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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 떠남에 서툰 당신을 위한 청춘 여행법
노동효 지음, 안시내 그림 / 나무발전소 / 2011년 7월
평점 :
길 위에서 인류의 사랑을 맘껏 받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이다. 라는 저자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똑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사람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슴으로 와 닿는 것이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여행 에세이 읽는 것을 선호한다. 임어당(린위탕)은 <생활의 발견>에서 여행의 본질은 이렇다 할 목적지도 없는 나그네길이라고, 좋은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 노동효는 그 말의 예로 아주 적절한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 책에 여행길을 담아 놓았다.
그의 대륙 횡단기는 가히 모험적이었다. 불현듯 삶에 지리멸렬함을 느끼고 저자는 휴학을 했다. 그러고는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1년하고도 한 달. 어학연수라는 명분으로 낮에는 템스 강 유람선 선원으로 일하고, 오후에는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 그는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쉬운 길을 거부하고 1만 6000km의 길을, 유라시아 대륙길을 횡단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세계 시계의 기준인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출발하여 프라하, 바르샤바, 크라코프, 부다페스트, 벌러톤, 자그레브, 스플리트, 베니스, 로마, 피렌체, 시실리, 브린디시, 파트라스, 아테네,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앙카라, 코니아, 테헤란, 이스파한,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훈자, 카슈가르, 우루무치, 베이징, 웨이하이, 인천을 거쳐 부산에 상륙했다. 눈으로만 훑어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여정이었다.
길을 나서면 어느덧 여행의 신이 네 어깨 위에 내려앉을 테니, 라고 저자가 말했듯, 그의 여행길에는 유독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눈을 마주치고 한 마디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선뜻 집으로 데려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것을 사 주고 생사가 달린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마음이 잘 통하는 벗을 만나 여행을 함께 하기도 하고, 무모한 도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간혹 집시들에게 눈 깜짝할 사이 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도둑질 당하기도 했고, 노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여행에서 마주친 즐거움과 인연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눈감아줄 수 있는 일이었다.
여행을 통해 저자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태국의 한 해변에서 그만의 여름방학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부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자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한 번의 여행과 함께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많은 여행 에세이들과는 달리 사진이 한 장도 실려 있지 않다. 여행에 사진기를 챙겨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여행의 목적이 다르고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사진을 찍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날 무언가를 놓치기 싫어 사진을 찍는 대신 그 모든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놓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없는 여행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 한 장 실려 있지 않아도, 그 어떤 여행 에세이보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