐져 지내면서 잊고 있던 활기를 저 속에서부터 끄집어올려 빵하고 터트려준다. 야구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사람, 이제 슬슬 흥미가 동하는 사람, 미국이란 나라에 매혹당하고 싶은 사람, 곧 미국 어딘가에 놀러갈 사람. 그리고 나처럼 잊은 활기를 되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슬쩍 열어보길. 아마 자기도 모르는 채 빨려들어갈 듯 책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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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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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나에게 '노희경'이란 이름은 그다지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는 제목은 몇 날 몇 일을 나를 따라다녔다. 어떻게든 만날 사람이라면 만나게 된다고, 이 책과의 인연도 그랬나보다. 그렇게 책이 나에게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 따위, 라며 믿지 않았던 나. 사랑에 발끝을 적시면서도 여전히 서성이는 나. 그런 나를 노희경은 다독여줄 수 있을까. 훅훅 넘길 수 있는 책임에도 쉬이 페이지를 열 엄두를 못 냈던 건, 그런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드라마 작가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멋진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한 사람 상대방에 대한, 가족에 대한, 친구에 대한 모든 사랑을 포함한다. 그녀의 글을 읽고나면 더 오래 가슴이 짠해진다. 대부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들은 참 쉽게도 쓰여졌건만 그녀의 글은 다시 한 번 곱씹게 만든다. 사랑이란 엄청난 녀석을 고이 전해주기 싫다는 그녀의 똑부러진 심보일까?

 

자신의 이야기, 조금은 부끄러울 지난 과거를 들쑤시는 이야기를. 마치 남의 얘기하듯 전해준다. 쉽사리 꺼내기 힘들 가족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온다. 분명 그녀의 이야기는 흔치않다. 그러나 사람을, 세상을 관찰하고 글을 쓰는 그녀의 능력이 발하는 것일까. 글 군데군데에서 읽는 이 마음의 어딘가를 날카롭게 찌르는 무언가가 있다. 엄마를, 아버지를, 형제자매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난 앨범 한 번 들적이게 만드는 감수성을 몇 줄 글의 고백으로 만들어낸다.

 

'나도 젊었을 적엔, 어렸을 적엔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 세상은 그런거라고. 사람이란 변하는 거라고. 그래서 지금에서야 당신들에게 용서를 빈다.'는 그녀의 고백은 이미 이 곳에 없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부쳐지지 않을 편지이다. 그럼에도, 읽다보면 왠지 그 마음이 이 공기중을 지나 그들이 있는 어디론가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보태게 된다. 몇 자 글 안에서 그만큼의 진심과 애정이 느껴지기에.

 

영화 '화양연화'에 대한 부분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한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 (74p)  

읽는 순간 머리를 탁 하고 강타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사랑을 하는데도 나만 알던 내가 새삼스레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사랑이란 이름아래 아픈 척하며 믿음만을 갈구했던 내가 떠올라서. 철없는 나를 위해 작은 것부터 세세히 신경써줬던 주변사람들과 그가 떠올라서. 항상 받으려고만 하고 내가 먼저 챙기고 반응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이 글귀를 읽는 순간 그렇게 얼굴 빨개지도록 창피하고 미워졌다.

 

 어느 페이지에선가 나왔던 말이 떠오른다.

"어느 날 말로만 글로만 입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나를 아프게 발견하다. 이제는 좀 행동해보지. 타일러 보다."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 자기만 알던 세상의 알을 깨고 나오는 일. 항상 나만 상처 받았다고 믿던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고 있음을 깨닫는 것. 말이 아닌 행동으로 타인을 감싸안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 그러나 이 순간조차 말로밖에 하지 못하는 나의 어림이, 글을 쓰는 손이 부끄럽다. 그래서 나온 말인가보다. 말로만 어른이라고. 어른이란 도장이 찍히는 나이, 그러나 아직은 작은 아이인 나도, 이제 툭, 툭 나를 둘러싼 알 껍질을 쳐내야겠다. 비록 깨진 껍질에 상처입더라도...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이 아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사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 그럴까? 다분히 구체적이기까지 한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혔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그 속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추억을, 이야기를 되살려보고 다시 현재에 충실하도록.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책에는 책 전체가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는 경우도 있고, 단지 어느 한 부분만이 특정 사람에게 좋게 다가가는 책도 있는 법이다. 이번 노희경의 책은 후자가 아닐까.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느 한 문장이, 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 좋은 책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않는다 (조진국) 

