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왜 읽어야 하나,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도대체 무엇을 읽어야 하나. 책을 읽어야 할, 읽고 있는,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책에 대해 하는 질문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정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 가령 책은 정보를 얻기 위해, 교양을 쌓기 위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등의 이유로 읽을 수 있다. 어떻게? 시중에 나온 수많은 책에 의하면 대세는 느리게 읽기다. 무엇을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는 인문서를 읽어라, 고전을 읽어라 뭐 그런 말들.

 

그러나.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이런 말들에 정말 동의하냐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건. 때로 위의 이유들이 맞아떨어질 때도 있겠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책'이란 읽고 싶어 읽는 것이고, 이후의 목적이야 어찌됐건 그 바탕은 항상 '무상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요컨대 '책'에 있어 읽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면 그만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책에 있어 '무상성'만을 주장하는건 아니다. 단지 동물적 욕구가 없는 행동에 다른 이유를 붙인다한들 그 마음과 행동에 진정함이 깃들 수 있을까란 의문을 제기한 것 뿐이다. 왜 이렇게 재미없는 서두가 길어졌느냐 하면,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던 한 권의 작은 책 <소설처럼>(2004.문학과지성사)을 소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근래 나오는 수많은 독서 관련 책들이 여러 방법론과 이유를 그럴싸하게 대고 있지만, 이 책은 근본으로 돌아가기를 요구한다. 어린 시절 글자와 이야기에 빠졌던 즐거움으로. 즉 소설을 '소설처럼' 읽으라고 요구한다. 아니, 요구랄 것까지도 없다. 그저 툭툭 던져대는 이야기들만으로 저자는 우리를 과거로 던져놓는다. 단 한 순간이라도 '책' (혹은 활자)의 즐거움을 만끽했던 경이로운 시간으로.

 

책은 4개의 목차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연금술사의 탄생' 에서는 아이가 이야기를 듣고, 글자를 깨우치고, 직접 책의 세계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가 이야기의 세계에 입성하는 것을 연금술에 비유하다니, 로맨틱한 사람이다!). 책을 읽다 문득 생각에 빠진다. 지금은 당연하게 책을 읽고 있는 나도 그 놀라운 시작의 시간이 있었을텐데! 마치 처음부터 잘 읽었다는 듯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은 그 순간이 아쉬울뿐이다.

 

두번째 '책을 읽어야 한다' 에서는 시대(범람하는 영상 매체) 탓만을 하며 '책 만세!'만을 부르짖는 현실을 꼬집는다. 바로 여기서 오랜 시간 중등교사로 일하며 느껴온 그의 독서 교육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데, 그 방법이란 '책 읽어주기'다. 서너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책을 읽어준다고? 어쩌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우리에게 있어 독서란 혼자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동적인 행위로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 읽어주기'란 '독서=어렵다'의 공식에서 벗어나 책과 화해하게 하는 가장 유용하고 색다른 방법이다.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세 번째 '읽을거리를 주어라' 에서는 읽어주기 방법을 통해 독서 세계에 입문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입시란 벽 앞에서 좌초된 아이들. 그러나 선생님이 읽어주는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를 들으며 그들은 독서의 세계에 빠진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듣기'만 했을 뿐인데.

 

마지막, 드디어 ~읽을 권리, ~않을 권리, 즉 책에 대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여러 권리가 나온 '무엇을 어떻게 읽든......' 이다. 10가지의 욕구가 나오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건너뛰며 읽을 권리' 와 '소리내서 읽을 권리'였다. 모르면, 다음이 궁금하면 건너 뛸 수도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때인지 6학년때인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독후감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로서 쉽지 않은 3권짜리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나름 지루하고 어려웠던 '~백과사전' 부분은 죄다 빼놓고 읽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때부터 책에 대한 권리를 만끽하고 있던 셈이다.

 

'소리내서 읽을 권리' 또한 나를 중학교 시절 국어 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국어 책 내용을 돌아가며 읽고, 틀리면 다음사람으로 넘어가는 규칙이었다. 조금이라도 많이 읽으려고 틀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던 내가 떠올라 웃고만다. 그깟 읽기에 집착하던 중학생의 모습이라니. 요즘도 가끔 소리내서 책을 읽는다. (여전히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건 속으로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오자마자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220p) 활자 스스로 공간을 떠다니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마지막 한 장. 잠시 멈춘다. 책을 마치는 아쉬움이 이렇게 몸서리치게 느껴진 적이 내 생애 몇 번이나 있었을까. 책에 글자 하나 안 적는 내가 "이 책이 나에게 오게된 건, 아, 운명이란 이럴 때 쓰는 단어일지도." 라는 같지도 않은 문장을 속표지에 적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권해준 이웃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모두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나는 소설을 '소설처럼' 읽고 있는지. 책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모든 것일 수 있다. 그저 읽고 싶은 욕구에 몸을 맡기고 책에 대한 다양한 권리를 내세우며, 내 맘대로 읽어보는 건 어떨까. 책에 푹 빠진 사람, 책과는 왠수진 사람, 책에 대해서 온갖 이유가 필요한 사람 모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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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1-0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굼실이님, 땡스~^^
서평 보니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저도 읽고 선물도 하려구요. :)

굼실이 2009-01-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 서평 읽고 책에 관심가지셨다니 기쁜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