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 본죽 대표 김철호의 기본이 만들어낸 성공 레시피
김철호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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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말해서 나는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플 때조차도 죽은 거의 찾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본죽’에서 맛을 본 적이 두어 번 정도밖에 없다. 처음에는 동네에 본죽 가맹점이 생겨 호기심에 찾았고, 그 다음에는 주위 누군가가 아파 죽을 사 같이 먹느라고 찾았었다. 원래 죽을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본죽의 죽 역시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리고 본죽 가맹점이 눈에 띄게 많은 곳에서 보이기는 했는데, 그 안에 손님들이 가득한 광경은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본죽이 이렇게나 성공한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김철호는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였는데, 1997년의 외환위기로 그가 이룬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호떡 장사로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본죽이라는, 슬로푸드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사업을 성공궤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가 본죽으로 승승장구하기 전, 비로소 안정을 찾기 전, 그는 위기와 실패와 좌절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누구나 실패 앞에서는 쓴 맛을 볼 수밖에 없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저자는 ‘실패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힘든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내었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아픔을 딛고 일어섰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 그것의 한 부분을 잘라 이 책에 싣고 자신이 살면서 지키고 추구해온 원칙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든지, 실패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집착과 불필요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기본을 잃어버려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 돈이나 명예가 아닌 행복이라는 잣대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해보아야 한다는 것, 것 등 이 밖에도 그의 인생관과 사업관들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는 많이 형성되어 있는, 외국에서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기부문화를 저자 역시 잘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기본을 중요시하고, 큰 회사보다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섬김과 나눔과 배움의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서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지만 삶에 치여 잠시 놓아버릴 수 있는 것들을 저자는 꼭 쥐고 실천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기본本에서 시작하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아주 맛있기보다는 아주 정성스러운 죽 한 그릇을 먹고 난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죽을 찾게 된다면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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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대행 에이전시
안네 헤르츠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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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픈 이별을 대신해드립니다’, <이별대행 에이전시>.

제목부터 재미있으리라는 기대에 솔깃했고, 칙릿(chic-lit)의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저자소개부터 좀 독특하다. 분명 표지에는 안네 헤르츠란 하나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는데, 표지를 열어보니 두 명의 여자가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 알고 보니, 안네 헤르츠는 언니 프라우케 쇼이네만과 동생 비프케 로렌츠라는 자매 작가의 공동 필명이라고 한다. 어떻게 두 명 이상의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같이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안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안정적이랄 수 있는 직장에 다니며, 일생에 한 번 뿐일 결혼식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 매일을 꿈을 꾸듯 살아가는 율리아 린덴탈이 있다. 그리고 그녀와 미래를, 그리고 일년 뒤의 결혼식을 약속한, 현재는 동거 중인 남자친구 파울 에발트 마이스너도 여기에 있다. 율리아에게서 강한 로맨틱한 성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세상에서 그녀와 제일 가까운 파울에게서는 로맨틱함보다는 현실적인 성향을 훨씬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다. 둘은 분명 서로 사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왠지 처음부터 나는 이들이 무미건조해보였고, 사랑보다는 ‘정’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쩌면 파울에게서 로맨스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사랑을 하고 또 삶을 살고 있던 율리아에게 드디어(?) 일이 터진다. 그나마 고정된 수입을 보장해주던 직장에서 너무도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한 것이다. 해고당한 율리아는 직장을 잃어 슬픔을 느끼는 것보다도 당장 내년에 있을 결혼식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더 불안해한다. 이 정도로도 율리아가 꿈에 젖어 사는 정도가 조금은 지나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파울은 그저 담담한 위로와 더욱 담담한 희망을 안겨주는 게 전부였다. 당장 내일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율리아는 자신을 해고하는 데 일조했던 시몬 헤커로부터 사업 제의를 받는다. 이별 대행 사업. 굳이 부연 설명을 하자면, 미안한 마음 때문에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지 못한다거나, 이젠 얼굴조차 보기 싫어서 이별을 대신 전해줄 이를 찾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사업이다. 1초만 생각해봐도 얼토당토 않는다는 답이 나오듯, 율리아를 포함하여 주변 모든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고 만다. 그러나 드디어 율리아는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결심’이라는 것을 한다. 그동안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살아왔다면 난생처음으로 결심다운 결심을 내린 것이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전의 율리아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큰 결정이었다.

