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선 그리스도인
엘렌 오트 마샬 지음, 대장간 편집실 옮김 / 대장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광장에 선 그리스도인

엘렌 오트 마샬


‘광장’이란 현재 드러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열띤 토론장으로 사용되는 모든 공간을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장소뿐만 아니라 토론이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의미한다. 곧 모든 삶의 영역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신앙인이 아가페적인 사랑, 윤리적 모호성, 신학적인 겸손이라는 세 요소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도록 권한다.


저자는 여기서 아가페적인 사랑이란 인터빙, 우분투, 인격주의, 아힘사 등과 같은 보편적인 사랑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이런 언급도 한다. 상대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라 고 한다. 그리고 윤리적 모호성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곧 내가 내린 결론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항상 의심하고 보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성경, 전통, 이성, 경험을 동등하게 대하며 이들의 조화를 꾀한다. 신학적 겸손은 내가 해석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 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지식의 한계와 관점의 부분성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바꾸도록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은 ‘내가 믿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은’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은 ‘나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신 것의 의미가’로 . 그는 내가 분별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자체에는 항상 격차가 있음으로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적 권위주의’의 출현을 막기 위해서라고 언급한다.


광장은 다양한 권위의 원천들이 존재하므로 나의 신념이 그들에게 규범적으로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기대하거나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을 충분히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은 하되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합리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하는 데 우리의 신앙이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갖는 사회적, 정치적 함축성을 결정짓는 과정에 대해서 투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앙에 대한 비판적 탐구의 필요성을 지적한 자유주의의 주장을 받아들이되 신학적 겸손함을 가지고 진지하게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신앙이 현실정치에 뛰어 들어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든 알렉산더 칼더처럼 기존의 굳어진 방식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는 도전정신을 불어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글 전반에 걸쳐 좌파, 우파, 그리고 보수, 진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신앙의 본질보다는 현실참여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보듯이 신앙이 현실에 뛰어 드는 것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우파든 좌파든 아니면 보수든 진보든 간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정치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생리다. 그 결정이 옳고 그른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그들은 이 땅에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나와 우리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신앙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이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거나 이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앙인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생각을 포기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윤리적 모호성이라는 표현은 수긍하기가 힘들다. 신학적인 겸손은 상대를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우리와 환경이 다르지만 우리도 현실참여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갖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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