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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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여행기야, 소설이야?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한참 책을 뜯어봤다. 얼핏 내용을 훑어보니 여행기 같지는 않은데, 곳곳에 박혀있는 사진이며 여행지 소개글은 여지없는 여행 에세이의 느낌이고. 결국 읽지도 않은 책 분석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책에 몰입했다. 허우대 멀쩡한 돈 잘쓰는 카사노바, 막장 드라마 때려치우고 도망가는 드라마작가,  한때 잘나갔지만 이제는 감이 떨어진 사진작가. 쫓기듯 도망 온 중년의 사내. 이거 영 끌리지 않는 인물들의 조합인데? 나와 이 책의 첫 만남은 이렇게 떨떠름하게 시작했다. (읽어보니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듯한 재밌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책이 나오자마자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놓지 못한 걸 버리려고, 새로 시작할 무언가를 찾으려고 서울과 정반대인 세상의 끝, 부에노아이레스를 찾는다. 부에노아이레스는 역시 밤의 문화지~ 라면서, 손님은 왕이라는 고전적인 진리를 무시한 채 여왕으로 군림하신 OJ여사님의 하숙집으로 몰려든다.

 

그냥 그런 이야기인가보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웃음도 나고, 공감도 된다. 쯧, 하고 혀 한 번 차주다가 어어? 그럼 안 되지~ 아이구,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라며 완전 이야기 속에 빠져든 내가 보인다. 헛 참. 욕하면서 드라마 보다가 어느새 팬이 되어 매 방영시간마다 TV앞에서 진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아이레스>(예담.2009)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나를 휘어잡았다. 뒷 얘기 궁금하지? 라고 속삭이며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막았다. 윽, 당했다!

 

재밌는 드라마들이 으레 그렇듯, 각기 사연있는 사람들이 OJ여사와 아들 아리엘의 도움(?)으로 자신의 숨겨진 좋은 점을 찾고, 피하기만 하던 상황을 다시 마주치며 해피 엔딩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면 이게 묘~하게도 단순한 픽션은 아닐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그렇지!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밝히길, 실제로 그녀가 부에노아이레스에 갔을 때 묵었던 민수네란 민박집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풀어낸 스토리라고 한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는 재밌다. 9일간의 부에노아이레스에서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왔다갔다하면서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는 기대감을 준다. 더해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지은이가 실제 부에노아이레스를 여행하며 찍었을 그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마지막으로 공감할 수 있다. 사랑, 일, 사람에 배신당해 세계의 끝을 찾아온 사람들은 허물없이 열려있는 세상에서 자신들이 잊고 있던 마음들을 찾는다. 후회하지만 또 도전하고, 고생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힘을 키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잘 살아갈 수 있을거란 희망이 생긴다.

 

책을 읽으며 배경이 된, 민수네 민박집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에노아이레스의 거침없는 자연 속에도 푹 빠지고 싶었다. OJ여사의 걸쭉한 입담에 놀아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안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장소, 상황, 사람이 아니란 걸. 부에노아이레스는 어디도 될 수 있고, OJ여사는 우리가 만나는 누구도 될 수 있다. 마음, 옹색하게 닫힌 내 마음을 조금 열면 나에게도 해피엔딩은 온다. 나는 무얼 찾고 무얼 버려야 할까? 그 물음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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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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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유혹적이다. <내 남자> 라니. 어떤 사랑이 우리를 가슴뛰게, 저미게, 폭발하게 할까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연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 사랑 이야기인가 싶더니, 특별한 관계의 두 사람 이야기다. 조금 더 넘겨보니 그 관계를 묶고 있는 심상찮은 일화가 등장한다. 특별을 넘어 누군가에겐 혐오스럽게 보일 관계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사랑을 더럽다 할 수 없었다. 치명적이게 아름답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눈을 떠나 그들 스스로를 탐하는 모습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불쾌한 감정을 안겨주지 않을까 싶다. 서로에게 헤어나올 수 없는 두 사람이 다름아닌 아빠와 딸이기에. 공식적인 관계는 열몇살 차이의 양아버지와 양딸이다. 그러나 비슷하게 찢어진 눈매, 가끔씩 드러나는 비슷한 몸짓,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웃음. 그들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런 두 사람, 하나와 준고가 주인공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 여자와 한 남자,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두 사람이 오랜시간 지켜온 사랑 이야기다. 사랑이라고 말하기 위해 험난하게 지켜온,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한 세상은 사랑이라 말하지 않는.

