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촌 기행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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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원 고료 <2011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당선작’이라는 문구에 홀린 듯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에서는 어떤 판타지를 다루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어서 전개될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다.

 


<도화촌기행>은 사법고시에 계속해서 낙방하는 서른아홉 살 고시생, 범우가 겪는 판타지 이야기이다. 신림동 고시촌 장수생들이 계속 낙방하면서도 고시촌을 떠나지 못하는 반복적인 패턴과 생활이 묘사되어 있었는데,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그들의 답답함과 자괴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연인 역시 낙방만 하는 범우를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그런데 주인공인 범우의 언행에는 자꾸만 눈살을 찌푸리게 됐다. 현실을 어떻게든 개척해 보려고는 생각지 않고 너무 철없이만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는 범우가 술에 취해 어떤 고양이를 뒤쫓다 도화촌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판타지 장르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판타지 소설, 이를테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이야기들과는 분명히 많이 달랐다. 범우가 도착한 도화촌이라는 곳은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고, 편의점에서 어떤 물건이든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있는 평화롭고 조용한, 조금은 희한한 동네였다. 도화촌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은 수없이 많아 셀 수조차 없다고 하지만, 정작 계속해서 걸어 봐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범우는 역시 철없는 언행을 버리지 못했다. 그나마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환영과 호의 덕분에 조금씩 도화촌에 적응하는 듯 보였을 뿐이었다. 범우는 신선놀음에 빠져 며칠을 먹고 자는 것만 하면서 보내기도 하고, 또 열심히 땀 흘려 농사일을 해보기도 했다. 처음에야 도화촌에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사람들 모두가 살가워 살기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범우는 도화촌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헤매고 겉돌았다. 현실로 돌아가 봐야 별 볼일도 없는데 그냥 이곳 도화촌에 눌러 편안하게 살 것인가, 그래도 원래 있던 곳이니 현실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를 두고 범우는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았다. 결정적인 ‘로또 사건’으로 범우는 현실로 돌아갈 결심을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 속에 흠뻑 빠지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웠다. 한국 판타지 문학의 재미에 빠져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것을 미처 제대로 잡지 못한 것 같다. 갑작스러운 로또 이야기나 마무리 부분은 약간 공감하지 힘들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설화와 현대문학이 만나 서로 묘하게 어울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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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조현경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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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가 각각 사랑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이 책 <샴페인>에 담겨있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녀들의 성공’이 아닌, ‘성공한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재벌가의 둘째딸로 태어난 서진은 그러나 장남 오빠의 그늘에 가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회사를 이어받아 경영하고 싶은 꿈은 차선책으로 바뀌었고 법원판사가 되었다. 그리고 서진과 가장 친한 친구 희경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희경은 서진으로부터 경제적 도움까지 받아가며 악착같이 공부하며 살았고 결국 미국에서 유명한 모자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희경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회사 돈을 횡령했고 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희경은 가족을 이끌고 서진을 따라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서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희경의 남편은 영화감독을 하겠답시고 기회만 엿보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도 아이들은 이코노미에 태우고, 자기 자신만 비즈니스에 타는 그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는 겉치장하고 품위유지를 하는 데에만 절어 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다. 분명히 잘못을 했음에도 오히려 자신은 위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서진에게도 있었다. 서진 부부는 서진의 집안 덕분에 재벌가 로열 패밀리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다. 남편이 자신과 결혼한 것이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둘은 대외적으로만 부부인 관계가 되었다. 서진은 배신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남편을 밀쳐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등장하는 여자, 혜리.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에서도 가장 작은 부분을 맡고 있는 코러스다. 우연히 교통사고가 났고 가해자가 자신과 같은 한국인임에 잠시 반가움을 느꼈지만, 명함 속에서 그가 재벌임을 알게 되고는 동아줄을 잡듯이 그를 잡았다,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녀는 하버드 출신이라고 학력을 속였고, 깨끗하지 않았던 과거도 숨겼고 오직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였다.


서진에게 남자가 생겼다. 텅 빈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 사랑보다는 친밀함이 필요했던 그녀에게 모델 크리스는 다정하고 섬세하게, 천천히 다가왔다. 크리스는 서진의 도움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그런 크리스를 서진은 놓아주려 했다. 이별을 감당하지 못해하는 크리스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고 진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높은 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많은 음모와 거짓말과 더러운 밑바닥이 그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 사건에 세 여자가 각기 다른 동기와 이유로 휘말렸다. 그리고 세 여자는 선택받아 도움을 받는 쪽과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 버림받는 쪽으로 나뉘었다.


우정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진짜 사랑도 볼 수 있었다. 욕심에 눈이 먼 여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볼 수 있었다. 세 여자를 둘러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역시 아주 인상적이었다. 각 상황들은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고 읽으면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슴을 졸이기도 했고, 등장인물과 함께 가슴 아파하기도 했고, 사랑을 느끼기도 했고, 허무하단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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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
로렌 올리버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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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었다.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자동차 사고가 났고 나는 죽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알람소리가 들린다. 문득 정신을 차렸는데 깨어난 곳은 집이고 침대 위다. 천천히 현실감을 찾아보니 오늘은 2월 12일 금요일. 이상하다. 분명 어제가 금요일이었는데 오늘도 금요일이란다. 이상하고 지독한 악몽을 꾸었나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오늘 다시 그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If Only>의 것과 소재가 비슷했다. 마지막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 이 책 <일곱 번째 내가 죽던 날>의 ‘나’인 샘에게는 2월 12일 금요일 사고 나던 날이 일곱 번 반복되었다. 과연 샘은 반복되는 마지막 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 궁금해졌다.


