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 -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김선우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비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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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즐기는 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시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아릿하게 기억에 남는 지인의 대답은 "그냥 느끼세요." 였다. 질문의 요지가 ’어떻게 느끼는건데요?’ 였는데, ’그냥 느끼세요’ 라니. 더 물어볼 엄두가 안나 ’아, 그렇군요.’ 로 짧은 문답이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 후로도 여전히 시는 어렵다는 생각에 책장에 꽃혀있는 몇 편의 시도 볼 생각 없이 묵혀두고 있던 차였다, 이 책이 나에게 온 건.

사랑과 행복. 두 개의 키워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아끼고 애타게 찾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사랑. 아무리 말해도 모자라고, 아무리 들어도 고픈 이 한 단어, 사랑. 시가 가장 많이 노래한 주제도 ’사랑’이었다. 바로 이 주제를 가지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애송되는 알짜배기들을 모아 장석남, 김선우 시인의 해설을 덧붙인 책이 바로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다.

사랑으로 풀어낸 50편의 시는 아름답고, 잔잔하고, 때론 위트있으며, 지독히도 고독하기도 하고, 발칙하기도 한 노래들이다. 안도현 시인은 쉬운 가사말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며 고백하고, 황지우 시인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기다림의 고통을 살갑게 노래한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 며 당돌하게 고백하는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 시인의 노래는 수줍지만 솔직한 속마음의 표현일거다. 그런가하면 남진우 시인은 ’어느 사랑의 기록’ 속에다가 발칙한 사랑의 장면을 그려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달짝지근하기만 할까? 신달자 시인은 상처조차 감싸안는 ’열애’의 시간을 회상한다.

그러거나 이러거나 사랑이란 결국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이문재 시인이 똑부러지게 사랑을 정의했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올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 이라고 말이다. 즐거운 일을 할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누군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자신이 보인다면, 그렇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고 간단한 사랑 정의가 또 있을까 싶다. 결국, 사랑이란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이 아닐까.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책을 뒤적뒤적이다가 문득 무릎을 탁 쳤다. 그 때, 지인이 했던 말이 가슴으로 징- 하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냥 느"끼라던 말, 도대체 잔뜩 멋부린 글자 몇 개를 어떻게 느끼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시를 읽는 데 글자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여졌다. 아, 이런 게 시를 읽는다는 거구나. 아직 시가 어려운 당신에게도 명쾌하게 알려주고 싶지만, 도움을 청하는 당신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다. "그냥 느끼세요."

다행히 이 책에는 여전히 어려움에 허우적대는 나와 당신을 위한 친절한 길잡이가 있다. 장석남과 김선우 시인의 친절한 해설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느낌의 두 해설자가 들려주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 그리고 시인 이야기는 아리송한 시의 골목골목을 짚어주는 휴대용 네이게이션과도 같다. 물론 한낱 기계보다 더 친절하고 사람 내 가득한 입심을 보여준다. 시인의 나이까지 콕 집어가면서 숨은 얘기를 전해주는 장석남 시인과 도발적인 감성으로 해석을 가미한 김선우 시인의 해설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나의 책 사용법

 시란 혼자 몰래 즐겨도 애틋하니 즐거운 법이지만, 나눌 때 그 기쁨이 배로 커지는 게 아닐까. 주제가 사랑인지라 읽는 내내 누군가가 문득 동그마니 떠오르기도 하고, 애타게 그리워지기도 하고, 괜시리 기억에 젖어들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소설에서 나오듯 편지에 꾹꾹 눌러 적어볼까 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마음에 들었던 글귀를 적고는 그의 번호를 누르고 가만히 전송 버튼을 누른다. [너에게보내는] 으로 시작해 짧게 글귀를 적어놓고, 마지막에 _시인의 이름 석자를 적어 보냈다. 한 개, 두 개, 세 개......

답장이 왔다. 딩동-. "누가 할 소리를 이리도 먼저 콕콕 집어 해놓은거야? 얄밉게 시리..." 라며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그.

52분부터 10분마다 시간맞춰 2분 12분 22분 32분 42분 52분 다시 2분 12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찍어 보낸 9통의 문자에 그는 즐거웠다며, 더더 사랑하게 됐다며 대답해줬고, 조금은 느리게 가던 토요일 오후는 기분좋은 시간으로 채워질 수 있었다.

 여자건 남자건. 사람이란 때로 작고 별것아닌 것에 큰 감동을 느끼게 마련. 조금 생소하고 닭살돋을지 모르지만, 오늘 사랑하는 님을 위해 맘에 드는 구절 몇 자 꾹꾹 눌러 색다른 문자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시인만이 아는 비밀을 꽁꽁 감추어둔 시 구절 속에서, 우리만의 사랑스런 기억을 끄집어내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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