 

이 책의 표현은 절제된 듯 폭발적이다. 사쿠라바 가즈키는 책 곳곳에서 읽는 이를 전율케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준고의 애인어었던 고마치가 보는 하나의 입술을 묘사한 부분.

'그런데 입술만 빨갛게, 저세상에서 차갑게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벌린 입에서 분홍색으로 빛나는 혀가 쏙 나온다. 아이의 혀가 저렇게 끈끈하고 촉촉한 것일까.'

아이의 입술에 대한 한 두줄의 문장만으로 작가는 어린 중학생 소녀는 성숙하고 매혹적인 '여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으로써 애와 어른의 사랑이 아닌, 정신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사랑을 그려내는 것이다.

 

책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화자가 바뀌면서 시간은 '지금'에서 '과거'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나하나 벗겨지는 베일 속에 의문스럽던 두 사람의 지난 행적이 보여진다. 왜 두 사람이 저렇게 미치도록 서로에게 빠져들었는지. 그 궁금증 때문이라도 독자들은 책의 마지막 단어가 나올때까지 책을 덮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책을 읽고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은 무한가지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건. 그들이 행한 사건에 대해서건. 대부분의 도덕적 잣대에 의해서 이 책은 폭삭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남자>는 연애소설이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명적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독한 사랑이야기다. 그러니 부디, 눈살을 찌푸리건 고개를 끄덕이건, 한 번 귀나 기울여보길. 세상은 넓고 이런 사랑도 있겠거니 묻어두길. 하나가 준고에게 했던 한 마디에 여운이 남는다. "우리가 사랑을 나눴다는 거." 조금 오래 기억의 가장자리에 남을 것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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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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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여고나 여대 앞에서 출몰하는, 여학생이 지나가면 입고 있던 바바리코트를 짠하고 펼치며 자신의 은밀한 곳을 보여주는 남정네들, 일명 바바리맨 말이다. 그런데 이 바바리맨이 우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사이버상에 나타났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바바리맨은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타인에게 보여주며 그 반응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싸이월드, 블로그에 자신의 내면까지 드러내며 타인과의 공감을 원하는 현대인들은,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판 바바리맨은 아닐까? (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상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을 공개하고 타인의 생활 뿐 아니라 마음까지 훔쳐보고, 보여주는 일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재밋거리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별 것 아닌 '내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흥! 그까짓 별거아닌 일상 중얼거리는 게 어쨋다고!' 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바로 '내 이야기'들이 세상에 충만할 때 비로소 세상은 재밌어지고,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솔직한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졸깃하니 재밌다. 재미를 챙기다보니 그 속에 숨겨진 문화심리학이 절로 따라오는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샘앤파커스.2009).

 

저자인 김정운은 주구장창 '재미'를 강조한다. 재미있는 삶이 건강한 삶이고, 재미를 추구해야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러니 잘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 다들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없는 세상에서 좀 배웠다 싶은 사람이 한다는 말이 놀으라고? 미치고 환장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 얘기 들다보니, 틀린 말 하나 없다.

 