 

그렇게 율리아는 변했다. 지극히 수동적인 인간형의 대명사였던 그녀는 이제 스스로 결정을 할 줄 알고,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줄 아는 주도적인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런 아주 축하할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변화가, 그런데 파울에게는 조금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파울과 율리아, 시몬 사이에 서서히 삼각 구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평생을 그저 안정적으로만 살아갈 것인가,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그런 것으로부터 오는 스릴를 느끼기도 하면서 인생을 즐기듯 살아갈 것인가 하는 인생관을 두고 율리아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시간이 감과 동시에 율리아는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율리아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때로는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일을 즐기기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껴보고 자기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타인의 이별을 대신 해주면서 그녀는 타인을 위로하는 법을 배우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게 되었다.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과정에서 그녀는 스스로 자기계발을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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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가의 유산 2
필리파 그레고리 지음, 황옥순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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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나 인물들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들과 관련된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롭다. 이 책 <불린가의 유산>은 두 권으로, 헨리 8세와 그와 함께했던 여인들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헨리 8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영국의 손꼽히는 바람둥이였다는 점, 그가 정말 엄청난 ‘뚱뚱보’였다는 것과 꽤 여럿의 부인을 두었었다는 점 등이었다.

 

이 책 속에는 헨리 8세와 그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아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내들(?)인 클레베스의 안나와 캐서린 하워드를 통해 진행되어간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인 조지 불린의 미망인인 제인 불린까지,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면서 그들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 그리고 생각들을 <불린가의 유산>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녀들 저마다 나름대로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를 갖고 있었다. 동생으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고 무시를 당해왔던 안나, 헤프다면 헤프고 철이 없다면 철없는 문란한 일상을 지내오던 캐서린, 남편과 시누이의 근친에 폭발할 듯이 일어나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결국 그들을 참수대로 보내버리고야 말았던 제인 불린.

 

왕이 법이고, 신이고, 하느님이고, 조물주인, 그야말로 왕 세계인 그곳에서 그녀들,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을 해나간다. 클레베스 공국의 안나는 헨리 8세와의 정략결혼을 위해 살던 곳도, 언어도 놓아두고 낯선 영국 땅으로 향한다. 그녀가 자신의 새 나라로 오는 길에서 했던 많은 생각들과 다짐들을 엿보면서 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여섯 아내를 두었던 왕이라고는 하지만 묘사되는 것에 의존한다면, 정말 외면도, 내면도 모두 형편이 없었다. 엄청난 살덩어리를 안고 사는데다가 상처 부위 때문에 언제나 썩은 냄새를 풍긴다. 게다가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굴고 수시로 마음을 바꾸곤 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왕의 눈에 차지 못했던 안나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왕이 전에 다른 왕비들을 몰아낼 때 그래왔듯 모함을 받고 왕비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나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 시기에 왕의 총애를 받았던 캐서린이 이제 안나를 대신해 새로운 왕비의 자리에 앉는다. 그저 시녀들이 비위를 맞추어주기를 좋아하고, 값비싼 선물에 입이 찢어지는 철없는 소녀에 불과했던 캐서린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왕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잠깐이나마 풍족함을 느끼지만, 사실 왕은 남편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라 여겨졌기에, 캐서린은 그를 진정한 남자로 사랑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탄로가 나고 만다. 여기에서 궁의 모든 비밀은 제인 불린의 입을 통해 봉해지기도 하고 누설되기도 한다. 궁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또 재산과 연금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궁리릏 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제인 불린도, 그러나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던 세 여인,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입장과 위치로 각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세 여인, 그들의 사랑과 욕망, 꿈과 야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은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말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책 읽는 재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흥미롭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일의 스캔들>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이 책의 저자 필리파 그레고리는 마치 독자를 그 상황 한 가운데에 데려다 앉혀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묘사 덕분에 나는 헨리 8세 옆에서 그녀들을, 그리고 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와 그녀들의 삶이 결코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 덕분에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한 장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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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가의 유산 1
필리파 그레고리 지음, 황옥순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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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나 인물들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들과 관련된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롭다. 이 책 <불린가의 유산>은 두 권으로, 헨리 8세와 그와 함께했던 여인들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헨리 8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영국의 손꼽히는 바람둥이였다는 점, 그가 정말 엄청난 ‘뚱뚱보’였다는 것과 꽤 여럿의 부인을 두었었다는 점 등이었다.

 

이 책 속에는 헨리 8세와 그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아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내들(?)인 클레베스의 안나와 캐서린 하워드를 통해 진행되어간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인 조지 불린의 미망인인 제인 불린까지,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면서 그들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 그리고 생각들을 <불린가의 유산>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녀들 저마다 나름대로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를 갖고 있었다. 동생으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고 무시를 당해왔던 안나, 헤프다면 헤프고 철이 없다면 철없는 문란한 일상을 지내오던 캐서린, 남편과 시누이의 근친에 폭발할 듯이 일어나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결국 그들을 참수대로 보내버리고야 말았던 제인 불린.

