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토리다
서영아 지음, 민택기.홍기영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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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업이 끝났다. 다음 수업까지는 두 시간 공강이다. 과제를 하러 가야 하는데, 지하철에서 읽다 만 책이 생각났다. 잠깐만 읽고 가야지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에 빠져, 새로운 배움에 빠져 결국 공강 시간을 도서관이 아닌 빈 강의실에서 보내고 말았다.




  어렸을 때 단순한 호기심으로 ‘왜 C형은 없는 건지’가 궁금해 알아봤던 적이 있다. 그리고 조금은 관점이 다르지만 새로운 의미로 C-blood, 몸속에 creative energy가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 <당신은 스토리다>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 어렵고 힘들어만 보인다. 어떻게 매사에 창조적인 생각만 하며 살 수 있다는 건지. 잠시도 쉬지 못하고 굴려야 할 머리를 생각하면 저절로 몸서리치게 된다. 돈을 주고 하라고 해도, 아 물론 당연히 수입이 생기는 거지만, 절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크리에이터라고, 걷고 생각하며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라고 글쓴이는 말하고 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속에서 스토리가 되어 태어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보다 아주 조금 더 스토리를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러니까 ‘우리보다 아주 조금 더 앞서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해보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것이다.




  여기 10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독자들의 멘토가 되어줄. 그리고 그들은 각각 Play, Wild, Communication, Drama, Emotion, Dream, Reset, Fairy tale, Taste, Story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경험과 직업을 통해 이야기하며 장식해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감성을 한껏 자극시키는 이야기들이다.




  <당신은 스토리다>는 글쓴이가 크리에이터 10인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진심어린 이야기, 자신을 향한 고백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각기 다른 방면에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는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스스로가 독립적인 하나의 ‘스토리’라는 것. 지금의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자기 가슴 속에 스토리를 채워 넣었는지를 그들은 보여주었다. 따옴표 안 그들의 음성이 책 밖으로 튀어나와 실제로 들리는 듯 했다.




  절대 스스로에게 한계선이라는 것을 긋지 말자.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변명 따위는 이제 그만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조금 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라는 말은 더 이상은 ‘노’. 앞에 무한한 길이 열려 있는데 왜 주춤하려 드는 건지. 혹여 눈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길을 만들면 그만이다. 지도에 그려진 길만을 따라가는 사람이 될 것인지, 새로이 지도를 만들어보기도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제 자기하기 나름의 문제다. 나만의 서랍에 나만의 가치, 나만의 것을 차곡차곡 넣어 이들로 한 권의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다면, 거기에다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면, 이제 그 서랍은 바로 나의 자산이며 나의 브랜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언젠가 학교를 떠나 직업을 가지고 있을 내 모습에서 행복함과 즐거움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술을 갈고 닦으며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두고,

      기꺼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다이앤 애커먼, 뇌의 문화지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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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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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좋은 소식을, 아름다운 마음을 전해주는 배우 ‘차인표’를 동경해왔다. 진정한 ‘엄친아’의 원조는 바로 ‘차인표’라고 생각한다. 아, ‘아’는 아닌가? 어찌되었든, 항상 선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훈훈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차인표를 보면서 참 멋진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편소설을 썼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한껏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우로서의 유명세를 따라 책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약간은 생겼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아니 그의 글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내 생각이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었음을 완벽하게 알게 되었다. 잠시나마 그런 ‘불결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저자에게 죄송스러울 정도로. 이제는 하마터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놓칠 뻔했으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신께서 두 가지 재능을 한 사람에게 주시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그런데 차인표 씨는 예외적인 사람에 속하는 모양이다.”라고 말한 이어령 문학평론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책을 낸 저자의 후기를 읽으면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저자가 자신의 책 한 권을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할 테지만, <잘가요 언덕>의 차인표 역시 보다 진실성 있는 이야기를 탄생시키기 위해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열과 성을 다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이 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답시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잠깐 머리 좀 식힐 겸해서 펼친 책은 그대로 내 정신을 호랑이 마을에 묶어두었고 나는 순식간에 이야기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잘가요 언덕’이라는 독특한 언덕, 마치 전래동화처럼 시작하는 ‘호랑이 마을’의 유래, 수줍고 어여쁜, 그리고 순수한 사랑, 원수를 향한 복수와 용서. 이야기는 희망의 제비가 마을을, 그리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순이와 용이의,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제비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비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감정을 갖고 있는 동시에 우리의 가슴 속 감정을 대변해줄 줄 알았다. 어쩌면 저자 자신이 제비의 탈을 쓰고 책 속으로 쏙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한 일본군인 가즈오의 어머니를 향한 편지글이 있다. 호랑이 마을에서의 이야기와 편지글 속의 일본군의 편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한 편의 멋진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편지글을 통해 나는 그동안 미워만 했었던 그들, 그 시대의 일본 그 자체에 대한 일방적인 반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즈오는 참으로 올곧은 사내였다. 그는 진정으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행동으로도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로서는 일본정부가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모른 채 조국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당연했다. 타국에서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그리고 지금 자신의 행동이 정말로 의로운 행동인지, 자신이 받고 있는 명령이 진정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어지러운 회의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그들 개개인의 군인들도 우리 조상들 못지않게 일본에 의해 희생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정부는 우리의 조상들뿐만 아니라, 자기네 국민들마저 비열하게 속였던 것이다.




