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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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빈리 일기


주인집의 아이들

5학년 이해남



우리가 과자 같은 것이 있으면

같이 노는 척 하면서

과자를 빼앗아 먹는다.

그리고

지네들이 과자가 있으면

우리랑 같이 안 논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 것들이 더하다. 있는 것들이 세금 좀 더 낸다고 팔꿈치에 무좀 생기는 것도 아니고 ....


책 제목을 보면서 또한 책 소개를 통해서도 귀농 작가의 전원일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느끼는 것은 ‘귀양살이’ 하는 혹은 ‘구금당한’ 위험한 인물(?)처럼 보였다.(안면도 없는 저자에게는 이런 표현을 써서 죄송하지만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사실 시골 생활이 생각이 많고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에게는 감옥이다. 도시의 삶이 팍팍해서 뛰쳐나가고 싶어도(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감정이지만) 과연 며칠이나 버틸까 싶어서 제풀에 나가떨어진다. 사람이 그립고 말이 그리워서 원수 같은 사람들이 생각나서 이 도시를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 젊음을 보내는 분들은 대단하다. 최소한 자신을 다스릴 힘이 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가 느끼는 ‘외로움’, ‘분노’를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언덕배기 밭에서 오전 2시간 동안 풀 뽑고 참외 밭에 마른 풀 깔았다. 언덕 위 도라지꽃에 아름다움은 오늘도 위력이 여전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절경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직도 내면에 끓어오르는 것이 많다.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자본주의를 생각하고 자유 시장주의를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아직도 생각이 살아 꿈틀 거린다. 어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 움직일 수 있을까? 몸이 몇 번이고 폭발해 산산 조각 날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그 온도와 압력이 느껴진다.

‘똑 같은 사람이 폭력을 일삼는 친위대원이 될 수도 있고 성인군자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환경,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 거의 공식화된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강주헌 옮김)’

‘정신차리고 있어도 노예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운 세상에(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노예 상태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이렇게 말하긴 싫지만) 그게 차라리 대중에게 그나마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



그의 고백처럼 그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끝없이 동요하는 내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내면을 다스리고 아울러서 나오는 시들은 과연 어떨까 기대가 된다. 양미리가 뭔지 나는 모르지만 양미리, 도루묵을 들고 진부령을 넘나드는 그의 삶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가 소원하는 것처럼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방 닦고··· 등을 하지 않고 다시 말해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 안에 서 너 달 쳐 박혀 탱자탱자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불을 가슴에 담고 살기에 언젠가는 보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다. 그의 삶이 고달프고 심지어 애달프게 보이지만 그가 있어 내겐 행복이다. 사람 냄새가 그립다. 내가 언제나 사람이 되려나, 살아 있는 사람이 언제나 될련지 아련하다.


생글생글 때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생명력이 넘치는 시들을 평생 처음 배불리 먹었다. 이리저리 뒹굴며 며칠에 걸쳐 재미있게 읽어 포만감이 밀려온다. 때로는 허탈함이 혹은 시원함이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떠내려간다. 가볍게 읽고자 했던 것이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책임감 혹은 중압감을 남긴다. 아~, 내가 감당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무릎을 꿇는다. 개가 되기 싫고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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