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3
한 둥 지음, 김택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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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국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개. 이 책 <독종들>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나, ‘장짜오’다. 장짜오는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1976년 궁수이 현중학교 2학년 1반에 전학을 오게 되고, 이때부터 만나게 되는 많은 독종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관계와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이 책 속에 하나하나 담고 있었다.







  당시 궁수이 현성에는 ‘독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독종이란 바로 체력이 출중하고 성격이 거친 자를 뜻했다. 그런 자들은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그들 쪽에서만 다른 사람을 괴롭혔다.”







  전학 간 날부터 장짜오에게는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첫날 전학 와 만난 짝꿍은 ‘웨이둥’. 아무도 그의 옆에 앉아서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옆자리는 항상 비어있었는데, 하필 장짜오가 거기에 앉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장짜오는 그런 웨이둥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크게 겁먹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주위로부터 베짱을 인정받아 쉽게 건드리지 못한 인물이라고 여겨지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 반의 진정한 일인자 ‘주훙쥔’의 눈에 들게 되었다. 처음 전학을 와서 이런 과정을 밟게 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으나 편안하다고 볼 수 있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훙쥔은 장짜오의 인생에 있어서 큰 획을 긋게 만드는 아주 영향력 있는 존재이자 친구였다. 모든 것에 그저 무덤덤했던 장짜오에게 주훙쥔은 살아있는, 생동하는 그 자체였다. 못된 웨이둥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훙쥔이었기에, 장짜오는 주훙쥔을 거의 우상시하며 학교생활을 해나간다. 영웅이기를 꿈꾸는 주훙쥔, 그는 다소 엉뚱하기까지 하여 귀여운 영웅이라는 인상마저 주었다.




  그리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군대와 대학이라는 관문을 앞에 두고 나, 장짜오만이 반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특히 그림에 관심이 많고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나아가지만, 가난한 그림쟁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게 되자 일약 몸값이 폭등하게 된다.

  또 하나의 독종 주훙쥔은 그렇게 영웅을 꿈꾸었으나, 그 욕구를 ‘소도시 싸움꾼’ 속에서 풀어가다 허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딩샤오하이는 가난하고 우울한 어린 시절을 떨쳐내고 건축 인테리어로 성공을 거두지만, 마작에 빠져 재산을 모두 잃는다.

  이 외에도 그를 둘러싼 몇몇 독종들이 더 등장한다.

  

  이 책 <독종들>은 결국 ‘여럿의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 속 ‘내가’ 태어나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 본 일들, 들은 일들을 묘사하여 보여준다. 특히 내가 매력을 느낀 캐릭터는 못된 웨이둥도, ‘나’도, 왕웨이도, 딩샤오하이도 아니었다. 주훙쥔. 아무데서나 ‘주먹’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곳에는 그 ‘주먹’을 아끼지 않는 남자, 그러면서도 순수함을 보여주는 남자, 의리를 알고 우정을 알며 사랑을 아는 남자였다. 그야말로 약자를 위해 애쓰고 강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해지는 사람이 바로 주훙쥔이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저자 한둥은 이야기가 중반을 지날 무렵 ‘죽인다’. 변변찮은 죄명을 씌우고는 바로 ‘탕’!  순간 작가에게 느낀 배신감과 무책임함은 책을 덮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아쉽다면 나름대로 아쉬운 장면이었다.

  그들의 어린 시절 일화들을 읽고 있으면, 그 시기 중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중국의 지명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인명들 속에 파묻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으나, 아이들의 놀이와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중국에 관한 인문서 몇 권을 읽는 것보다 어쩌면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이 수십 년의 중국의 흐름과 모습을 살펴보는 데에 있어서 더 낫지 않나 싶다. 다양한 그들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저자 한둥이 책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는 사회상들은 ‘나’의 이야기와 더불어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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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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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임 슬립? 시간이 흐르다?!

