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린가의 유산 1
필리파 그레고리 지음, 황옥순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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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나 인물들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은 거의 없는 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것들과 관련된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롭다. 이 책 <불린가의 유산>은 두 권으로, 헨리 8세와 그와 함께했던 여인들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헨리 8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영국의 손꼽히는 바람둥이였다는 점, 그가 정말 엄청난 ‘뚱뚱보’였다는 것과 꽤 여럿의 부인을 두었었다는 점 등이었다.

 

이 책 속에는 헨리 8세와 그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아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내들(?)인 클레베스의 안나와 캐서린 하워드를 통해 진행되어간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인 조지 불린의 미망인인 제인 불린까지, 이렇게 세 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면서 그들에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들, 그리고 생각들을 <불린가의 유산>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녀들 저마다 나름대로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과거를 갖고 있었다. 동생으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고 무시를 당해왔던 안나, 헤프다면 헤프고 철이 없다면 철없는 문란한 일상을 지내오던 캐서린, 남편과 시누이의 근친에 폭발할 듯이 일어나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결국 그들을 참수대로 보내버리고야 말았던 제인 불린.

 

왕이 법이고, 신이고, 하느님이고, 조물주인, 그야말로 왕 세계인 그곳에서 그녀들,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을 해나간다. 클레베스 공국의 안나는 헨리 8세와의 정략결혼을 위해 살던 곳도, 언어도 놓아두고 낯선 영국 땅으로 향한다. 그녀가 자신의 새 나라로 오는 길에서 했던 많은 생각들과 다짐들을 엿보면서 후에 그녀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여섯 아내를 두었던 왕이라고는 하지만 묘사되는 것에 의존한다면, 정말 외면도, 내면도 모두 형편이 없었다. 엄청난 살덩어리를 안고 사는데다가 상처 부위 때문에 언제나 썩은 냄새를 풍긴다. 게다가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굴고 수시로 마음을 바꾸곤 한다. 애초에 처음부터 왕의 눈에 차지 못했던 안나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음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는 왕이 전에 다른 왕비들을 몰아낼 때 그래왔듯 모함을 받고 왕비의 자리에서 강제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나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 시기에 왕의 총애를 받았던 캐서린이 이제 안나를 대신해 새로운 왕비의 자리에 앉는다. 그저 시녀들이 비위를 맞추어주기를 좋아하고, 값비싼 선물에 입이 찢어지는 철없는 소녀에 불과했던 캐서린은,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만큼은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왕의 온갖 사랑을 받고 잠깐이나마 풍족함을 느끼지만, 사실 왕은 남편이라기보다는 할아버지라 여겨졌기에, 캐서린은 그를 진정한 남자로 사랑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다.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탄로가 나고 만다. 여기에서 궁의 모든 비밀은 제인 불린의 입을 통해 봉해지기도 하고 누설되기도 한다. 궁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또 재산과 연금을 위해 머리를 굴리고 궁리릏 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제인 불린도, 그러나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왔던 세 여인,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다른 입장과 위치로 각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세 여인, 그들의 사랑과 욕망, 꿈과 야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은 대부분의 독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말을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책 읽는 재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 흥미롭고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일의 스캔들>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이 책의 저자 필리파 그레고리는 마치 독자를 그 상황 한 가운데에 데려다 앉혀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묘사 덕분에 나는 헨리 8세 옆에서 그녀들을, 그리고 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헨리 8세와 그녀들의 삶이 결코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 덕분에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한 장을 덮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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