  원수를 안을 수 있는 힘, 위대한 ‘용서’라는 것을 순이와 훌쩍이는, 그리고 용이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을 맛봐야만 했기에 누가 이끌어줄 새도 없이 스스로 철이 들어버리고 성숙해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했던’ 용이가 진정으로 용서를 하고, 드디어 ‘엄마별’을 찾게 되는 과정을 눈으로 훑어가면서 가슴 속 어딘가가 찡해지는 것 같았다. 배우 차인표의 또 다른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계획에도 없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호랑이 마을을 가만히 머릿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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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기다리며
소담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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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억 속에 있는 사랑. 가슴 아파 놓을 수 없는 사랑.

  잊고 싶은 기억.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

  책의 두께도 두께지만 거기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간과 공간의 무게가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태양을 기다리며>를 읽으면서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들과는 무언가 조금은 다른 듯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을 기다리며>는 크게 ‘루즈 마이 메모리’, ‘지로의 세계’, ‘후지사와의 과거수첩’,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 ‘훼이팡의 비극’, ‘빛의 사체’라는 소제목 아래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반복되고 교차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소제목을 따라,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2000년 여름의 촬영장에서 1937년의 난징, 1945년의 히로시마, 1970년의 도쿄를 정신없이, 그러나 분명한 의식으로 넘나들게 된다. ‘루즈 마이 메모리’에서는 영화 촬영장에서의 이야기가, ‘지로의 세계’에서는 머리에 총을 맞고 혼수상태가 된 지로의 세계가, ‘후지사와의 과거수첩’에서는 후지사와의 출생 이야기가,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에서는 후지사와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이, ‘훼이팡의 비극’에서는 젊은 시절 이노우에 감독이 훼이팡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과 아픔이, ‘빛의 사체’에서는 지로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기억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교차되는 흐름은 지로의 ‘머릿속 세계’를 통해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로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매개는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란도셀’.




  이제는 노장이 된 이노우에 감독은 영화촬영장에서 태양의 빛에 집착하며 조금씩 정신을 잃어간다. 이를 특히 이상하게 여긴 것은 시로와 도모코. 시로는 지로의 동생이며 도모코는 지로의 첫사랑이자 영원했던 여인이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 둘. 그리고 이제는 시로의 사랑을 받는 도모코. 점점 이노우에 감독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결국 우연한 기회를 통해 시로와 도모코는 이노우에 감독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오래전 기억 속에서의 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으로 시로는 총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 형 때문에 곤경 아닌 곤경에 빠진다. 후지사와로부터의 전화 한 통. 자신의 란도셀을 돌려주지 않으면 형과 똑같은 처지로 만들어주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 이렇게 <태양을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복잡한 상황을 두어 개씩은 끌어안고 있다.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다가도 연결고리에 따라 어느 순간 모두 한 점으로 모여들고 만난다. 그런 그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냥 자취도 없이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지로를 따라 시공간의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보기도 하고 인종을 넘어선, 언어장벽을 넘어선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운명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절망 속 상황에서 비치는 한 줄기 희망. 강렬하게 빛나는 태양을 각 시대에서 각 공간에서 그들은 애타게 바라고 바란다.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기억,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면 그냥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기억을 각자의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억지로 잊어버리려 하지 않아도 돼. 기억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죽음 앞에서의 고민들. 모든 것을 다 떨쳐내고서 남은 원초적인 사고들. 삶의 반대말은 죽음, 죽음의 반대말은 사랑, 사랑의 반대말은....... 하지만 죽음. 사람은 결코 삶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거야.
















       제한된 삶을 제한 없이 살아가려면,

       지금을 소중히 하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거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멋진 추억의 거목이 되어

       해마다 너의 인생에 아름다운 녹색 잎을 무성하게 피워낼 테니.




       언젠가 찾아올 죽음 직전에, 너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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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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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다.