그가 말하는 재미있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법은 사실 별거없다. 곱씹어보면 사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행복하고 싶으면 구체적으로 자기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리추얼화(의식화)한다. 인생사 어쩌피 하던 안하던 후회하는 법,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덜 후회하고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해 일단 저지르고 보라고 충고한다. -하지 말걸의 후회가 -했어야 하는데 후회보다 짧다나? 한편 우울해지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무조건 움직이는 게 약이라고 말한다. 집 밖에 나가 건물 상호만 봐도 집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니 만성적으로 우울과 친구 먹은 내가 필히 기억해야 할 문구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미'있는 삶을 위한 첫 번째 처방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재미의 비밀은 모두 자신 안에 숨어 있다. 그걸 찾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된다. 나의 존재는 타인의 인정, 사회적 지위 없이도 꿋꿋하게 나를 지탱해주고, 근면성실은 절로 따라온다. 나를 내가 컨트롤 한다고 느낄 때 삶은 그저 살아가는 데서 '재미'있게 사는 일로 변신한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여기까지 읽고 뭐가 그렇게 복잡해? 라며 머리 긁적이는 분이 있다면, 좋다. 저자가 말하는 초특급 시크릿을 알려주겠다. 바로... 감탄하기. 사소한 일이라도 좋다. 하루에 몇 번이고 감탄하라.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낌없이. 그리고 감탄받아라. 엄청난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당신이란 존재에 대해. 별 것 아닌 일들에 대해. 처음엔 쑥쓰러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은 어느새 얼씨구, 지화자같은 멋진 감탄사들을 잃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감탄도 습관이다. 여기에 익숙해질 무렵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너그럽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놀라게 될지도.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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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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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걸! 이 아름다움을!"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홀함을 맛본 후 오스카가 남긴 말이고, 책을 덮으며 내가 해야 했던 말이다. 사실 이 대단한 책에 대한 감상은 이 한 줄이면 끝이다. 더 부연 설명을 해 무엇 하랴. 당신이 지금 할 일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문학동네.2009)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나 고작 책에서 베껴온 문장 하나로 감상을 대신하려니 400여페이지를 열심히 채웠을 작가에게 미안해지는바, 얘기를 좀 더 해봐야겠다.

 

아. 잊을 뻔 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먼저 이 책을 끝낼 용기가 없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마라. 괜히 중도하차하고는 이후에 찾아오는 모든 일을 '푸쿠'(주1)에 뒤집어 씌우면 곤란하니까. 그렇다고 중도하차 한 후에 '사파'(주2)를 외치고 다니지 마라.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사이비 신자로 오인할 지 모르니. 자, 주의사항을 숙지했다면 본격적으로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들어가볼까?

 (주1. 어디나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 그런 존재. 요컨대 저주 따위.

  주2. 푸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역주문)

 

이 책은 산토도밍고의 도미니카인 3대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은 오스카, 그의 누나 롤라, 그들의 어머니 벨리시아. 그리고 화자인 유니오르.  3대를 다뤘다면 가족소설?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지독한 저주에 걸린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치열한 데 레온 가족의 이야기다. 요컨대 푸쿠에 대한. 때론 질려 한숨이 나온다. 절망스런 모습에 기어이 쉰웃음이 흘러나온다. 웃긴 건, 근데도 웃기다는거다. 어떻게 한숨을 쉬며, 쯧 혀를 차며, 웃을 수 있냐고? 그럴 수 있다. 적어도 이 책에선.  

 

오스카는 빌어먹게 뚱뚱한 녀석이다. 도미니카 남자로서 치명적이게도 여자 홀릴 줄도 모른다. (하긴 그 거구에 달라붙는 여자가 있다면 신기할 뿐이다. 게다가 상상 이상의 애늙은이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찌질한 녀석, 불행하게도 그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매번 여자를 짝사랑하고 볼품없이 차인다. 그럼에도 사랑하고, 결국 사랑 때문에 짧게 살다 간 녀석. 그런데 죽음 직전. 놀랍게도!!! 푸쿠는 예외 없이 그를 덮쳤으나 죽어가는 길 오스카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찌질이가 아니었다고만 밝혀두자.

 

표면상 데 레온 가족의 역사는 푸쿠의 역사였다. 그러나 진정 그들의 삶이 저주에 휩싸였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 감히 아니란 대답을 하고 싶다. (이 시점에서 데 레온 가족 푸쿠의 근원인 트루히요의 마수가 나에게까지 뻗치는 듯한 위화감이 드는건 왜일까.) 비록 죽을뻔한 위기까지 겪으며 불행의 연속에서 살아가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간다. 그들이 사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위기를 건너 온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짧고 놀라운 오스카 와오의 삶으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유니오르. 비록 오랜 시간에 걸친 롤라와의 사랑은 무참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으니 이쪽도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해둘까). 새사람이 된 그는 데 레온 가족의 푸쿠를 들려준다. 그리고 롤라의 딸인 이시스, 언젠가 데 레온 가족의 푸쿠를 끝장내줄지 모를 소녀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게 결말인지 새로운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푸쿠를 이겨낸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파가 아닐까.' 푸쿠는 어디에나 있는 존재, 우리에게도 소리소문 없이 들러붙어있을지 모른다. 그 때 가만히 이 책을 펼쳐보자. 사파! 라고 한 마디 던지는 것보다 강력하게 당신을 둘러싼 푸쿠를 물러내 줄지 모르니. 지금 당신에게 사파의 주문을 담은 초대장을 보낸다. 자, 놓치지 말고 잘 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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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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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험한 독서

 

위험한 독서라니, 실로 매혹적인 말이다. 80년대 이념이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독서였다. 그러나 김경욱은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게 독서란 책을 넘어 사람을 읽는 행위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16p) 고 말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 '나'의 독백을 통해 독서란 행위를 들여다본다.