  이 책 <타임 슬립>은 서로 다른 공간, 서로 다른 시간에 살던 두 청년이 순식간에 벌어진 시공간의 뒤틀림 때문에 서로 뒤바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각각 2001년과 1944년에 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리터가 되어 바다에서 서핑을 하던 태평한 청년 오지마 겐타와, 이와 같은 시각에 비행기를 바다에 띄우며 출격 연습을 하던 소년병 이시바 고이치이다. 각각 서핑을 하고 비행연습을 하는 도중 이들의 악몽 같고 믿기 힘든 타임 슬립이 시작된다.




  하나의 양성자가 우주를 이동하는 도중에 홀연 그 양성자가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양성자는 정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주의 다른 위치로 간 것이다. 우주의 다른 위치라면...? 여기에서 염두에 둘 수 있는 것은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대’이다. 그러나 실은, 이 둘은 서로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기본적으로 우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벌어지는 이동은, 실로 엄청난 거리의 차를 갖고 있지만, 바로  곡률로 인해 순식간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타임 슬립’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영화에 쓰인 소재이기도 하며, 실제로 많은 사례 속에 ‘타임 슬립’의 경험이 제보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았을 것이고, 꿈꾸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만족은 그나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고자하는 곳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만약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의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충격과 놀라움을 과연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떻게 현실을 인정하고, 50년을 넘어선 격차를 받아들일 노력을 할 수 있을까? <타임 슬립>의 두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거부하려고도 해보았고 되돌리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뒤틀림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스스로 조금씩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자 한다. 그나마 미래에서 온 겐타는 지나온 과거의 역사를 알기에 조금 더 적응하기에 수월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와버린 고이치에게는 모든 게 엉망인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겐타는 고이치가 되고자 했고, 고이치는 겐타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점점 누군지 모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과거의 스스로를 보완하고 발전해나가는 모습으로 나아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50년 전, 이 땅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도 말투와 행동은 고리삭았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놈들도 있었다고. 우리와 똑같이 웃고, 울고, 화내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고, 믿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고.”




“50년 뒤의 일본은 너무 많은 물질과 욕심과 소리와 빛과 색의 세상이었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겸허도 수치도 겸양도 규범도 안식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애쓴 나라의 50년 뒤 모습이란 말인가?”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들은 각각 9.11 테러와 2차 세계대전을 직접적으로 접하고 있었다. 이 두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저자, 오기와라 히로시는 ‘정당한 전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전쟁은 죽을 위험이 전혀 없는, 안전한 곳에 있는 놈들이 계획하고 명령하는 거다.”

  자칫 식상해질 수도 있는 ‘시간 이동’이라는 소재는 시대를 대표할 제법 굵직한 인류의 재앙과 맞물렸고, 독자들을 <타임 슬립>의 이야기 속에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가미된 반전까지. 2차 세계대전의 묘사는 마치 내가 눈으로 본 것 마냥 세밀하게 표현된 것 같았다. 1/2, 2/2로 조금은 독특하게 구성된 점과 반전을 가미한 점도 책을 읽으면서 색다름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다.




  함부로 시공간의 초월을 꿈꾸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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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 프랑스 추리소설의 여왕 프레드 바르가스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뿔(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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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의 저자, 프레드 바르가스. 그의 책을 처음 읽었다. 검은 표지에서 주는 뭔가 어두운 듯한 이미지의 느낌 속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다 읽은 후 한 동안 책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감정에 잠겨 있어야 했다. 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롱폴’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롱폴(rompol)이란 바로 바르가스의 추리소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본래 프랑스어로 추리소설은 ‘roman policier(로망 폴리시에)’라고 불린다. 그러나 애독자들은 ‘롱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소설’, 즉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을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서 분위기를 중시한다는 말은 곧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워낙 강한 개성들을 갖고 있었다. 아마 당분간은 이들에게 푹 빠져있을 것 같다.




  이 소설 속에 삽입되어 있는 살인사건은 말 그대로 ‘가미되어 있을 뿐’이다. 보통은 제일 큰 줄거리나 큰 소재가 되는 살인사건이 이 책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 속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어떤 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바로 아마추어 탐정과 ‘복음서 저자들’, 마르크, 마티아스, 뤼시앵이다. 복음서 저자들이란 별명이 붙은 것 답게 마티아스는 마태복음으로, 뤼시앵은 누가복음으로 불린다.

