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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 - 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박기현 지음 / 시루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징비
박기현 지음
유성룡을 통해 우리의 암울했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그것이 슬픔이던 아픔이던 우리에게는 모두 소중한 역사다. 이순신의 수난과 그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몇몇 사람들 그리고 선조의 불안함과 이를 이용하는 대신들 이것들이 우리의 아직까지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치욕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내야 했지만 우리는 그 후로 다시 일제 36년의 치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임진왜란을 겪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7년간의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철저한 반성과 고뇌로 쓴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되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조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꾸짖는 유성룡의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항복이 그렇게 비굴하고 눈치만 살살 보는 간신과 같은 존재였는지 몰랐다. 이 책의 기록으로만 본다면 이항복은 눈치 빠른 신하였다. 원래 체통과 권위를 강조했던 선조가 임진왜란을 통해 아주 유약한 왕이요 자기의 안위만 챙기는 비열한 왕으로 변했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물론 류성룡의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성룡의 전장 중의 개혁조치를 살펴보자. 대표적인 것이 ‘대동법’의 원조인 ‘작미법’ 그리고 실학사상을 펼쳐 보인 최초의 리더였다고 한다. 소금의 전매를 풀어 생산된 소금의 절반은 국가에 내고 나머지는 생산자가 재량껏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실시해 해안가의 굶주림을 해결했다고 한다.
이런 그도 북인들의 상소로 관직을 잃고 고향에 내려가 말년을 보내고 그 시절 ‘징비록’을 저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충신이 류성룡과 이항복 그리고 이원익 등에 불과한 것 같다. 그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짜고자 했던 계획을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에게 있어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맨 앞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끝없는 저항과 변심으로 인해 용두사미가 되곤 하였다. 이 책의 유성룡이 전부 다는 아닐 것이다.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조선의 최고의 관리를 ‘정도전’이나 ‘황희’를 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최고의 개혁적인 인물로 조광조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아니면 현대에는 과연 누가 그런 인물이었을까? 대통령의 힘이 너무나 커서 대통령이 혼자 알아서 다 하는 지도 모르겠다. 관리는 보이지 않고 권력만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관리, 밑으로부터의 민심을 읽고 그 목소리를 위로 올릴 수 있는 청렴한 관리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