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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동물농장>으로도 유명한 조지 오웰의 작품, <1984>를 이제야 읽은 것은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유명한 탓에 대강의 이렇다,는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충격에 가까웠다. 이 책은 1940년대에 저자가 예측해본 어두운 미래를 그린 소설인데, 이보다 더한 디스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고, 말로만 듣던 ‘빅 브라더’를 그 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BIG BROTHER is watching You.” 빅 브라더의 가공할 만한 정보 수집을 가능하게 해주는 텔레스크린은 사무실, 집 할 것 없이 어느 곳이나, 심지어 화장실에까지도 설치되어 있어 감시카메라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텔레스크린을 의식하며,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모든 언어와 행동은 철저하게 빅 브라더의 지배하에 놓여 있고, 맛에 대한 본능, 성에 대한 본능들 역시 철저하게 제한되는 아주 억압적인 세계로 전체주의의 미래가 그려져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 바로 이 책 한 권에 신랄하게 펼쳐져 있었다.
모든 역사는 필요에 따라 깨끗이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양피지 위의 글씨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단 그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어떤 경우에도 거기에 허위가 섞여있다고 주장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었다.
역사가 조작된다는 사실 역시 두려운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한데,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사실이었던 과거를 순식간에 허구로 갈아치우고, 분명 방금 전까지 존재하던 것을 순식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버린다. 무無가 된 그것에는 이제 이름조차 없다. 공중으로 증발해버린 그 사람 또는 그것은, 이제 다시는 회상해보아서도, 기억을 해서도 안 되며, 심지어 그렇게 머릿속에서조차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세뇌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기에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신어 정책 역시 빅 브라더의 주요 사업이었다. 언어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임에도, 빅 브라더는 사람들의 사고의 폭을 줄이기 위해 어휘를 대량으로 삭제해 나간다. bad가 사라지고 good과 ungood만이 사전에 기록된다. 그렇게 사전에 실린 어휘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해서 그 수가 줄어든다. 존재하지 않는 어휘에 대해서는 이제 생각도, 상상도 할 수 없다. 얼마나 사고의 폭이 좁아질지 눈에 훤히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아무리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억제하고 억압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누군가 문제제기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윈스턴의 머릿속에는 항상 그런 의구심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것으로,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빅 브라더 몰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윈스턴은 자신의 사고를 꿋꿋하게 지켜내려 애를 쓴다. 결국 사상경찰에 잡혀 끌려가고, 굴복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더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우연치 않게도 <1984>에 흠뻑 빠져 있던 요 며칠 사이에, 모 여대에서 ‘학생 감시’ 의혹 문건이 발견되어 인권침해가 아니냐는 논란이 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984는 내게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과거 조지 오웰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여론의 조작이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 기대했고 그런 세계를 책 속에 그려내었다. 그리고 지금,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도입되고, 그리고 확산되면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물론 이 역시 철저히 예견되었던 일일 수도 있을 거라는 음모론에 저절로 휩싸이는 것 같다-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조작에 관련해서는 인터넷이 확산됨으로 인해서 더욱 활발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우려가 높아지면서도 이미 익숙해져버린 세상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역시 현실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조작을 하려 든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저항 역시 팽팽한 힘으로 맞서려 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슬로건이다.
그러나 과거는 본질적으로 변경될 수 있음에도 여태 그런 적이 없다.
지금 진실한 것은 영원히 진실하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살시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현실 제어’라 칭했는데,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