 

김경욱의 소설집 <위험한 독서>의 표제작은 독서가들에게 매혹적으로 들릴만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짧은 이야기 속 풍성한 책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나'는 독서치료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당한 책을 권해준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로 마음을 치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여자를 만난다. 소설은 그녀의 변신을 쫓는 '나'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나'는 그녀가 읽어온 책들을 듣고, 권해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를 '읽는다'. 그러나 오만이 아닐까. 읽은 책 몇권 만으로 한 사람을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보통 취향이란 게 있는 법이고 그 안에서 대략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를 분석해나가는 '나'의 모습은 낯설다.

 

이야기의 끝, 그녀는 변한다. 소심하고 의미없는 삶을 지속하던 그녀는 밝고 바빠진다. 그러나 '나'는 수동적으로 그녀만을 쫓는다. 매일 올라오는 인터넷 속의 그녀를 계속해서 읽기만을 고집한다. 능동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단 한마디만을 두려워한다. "최근 2주간 새 게시물이 없습니다."

 

김경욱의 소설에서 독서란 중독이다. 때론 긍정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을 한없이 나락에 빠뜨리는 안정제 마약과도 같이. 그렇기에 독서는 위험하다. 

 

나에게도 독서는 중독이다. 일상이고, 때론 삶에서의 도피이며, 습관과도 같은 무의식적 반복이다. 생각이 빠진 즐김이 주가 되는 행위, 그렇기에 나에게도 독서는 위험하다. 그러나 나의 독서에 잘못이란 넝울을 뒤집어씌우지는 않는다. 독서란 자유로운 것이기에.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21p). 배움이 아니라 쾌락이 주가 되는 독서라도 좋다. 그래서 난 이 문장에 밑줄을 좌악 그었는지도.

 

배우기 위한 책읽기도, 시간을 때우기 위한 책읽기도, 쾌락을 위한 책읽기도, 아무것도 아닌 책읽기도 좋다. 독서에 정답 따위는 없다. 자유로운 위험함에 자신을 송두리채 내버리기.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2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김경욱과 만나는 4번째 소설집이다. 그 사이 그의 글은 달라졌다. 맨 처음 그를 만났던 <베티를 만나러 가다>에서는 첫 이야기다운 괴상한 상상력이 주를 이루었다. 두 권쯤의 소설집을 넘어 만난 <위험한 독서>는 상상력이 현실과 조화로워졌다. 그의 발칙한 공상은 그대로이지만 어딘가 현실에서 일어남직도 하다. 그의 글을 읽는 손과 머리에 힘이 덜 들어간다.

 

총 8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딘가 불쌍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집이 어려워 남이 하지 않는 일까지 떠맡게 된 맥도널드 점원(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도둑글쓰기로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아 일을 때려치웠지만 결국 좌절하는 사내(천년여왕), 천재로 태어났으나 퀴즈대회에서조차 우습게 져버린 남자(게임이 규칙).

 

그런가하면 현대사회의 고독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부녀자 살인 사건이라는 삭막한 기사로 시작되는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에서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 혼자 빌딩 숲 위 관람차를 타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인이 나온다. 제목조차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인 이야기에서는 무엇이든 돈으로 빌릴 수 있는 세태를 꼬집으면서, 그 향락에 빠져 사라져버린 한 사내의 빈자리와 마주치게 된다. 일상의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겨우 달팽이에게 전가시켜버리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를 통해 나약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 속의 우리 모습을 전보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김경욱. 처음의 발칙함이 날아간 자리에 묵직한 현실이 자리잡았다. 조금씩 모습이 바뀌었을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주인공들에 어느새 내가 겹쳐진다. 책 속에 나를 일치시키기. <위험한 독서>에서 '나'의 목소리를 빌어 그가 했던 주문이 어느새 내 몸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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