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 풀빛 그림 아이 38
막스 후빌러 지음, 위르크 오브리스트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얼룩말은 왜 얼룩말일까?


딸아이에게 이 책을 불쑥 내밀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나를 머쓱하게 했다. “이것 읽고 독후감 써야 되지!” “야, 그럼, 책을 읽었으면 느낀 소감을 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니?” 그러나 이 말을 하고 나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언제부턴가 꼭 독후감을 쓰라고 강요(?)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서다. 책을 생각하면서 읽도록 하는 뜻이지만 아이에게 적지 않게 부담이 되는 것 같다.


밥상머리에 앉으면 세 아이가 끝도 없이 말을 한다. 특히 막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질문을 해 밥 먹는 시간이 늘어진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짜증이 나 말머리를 돌리거나 윽박지르기 일쑤다. 그런데 문득 어릴 적 외할머니 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 다니며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물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나에게 한 번도 짜증난 표정을 보이시거나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흥미로운 그 시절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작은 얼룩말을 보면서 ‘성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성장’이 멈추고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러 염려와 근심 걱정이 쌓인다. 현실 문제들이 나를 둘러싼다. 그리고 생각들을 마비시킨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이 있다. 좀 더 생각하고 하나라도 더 질문해야 마음의 노쇠화를 막을 성 싶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이런 대답이 나의 아이들에 대한 모습이 아닐까 돌아본다. 용기를 내어 던진 질문 앞에 이런 대답이 아이의 마음 문을 닫게 하지는 않았는지. 현실의 냉담한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 가는 얼룩말의 꿋꿋함이 대견스럽다. 단단한 마음으로 자신을 변화시켜가고 주위의 반응을 또한 받아들여가는 성숙한 그를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 또한 얼룩말의 이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믿고 기다리는 법도 배워야 할 것 같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견고한 관계성을 맺게 할 것이다. 나와 같지 않은 모습이라도 마음으로 용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심지어 그가 삐뚤어진 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다음에서 놓지 않고 기다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한 사람을 올곧게 자라게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세 아이가 열심히 책을 읽었다. 막내 녀석은 아침 자습시간에 다시 읽어 보겠다고 가방 속에 넣고 간다. 얼마만큼 책의 내용을 소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즐겨 읽는 모습에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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