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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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험한 독서

 

위험한 독서라니, 실로 매혹적인 말이다. 80년대 이념이 다른 책을 읽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독서였다. 그러나 김경욱은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게 독서란 책을 넘어 사람을 읽는 행위다.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16p) 고 말하는 이야기 속 주인공 '나'의 독백을 통해 독서란 행위를 들여다본다.

 

김경욱의 소설집 <위험한 독서>의 표제작은 독서가들에게 매혹적으로 들릴만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짧은 이야기 속 풍성한 책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주인공 '나'는 독서치료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적당한 책을 권해준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로 마음을 치료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여자를 만난다. 소설은 그녀의 변신을 쫓는 '나'의 독백이 주를 이룬다.

 

'나'는 그녀가 읽어온 책들을 듣고, 권해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를 '읽는다'. 그러나 오만이 아닐까. 읽은 책 몇권 만으로 한 사람을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보통 취향이란 게 있는 법이고 그 안에서 대략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를 분석해나가는 '나'의 모습은 낯설다.

 

이야기의 끝, 그녀는 변한다. 소심하고 의미없는 삶을 지속하던 그녀는 밝고 바빠진다. 그러나 '나'는 수동적으로 그녀만을 쫓는다. 매일 올라오는 인터넷 속의 그녀를 계속해서 읽기만을 고집한다. 능동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단 한마디만을 두려워한다. "최근 2주간 새 게시물이 없습니다."

 

김경욱의 소설에서 독서란 중독이다. 때론 긍정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을 한없이 나락에 빠뜨리는 안정제 마약과도 같이. 그렇기에 독서는 위험하다. 

 

나에게도 독서는 중독이다. 일상이고, 때론 삶에서의 도피이며, 습관과도 같은 무의식적 반복이다. 생각이 빠진 즐김이 주가 되는 행위, 그렇기에 나에게도 독서는 위험하다. 그러나 나의 독서에 잘못이란 넝울을 뒤집어씌우지는 않는다. 독서란 자유로운 것이기에. '독자로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계몽이 아니라 공감이니'(21p). 배움이 아니라 쾌락이 주가 되는 독서라도 좋다. 그래서 난 이 문장에 밑줄을 좌악 그었는지도.

 

배우기 위한 책읽기도, 시간을 때우기 위한 책읽기도, 쾌락을 위한 책읽기도, 아무것도 아닌 책읽기도 좋다. 독서에 정답 따위는 없다. 자유로운 위험함에 자신을 송두리채 내버리기.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2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김경욱과 만나는 4번째 소설집이다. 그 사이 그의 글은 달라졌다. 맨 처음 그를 만났던 <베티를 만나러 가다>에서는 첫 이야기다운 괴상한 상상력이 주를 이루었다. 두 권쯤의 소설집을 넘어 만난 <위험한 독서>는 상상력이 현실과 조화로워졌다. 그의 발칙한 공상은 그대로이지만 어딘가 현실에서 일어남직도 하다. 그의 글을 읽는 손과 머리에 힘이 덜 들어간다.

 

총 8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딘가 불쌍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집이 어려워 남이 하지 않는 일까지 떠맡게 된 맥도널드 점원(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도둑글쓰기로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아 일을 때려치웠지만 결국 좌절하는 사내(천년여왕), 천재로 태어났으나 퀴즈대회에서조차 우습게 져버린 남자(게임이 규칙).

 

그런가하면 현대사회의 고독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부녀자 살인 사건이라는 삭막한 기사로 시작되는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에서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 혼자 빌딩 숲 위 관람차를 타며 과거를 회상하는 여인이 나온다. 제목조차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인 이야기에서는 무엇이든 돈으로 빌릴 수 있는 세태를 꼬집으면서, 그 향락에 빠져 사라져버린 한 사내의 빈자리와 마주치게 된다. 일상의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겨우 달팽이에게 전가시켜버리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를 통해 나약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 속의 우리 모습을 전보다 담담하게 그려내는 김경욱. 처음의 발칙함이 날아간 자리에 묵직한 현실이 자리잡았다. 조금씩 모습이 바뀌었을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주인공들에 어느새 내가 겹쳐진다. 책 속에 나를 일치시키기. <위험한 독서>에서 '나'의 목소리를 빌어 그가 했던 주문이 어느새 내 몸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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