  이들 ‘복음서 저자들’은 젊은 역사학자들이다. 선사시대 전문가인 마티아스, 중세 전문가인 마르크, 제 1차 세계대전 전문가인 뤼시앵, 그리고 마르크의 삼촌이자 퇴역한 형사인 방두슬레. 실제로 이 제목은 제 1차 새계대전 당시에 전사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자주 쓰였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들은 백수에 더 가깝다. 이 넷은 경제적인 이유로 다 쓰러져가는 박스 같은 집에 모여 살게 되고, 어느 날 이웃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살인사건을 그들 나름대로 풀어가기 시작한다.




  프레드 바르가스의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건 중심이 아닌 추리소설’이지만, 그렇다고 추리소설의 재미와 긴장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긴장감, 반전의 놀라움은 남은 페이지가 점점 줄어가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르크, 마티아스, 뤼시앵, 방두슬레, 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이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 내 눈앞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나 엉뚱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천재적이고 날카로운 그 매력은,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말로서는 도저히 전달할 방법이 없다. 이들 넷은 환상의 콤비이다. 서로 삐걱대기도 하고, 조합이 안 된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모두 각자 서로가 절실한 타이밍에 정확히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들이 직접 표현을 한 적도 없고 그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그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 사건을 풀어나가면서도, 그렇다고 이게 뭔가 형사나 탐정 같은 느낌은 아니고,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그들의 대화를 엿보고 있노라면 정말 순수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순수한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한 편 그들은 모두 역사학자이기에, 역사학자답게 책 속에는 역사적인 탐구와 그에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들, 묘사가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려지는 모습들은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흥미롭고 유기적이었다. 하나 더, 모든 역사학자들이 이들과 같다면, 개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역사학자라는 이미지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을 것 같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내게 남겨주었던 책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협화음의 혼돈 속에서는

      온갖 종류의 충돌이 가능하며,

      그러다보면 뜻하지 않은 불꽃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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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2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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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종류의 책을 읽기 전이면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뭔가 가슴 벅찬 배움을 얻을 것만 같고, 책 속의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어려움에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임을, 또 한 번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이 책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의 저자인 데이비드 덴비는 미국의 영화 평론가이다. 저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양필수 과목을 1년 동안 청강한다. 고전작품들을 읽고 풀어보는 수업인 이 교양 강좌는 한 학기에 소화하기에는 다소 벅찰 듯한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저자는 컬럼비아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면서 그가 느낀 것들, 그리고 깨달은 것들을 종합하여 이 책 속에 풀어놓고 있었다. 데이비드 덴비는 올바른 책을 읽음으로써 눈이 머는 것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또 고전작품이 판단이 흐려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건강한 대응이 될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의 의도를 들여다보면서, 정말로 고전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앞으로를 내다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은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위대한 글들, 책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1학기인 1권에는 호메로스, 사포, 플라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베르길리우스, 구약성서, 신약성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가 실려 있었다. 그리고 2학기인 2권에는 단테, 보카치오, 흄, 칸트, 몽테뉴, 루소, 셰익스피어, 헤겔, 오스틴, 마르크스, 밀, 니체, 보봐르, 콘래드, 울프가 실려 있었다. 이렇게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그들 각각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학생들과 토론했던 이야기들을 싣기도 했고, 이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목차를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가면서 낯익은 이름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 생소한 이름을 보았을 때는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고전이라는 학문은 정말 어떤 식으로든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우리가 고전작품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고전작품을 들여다보고 배워야만 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열린 독자는 일종의 메저키스트처럼 텍스트에 의해 마구 휘둘리며 상처입고 충격 받는 것을 즐거이 받아들인다고. 따라서 고전 읽기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이고 위대한 존재들과의 가슴 두근거리는 만남이라고 말이다.




  사실 위대한 고전작품들을 다룬 것도 대단하다고 여겨지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토론과정을 엿보면서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인 그들은 아주 자유롭게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알았고 또 깊고 놀라운, 그러면서도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이는 교수법의 영향도 컸으리라고 본다. 일 년 동안 다루어야 할 고전 작품들의 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서두르지 않는다. 지식을 전달하려고만 하는 데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보자는 의도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관심을 유도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끌어낸다. 이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작품에 대한 의미뿐만 아니라, 학습 태도나 방향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유익했다.