 

왕이 법이고, 신이고, 하느님이고, 조물주인, 그야말로 왕 세계인 그곳에서 그녀들,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을 해나간다. 클레베스 공국의 안나는 헨리 8세와의 정략결혼을 위해 살던 곳도, 언어도 놓아두고 낯선 영국 땅으로 향한다. 그녀가 자신의 새 나라로 오는 길에서 했던 많은 생각들과 다짐들을 엿보면서 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여섯 아내를 두었던 왕이라고는 하지만 묘사되는 것에 의존한다면, 정말 외면도, 내면도 모두 형편이 없었다. 엄청난 살덩어리를 안고 사는데다가 상처 부위 때문에 언제나 썩은 냄새를 풍긴다. 게다가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굴고 수시로 마음을 바꾸곤 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왕의 눈에 차지 못했던 안나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왕이 전에 다른 왕비들을 몰아낼 때 그래왔듯 모함을 받고 왕비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나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 시기에 왕의 총애를 받았던 캐서린이 이제 안나를 대신해 새로운 왕비의 자리에 앉는다. 그저 시녀들이 비위를 맞추어주기를 좋아하고, 값비싼 선물에 입이 찢어지는 철없는 소녀에 불과했던 캐서린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왕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잠깐이나마 풍족함을 느끼지만, 사실 왕은 남편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라 여겨졌기에, 캐서린은 그를 진정한 남자로 사랑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탄로가 나고 만다. 여기에서 궁의 모든 비밀은 제인 불린의 입을 통해 봉해지기도 하고 누설되기도 한다. 궁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또 재산과 연금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궁리릏 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제인 불린도, 그러나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던 세 여인,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입장과 위치로 각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세 여인, 그들의 사랑과 욕망, 꿈과 야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은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말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책 읽는 재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흥미롭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일의 스캔들>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이 책의 저자 필리파 그레고리는 마치 독자를 그 상황 한 가운데에 데려다 앉혀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묘사 덕분에 나는 헨리 8세 옆에서 그녀들을, 그리고 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와 그녀들의 삶이 결코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 덕분에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한 장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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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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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만화책과는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이해하기 쉽게 나왔다는 역사 만화책도, 사춘기 시절을 촉촉하게 적셔준다는 순정 만화책도, 이상하게 만화책은 읽고 싶지 않았었다. 그렇게, 나름 어른이 되어(?) ‘만화책은 어린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접한 만화책은 그야말로 생소하고 낯설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라는 제목과는 아주 반대로, 내용은 아주 암울하고 우울했다. 뭔가 발랄하고 신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갔다. 흑백으로 처리된 만화책 그림처럼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역시, 조그만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아주 어두컴컴하고 질척거리는 동굴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는 10편의 시가 실려 있었고, 그 시들을 기반으로 하여 9편의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우울한 하루’ 쯤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녀에게서는 설렘이나 기쁨은 고사하고, 즐거워하는 표정도 행복하다는 감정도 편안하다는 생각도,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기 무게보다도 더 나가는 짐이 위에 얹혀 있는 것처럼 어깨는 축 쳐져 있고,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무료하고 짜증나는 일상이, 건조하고, 씁쓸하고,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하루하루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실 오늘은 요 근래 들어, 날씨가 가장 좋았음에도 손끝이 기분 나쁘게 시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들에게서 내일이라는 것은 없어보였다. 그녀는 내일은 없는 것처럼 오늘을 살고 있었다. 그것이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어제 같은 오늘, 엊그제 같은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오늘 같으리라는 그런 느낌.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회복지사, 매일을 힘들게 살아가는 백화점 여직원, 꿈이 없는 전업주부, 프리랜서 등. 그들에게서는 어떤 희망의 빛도 발견할 수다 없었다. 그들에게는 누구도 따듯한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그들 스스로 따듯한 곳을 찾아 나가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읽을수록 나를 가라앉게 만드는 이야기를 아주 오랜만에 접해서인지, 가슴 속에서 뭐라 부를 수 없는 생소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녀들을 향한 동정인지, 아니면 그들에게서 한심함을 느끼는 것인지,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건지, 손을 내밀고 싶은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악몽은 아닌데도 뭔가 깔끔하지 못한, 그런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슬금슬금 든다.

 

 



 

 

가는 비 온다 - 기형도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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