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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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걸! 이 아름다움을!"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황홀함을 맛본 후 오스카가 남긴 말이고, 책을 덮으며 내가 해야 했던 말이다. 사실 이 대단한 책에 대한 감상은 이 한 줄이면 끝이다. 더 부연 설명을 해 무엇 하랴. 당신이 지금 할 일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문학동네.2009)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나 고작 책에서 베껴온 문장 하나로 감상을 대신하려니 400여페이지를 열심히 채웠을 작가에게 미안해지는바, 얘기를 좀 더 해봐야겠다.

 

아. 잊을 뻔 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먼저 이 책을 끝낼 용기가 없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마라. 괜히 중도하차하고는 이후에 찾아오는 모든 일을 '푸쿠'(주1)에 뒤집어 씌우면 곤란하니까. 그렇다고 중도하차 한 후에 '사파'(주2)를 외치고 다니지 마라.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사이비 신자로 오인할 지 모르니. 자, 주의사항을 숙지했다면 본격적으로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들어가볼까?

 (주1. 어디나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 그런 존재. 요컨대 저주 따위.

  주2. 푸쿠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역주문)

 

이 책은 산토도밍고의 도미니카인 3대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은 오스카, 그의 누나 롤라, 그들의 어머니 벨리시아. 그리고 화자인 유니오르.  3대를 다뤘다면 가족소설?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지독한 저주에 걸린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치열한 데 레온 가족의 이야기다. 요컨대 푸쿠에 대한. 때론 질려 한숨이 나온다. 절망스런 모습에 기어이 쉰웃음이 흘러나온다. 웃긴 건, 근데도 웃기다는거다. 어떻게 한숨을 쉬며, 쯧 혀를 차며, 웃을 수 있냐고? 그럴 수 있다. 적어도 이 책에선.  

 

오스카는 빌어먹게 뚱뚱한 녀석이다. 도미니카 남자로서 치명적이게도 여자 홀릴 줄도 모른다. (하긴 그 거구에 달라붙는 여자가 있다면 신기할 뿐이다. 게다가 상상 이상의 애늙은이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찌질한 녀석, 불행하게도 그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매번 여자를 짝사랑하고 볼품없이 차인다. 그럼에도 사랑하고, 결국 사랑 때문에 짧게 살다 간 녀석. 그런데 죽음 직전. 놀랍게도!!! 푸쿠는 예외 없이 그를 덮쳤으나 죽어가는 길 오스카는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찌질이가 아니었다고만 밝혀두자.

 

표면상 데 레온 가족의 역사는 푸쿠의 역사였다. 그러나 진정 그들의 삶이 저주에 휩싸였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니, 감히 아니란 대답을 하고 싶다. (이 시점에서 데 레온 가족 푸쿠의 근원인 트루히요의 마수가 나에게까지 뻗치는 듯한 위화감이 드는건 왜일까.) 비록 죽을뻔한 위기까지 겪으며 불행의 연속에서 살아가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간다. 그들이 사는 모습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위기를 건너 온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짧고 놀라운 오스카 와오의 삶으로 인해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한 유니오르. 비록 오랜 시간에 걸친 롤라와의 사랑은 무참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으니 이쪽도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해둘까). 새사람이 된 그는 데 레온 가족의 푸쿠를 들려준다. 그리고 롤라의 딸인 이시스, 언젠가 데 레온 가족의 푸쿠를 끝장내줄지 모를 소녀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게 결말인지 새로운 시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푸쿠를 이겨낸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파가 아닐까.' 푸쿠는 어디에나 있는 존재, 우리에게도 소리소문 없이 들러붙어있을지 모른다. 그 때 가만히 이 책을 펼쳐보자. 사파! 라고 한 마디 던지는 것보다 강력하게 당신을 둘러싼 푸쿠를 물러내 줄지 모르니. 지금 당신에게 사파의 주문을 담은 초대장을 보낸다. 자, 놓치지 말고 잘 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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