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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ㅣ 조선 핏빛 4대 사화 1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10년 12월
평점 :
무오사화
이 책은 조선시대 4대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첫 번째 사화인 무오사화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사화는 단순한 권력싸움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측면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종 때에 이르러 조선의 왕조의 기틀이 거의 완성됐는데 세조의 왕위찬탈로 말미암아 조선은 큰 위기를 맛보게 된다. 이때부터 양반사회에서 파벌이 형성되고 극심한 분열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연산군 때 드디어 이것이 폭발하게 되고 급기야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여러 파벌 중 훈구파, 절의파, 청담파, 사림파 등 4개의 큰 파벌이 형성되고 그 중 정계에 진출해 왕성한 활동을 하던 훈구파와 사림파의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된다.
이중 무오사화는 사림파의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있을 때 사초에 실은 것이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발각되어 훈구파들이 이것을 빌미로 연산군을 통해 일으킨 사건이다. 이로 인해 사림파는 거의 숙청된다.
간관제도 곧 언로의 부패까지 이르게 된 조선은 당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혼란 속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조선 후기에는 왕위문제까지 당쟁거리가 되어 쇠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지만 근본적인 것은 향촌 사회의 질서 확립 문제로 저자는 보고 있다. 세종이후 사전(私田)의 증가로 토지의 사유화가 심해져 서민들의 경제생활 뿐 만 아니라 신진사류들에게 큰 압박이 가해졌다. 이러한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사림파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던 훈구파 사이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무오사화와 연루된 인물들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역사 속에 스며들어 있는 시대 상황과 배경들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하다. 이 사화를 통해 2번 죽게 된 김종직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김일손 그리고 유자광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유자광이 문무에 뛰어난 자였지만 출신에 대한 문제로 남이 장군보다 낮은 관직을 갖게 되고 김종직에 의해 철저히 무시 받은 것이 결국은 이러한 끔직한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으로 남는다.
사람들이 사는 것에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정치판에 정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귀를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인정치 않고 ‘나는 정의고 상대는 악이다.’ 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부디 오늘의 정치가 바르게 서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