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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구마 겐고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1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을 공부했지만 건축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다. 몇 년을 공부하고 보고 또 보지만 잘 모르겠다. 저자가 내세우는 작은 것, 낮고 느린 것을 보고자 했다. 건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다.
20세기 미국의 자본주의는 세계시장에서 공룡이었다. 건축도 이 흐름을 반영해 미국을 선두로 초고층 빌딩이 등장했고 마치 이것이 유행처럼 번졌고 여기저기에 이런 건축물이 세워졌다. 철골구조, 철골과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이루어진 이런 건축물은 다른 작은 구조물들을 압도했다. 마치 너희들은 구조물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자를 상징하는 ‘경계인’은 그의 은사인 하라 교수가 그를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경계라는 용어는 막스 베버가 사용한 단어다. 도시와 촌, 도시와 자연의 경계는 어느 한 쪽에 서지 않기에 두 지역으로부터 배제될 수도 있지만 둘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양쪽을 모를 수도 있지만 양쪽을 다 알기에 어느 쪽에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후자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경계 긋는 것을 싫어하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찾는 건축가이다.
또한 그를 대표하는 것이 20세기 대형건축물에 반하여 작은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 역시 하라 교수가 그에 대해 말한 것이다. 작은 것으로 출발하여, 작은 것들로 이루어지는 건축물들. 모두가 외형적인 형태에 관심을 가졌다면 저자는 내면 자체의 섬세한 부분들에 관심을 가졌고 이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들과 연관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나무와 건축 그리고 다시 자연과 건축을 연결하고자 했고 더 나아가 그 사회 문화와 풍습과 관련된 것들을 찾고자 했다.
그의 건축형태의 영향이 가족 환경에서 유래한 것처럼 보인다. 완고한 아버지의 영향과 외할아버지의 자연과 접한 환경에서 자란 것이 모더니즘에 대한 반감과 경계가 없는 건축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의 건축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학창시절 대부분의 도면은 일본의 것들이었다. 요즘은 다르겠지만. 그들의 섬세함과 집요함이 잘 드러났고 아직까지도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짧지만 그의 건축 양식을 접하게 되어 일본 건축 양식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건축은 그대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움직인다. 아마도 그의 양식은 이미 우리에게도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