고등학생 샘에게는 항상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 린지, 앨리, 엘로디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붙어 다니고 함께 놀며 모든 것을 공유한다. 여느 사춘기 아이들처럼 패션과 이성에 관심도 많고 거침없고 겁도 없다. 오늘은 ‘큐피드 데이’라 서로 장미도 주고받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케빈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놀러가 신나게 놀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은 샘이 남자친구 롭과의 첫경험을 하기로 한 날이기도 해 넷은 모두 들떠있기도 했다. 첫 번째로 죽던 날 롭은 만취했고 평소 사이코로 통했던 줄리엣이 파티를 망쳐놨고 집으로 가던 중 사고가 났었다. 똑같은 하루를 경험하면서 샘은 처음에는 당황했고 공포를 느꼈고 혼란스러워했지만 곧 상황파악을 하고는 주어진 오늘을 거부하려던 것을 체념했다. 샘은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일은 점점 더 꼬이고 어긋나기만 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마지막 하루를 경험하던 샘은 드디어 삶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그동안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그것을 즐겼었는지를 깨닫고 뉘우쳤다. 그리고 마지막 하루를 맞이하면서 샘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생각하기 나름이 될 것 같다. 또 다른 2월 12일이 반복될 수도 있고 거기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결말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 점이 살짝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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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왕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김해생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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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슈나이더의 <오르가니스트>를 읽었을 때, <향수>와 참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향수>가 후각을 이용했다면, <오르가니스트>는 청각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때도 적지 않게 충격을 주었던 작가 로버트 슈나이더의 책을 또 한권 발견했다. <밤의 여왕>이었다. 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충격을 줄지 궁금했다.


<밤의 여왕>은 라인탈 골짜기의 작은 마을 상트다미안에 사는 안토니아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안토니아에게는 부모님과 언니 베로니카가 있었고, 동생들 막달레나, 아말리에가 있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은 없을 만큼 안토니아는 부모님과 자매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안토니아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안토니아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안토니아는 황홀함을 줄 만큼 멋진 목소리를 들었고 그 꿈을 계기로 변해버렸다. 자신은 어딘가로 떠날 것이라고,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만 했다. 안토니아는 특이하게도 목소리를 냄새와 색깔 또는 그 혼합으로 인식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원래는 레몬 같이 노랗고 상큼한 신맛이지만, 부활절 즈음에는 나뭇진 냄새를 풍겼다. 신부님의 목소리에서는 어머니의 젖 맛이 났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는 건초의 느낌을 주었고, 또 어떤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향 태우는 냄새를 맡았다.


1923년 10월 14일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안토니아는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떠날 날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줄 사람으로만 믿었던 나로디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누렇게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슨 종이 냄새나는 목소리를 갖고 있던 나로디는 알고 보니 인신매매업자였다. 미국으로 향하는 배 안 3등 선실에서 안토니아는 자신의 목소리의 힘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끊임없는 항해에 불안해진 3등 선실의 사람들을 위해 안토니아는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그들이 묘하게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드디어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안토니아는 새로 알게 된 친구와 함께 인신매매업자로부터 도망쳐 뉴욕 뒷골목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도둑질도 서슴지 않고 하는 안토니아와 발타사는 점점 그렇게 타락해갔고, 나중에는 몸을 파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야기의 첫 부분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더 이상 읽어나가기가 힘들고 벅찰 정도였다. 그러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쓰레기더미 속에서 꺼내어 끌어올려줄 사람을 만났다. 젊은 지휘자 아론을 만나면서 우리의 안토니아는 다시금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야기는 정말 느릿느릿하게 전개된다. 저자 로버트 슈나이더의 글을 따라가며 천천히 조금씩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밑바닥을 치고 올라온 안토니아가 무대에 섰을 때의 모습은 정말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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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짐
토니 얼리 지음, 정회성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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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이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책들만 읽어서인지 오랜만에 정적이고 조용조용한 느낌의 책을 골라 읽어 보았다.


이야기는 1930년대 중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 마을 앨리스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열 살이 된 소년 짐과 그의 가족과의 매일 매일을 그려놓았다. 생일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다. 자신을 위한 생일 케이크도 없는 것 같고, 아무도 선물을 준비한 것 같지 않다. 짐은 그렇게 의기소침하고 실망한 채로 집을 나서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 같다는 건 온전히 짐의 착각이었다. 그날 짐의 가족은 멋진 생일 선물과 함께 짐이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소년 짐은 다른 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대단한 개구쟁이도 아니고 모험심이 아주 강한 아이라고도 할 수 없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보통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해하고 신나게 어울리기도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지만 대신 삼촌들이 아빠 역할을 제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해 준다. 짐은 가족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생활하는 그런 아이다. 그 틈에서 부러움, 친근함 등의 감정을 하나씩 느끼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짐은 천천히 알아나간다. 그 나이 또래에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일상들을 추억을 담듯 그려놓았다.


<소년 짐> 속에는 커다랗고 충격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소재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소년의 일상을, 아주 보편적인 삶을 담아 놓았기 때문에 단조롭고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짐과 함께 평화롭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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