두 사람이 있었다 (김종선) 

사랑의 만남과 이별,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록한 에세이. 방송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쓴 에세이란 점에서도 노희경 작가의 이번 작품과 비슷한 점이 많다. 

외딴 방 / 엄마를 부탁해 

엄마, 아버지, 가족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그들에 대한 못다한 말을 풀어냈단 점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부모에 대해 아쉬움과 못다 풀어낸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청춘들 혹은 모든 사람들. 

지금 사랑에 빠져 행복감과 고달픔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사랑이 믿음보다 눈물보다 먼저 요구하는 것, 그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예민함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 남자에게 순정을 다짐했다. 그가 지키지 못해도 내가 지키면 그뿐인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친구다. 

 나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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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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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문제다. 종종 책을 읽다 보면 객관적으로 그저 그런 것을 느낌에도 내 안의 무엇과 공명해 '좋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 있다. 반대로 객관적으로 괜찮다 싶은 책임을 아는데 내 안의 무엇과 핀트가 맞지 않아 '별로다' 라고 말해야만 하는 작품이 있다. 김훈이란 작가를 글로써 처음 만난 <바다의 기별>은 나에게 후자의 작품으로 다가왔다.

 

김훈이란 작가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건 지난 북페스티벌 작가와의 대화에서였다. 아련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 때 그의 말 중 나를 움직인 것은 다음의 말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안 된다. 그 걸 가지고 나는 쓰고 있다." 이런 류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젊었을 적에는 오히려 쓸 수 있는 단어가 많았다던 김훈 작가. 사랑도, 열정도, 투쟁도, 희망도 모두 그가 쓸 수 있는 단어였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런 단어들은 하나도 쓸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난 세상을 너무 쉬이 보고 있던 게 아닌가 마음을 쓸어내린 기억이 난다.

 

그런 그의 반듯하고 딱 부러지는 인상이 <바다의 기별> 전체에 아우러 녹아있다. 세태에 대한 직설적인 꼬집음,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굳은 소신,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날리는 강타까지. 그가 말하는 철없는 젊은이인 나는, 그래서 그의 글이 무섭다. 너무나 반듯한 직선같은 그의 글은 지나간 과거의 추억까지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풀어놓는다. 정확히 그려지는 장면에 차가움을 가장한 따뜻함이 녹아내려있다.

 

그렇다. 그의 글은 진실로 따뜻하다. 매서운 한마디는 결국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꺼내놓지 않을 수 없던 그의 한 마디였을 뿐이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그의 눈과 손은 담담하지만 그 시절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꽉 채워진 보따리와 같다. 설사 그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그가 그리는 세상을 마음 속에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이다. 내용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만, 김훈 표 이야기는 결코 춥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구수한 시선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있다. '바다의 기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말과 사물'. 무엇에 의한 나눔일까. 책을 읽으면서는 알 것도 같던 그 구분이 막상 쓰려고 보니 모호해진다. 일상, 과거를 오가는 김훈의 사색. 현실에 대한 김훈의 시선, 글에 대한 김훈의 논리. 그러나 이렇게 나누는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에세이란 읽고 느끼면 된다. 조금은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며, 그러나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

 

이야기를 마치면서 한 가지 고백을 해야겠다. 그의 '말과 사물'을 읽으며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글쓰기라는 건 쉬이 변하기 힘든건지. 여전히 난 또 정서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문장은 몽매해지고, 사실은 내 글에서 멀어져간다. 오로지 사실만을 담아,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놀라운 문장에 가까워지길 고대하며 서투른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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