  다만, 이 책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위대한’ 그들의 글을 학습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러나 고전작품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그 대상이 어느 한 작품이더라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수많은 목록들 중에서 겨우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오스틴’이었으니,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저 오스틴의 책을 많이 읽은 것뿐이라 부끄럽다. 적어도 내게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웠지만, 이 책을 한 번 읽고 오롯이 배움을 전달받는다는 것은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의의는 읽는 사람이 고전작품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고전작품에 대한 지식을 쌓은 후에 이 책을 읽게 되면 느껴지는 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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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카네이션 - 비밀의 역사
로렌 윌릭 지음, 박현주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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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에서 책들을 둘러보다가 예쁜 이름에 끌려 골랐던 책이다. <핑크 카네이션>. 책을 집어 들면서 정말 매력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야기라는 간략한 소개에 나는 이 책 속으로 더욱 빠져 들었다. 역사 로맨스라는 흥미로운 장르를 접하기 전에 마음속에 설렘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 시간은 현대.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엘로이즈 켈리’는 미국에서부터 런던까지 오게 된다. 엘로이즈 켈리가 쓰려던 논문은 프랑스 전쟁 중에 나타나 활동했던 귀족 스파이에 대한 연구였다. 그러나 ‘그’, 귀족 스파이는 전혀 학계에 알려져 있지도 않은 상태이고, 또 베일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연구는 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셀윅 알더리 부인의 도움을 받아 엘로이즈 켈리는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바로 셀윅 가에 대대로 내려오고 있는 19세기 에이미라는 인물의 편지를 통해서이다. ‘현재’에 살고 있는 엘로이즈 켈리는 에이미의 편지를 통해서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스파이, 그것도 귀족 스파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소재였다. 나폴레옹 시기에 활동했던 귀족 스파이는 ‘스칼렛 핌퍼넬’과 ‘퍼플 젠션’, 그리고 ‘핑크 카네이션’이었다. 처형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갚기 위해 에이미는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과연 실수투성이이고 천방지축인 에이미는 스파이가 되어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스파이가 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 에이미는 ‘퍼플 젠션’, 리처드 셀윅 경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의 알 수 없는, 로맨스 아닌 로맨스가 펼쳐진다. ‘에이미’와 ‘리처드 셀윅’의 로맨스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떠올랐다. 아름답기만 한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아픔이 있고 위기가 있고 눈물이 있는 그들 각각의 로맨스였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진실로 느껴졌다. 비록 책을 통해서였지만, 그들이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온몸에 전해졌다.




  ‘역사 로맨스’답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시대의 배경이나 사건을 알 수 있었다. 19세기의 유럽 사회의 모습, 또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다른 위기 속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감각과 여유, 그러면서도 놓지 않는 긴장까지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스파이 활동은 생각보다는 빈틈이 많아 더욱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치밀하게 짠 계획 같은 것도 없이, 너무나 허술해 보이는 변장을 하고 적의 굴로 찾아 들어가는가 하면, 또 적의 진영 역시 공격에 쉽게 당하기도 한다. 그들의 스파이 활동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스파이 활동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처럼 느껴진다. 과연 이들을 스파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점들을 통해 그들의 세계가 참으로 순수하다는 생각으로 합리화를 시켰으니, 이 책에 얼마나 빠져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핑크 카네이션’의 밝혀지는 정체 역시 이 책을 읽는 재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소름이 돋을 만큼의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 속에 부드럽게 녹아있는 핑크 카네이션은 퍼플 젠션과 함께 ‘아름다운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과거 에이미의 이야기와 현재 엘로이즈 켈리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이 두 명의 여인을 들여다보면서 참으로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비록 시대는 19세기와 21세기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둘은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의식이 뚜렷했고, 적극적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안으로는 겁을 내고 두려워하더라도 겉으로는 절대 이를 보이지 않아 외강내유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런 장르의 책을 읽고 나면 왜 꼭 ‘리처드 셀윅’ 경과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과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성공했던 ‘에이미’를 닮고 싶다는 바람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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