  그냥 주위에 널리고 널려있는 것들. 너무 흔해빠져 내게는 별 의미조차 있지 않았던 것 같은 것들. 이를테면 노란 고무줄이나 칫솔, 소금이나 책받침 등 사소하다면 너무 사소한 것들이 에쿠니 가오리를 통하고 나니 말 그대로 하나하나의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이 책에는 에쿠니 가오리의 주위에서 오래도록 그녀에게 의미가 되어주고 있는 소품, 소재들이 60가지로 정리되어 수록되어 있다. 그녀의 이 목록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에는 별 다른 게 없다. 어떤 물건이든 색깔이든 멜로디든 음식이든 장면이든 생각이든 그녀에게 조그마한 의미라도 되는 것이면, 그녀의 머릿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오케이.




  처음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를 접했던 게 아마 <냉정과 열정사이>였던 것 같다. 그 땐 ‘일본 소설’이라는 장르에 상당히 거부감을 갖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그럼에도 유명한 책이었기에 봐야만 했었다.- 그 책 역시 내게는 별로 큰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고, 그 후로도 그녀의 다른 작품 몇 권을, 이제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겨우나마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책 역시 가벼우면서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기꺼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처럼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에도 에쿠니 가오리의 감성이 참 잘, 그리고 아름답게 녹아들어 있었다. 저자의 에세이는 처음 읽어봤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묘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저자가 눈여겨 봐왔던 거라든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소중히 다루는 것이라든지 유독 좋아하는 풍경이라든지 그녀가 작은 것 하나하나에 갖고 있는 애착을 이 책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마치 내가 에쿠니 가오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같았다. 작가는 예술가이다. 예술가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뭔가 모르게 아주 다를 것만 같았다. 별세계 사람 같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뇌를 갖고 있을 것만 같은. 저자가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고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에서 나는 그 동안의 내 생각이 맞았구나, 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흔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독자들,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눈과 생각과 손을 거쳐 태어난 이 책의 리스트 속 그것들은 원래의 이미지에 새로움이 더해져 또 다른 하나의 개체로 다시 태어난 듯했다. 소소하기에 일상과 참 잘 어울린다. 소소한 아름다움, 소소한 행복, 소소한 기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을 일상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 그 시간만큼 기억 속에서도 점차 잊혀져가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일기장을 펼쳐 보았을 때 내가 실은 기억 저편에 잠시 보관해 놓고 꺼내보지 않았을 뿐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다시 내 것이 된 기억들을 모아모아 보면 그것들이 새로운 하나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나만의 ‘소품 리스트’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조금 무례하고 건방진 생각이기는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도 내 목록에 살포시 집어넣어 앉힐 것이다.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산뜻하고 상쾌한 책 표지와 달콤한 책 내용이 참 잘 어우러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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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슬기 맑힘이다 사이의 사무침 1
구연상 지음 / 채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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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부터가 뭔가 참 ‘철학스럽다’.

  딱딱한 학문 하면 딱 떠오르는 ‘철학’. 알면 알수록 오묘해지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알 수 없고 어지러워지는 것 같은 학문. 어렵다 못해 애매한 학문. 물론 여느 학문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학문이다. 어떤 사람은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고 모든 걸 놓아버렸을 때 철학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는 일 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철학을 자유로이 생각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철학에 대해서는 알고 싶은데.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왜 철학을 ‘슬기 맑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정의내리고 설명했는지를 우선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철학이라는 말 자체에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기에 ‘철학을 자유롭게 바라보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누구나 ‘철학’을 자유롭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자는 철학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찾은 것이다. ‘슬기 맑힘’이라는 정의를 만들기까지 저자가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은 ‘슬기 맑힘’이라는 생소함, 낯설음에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고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새로움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새로운 마음으로 철학을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 의도를 담은 채로 이 책은 철저하게 강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강의 내용을 활자라는 수단을 통해 담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교양강의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무겁고 깊이 있게 철학을 다루기보다는 처음 철학을 접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양 수업을 하듯이,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얻어가는 것은 많은 그런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제1강과 제2강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강의 속에서 여러 키워드를 철학과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1강에서는 ‘슬기 맑힘과 악(惡)’이라는 주제 아래 철학의 기본과 본질에 대한 설명이 중점적으로 기술되어 있었고, 제2강에서는 ‘개인(個人)의 유래’라는 주제로 여러 유형의 개인의 모습이 철학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왜 개인을 작은 주제어로 삼고 강의를 진행했을까? 우리는 모두 개인이다. 그러나 실은 개인이라는 것의 의미를 그 본질적으로 탐구해보지는 잘 않는다. 아니 거의 않는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점점 ‘함께’라는 말을 잃고 개인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더불어 살기 보다는 혼자 살기의 삶에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상황의 미래, 결과를 우려했다. ‘함께 나누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자는 우리가 지혜롭게 하나가 되자는 것을 강조한다. 철학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라는 틀 안에서 개인을 탐구하고 바라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무조건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샛노란 표지와 함께 이 책은 우리 머릿속에 뒤죽박죽 깃들어 있는 사고를 좀 더 가벼운 길로 이끌어주며 유연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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