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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 무삭제 시나리오북 수록 ㅣ 가연 컬처클래식 1
박이정 소설, 안상훈.최민석.윤창업 각본.각색 / 가연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지금 현재 상영 중이기도 한 영화의 이야기이다. 김하늘, 유승호 주연의 <블라인드>를 나는 영화에 앞서 책으로 만나 보았다. 책 뒤에는 영화 시나리오와 영화 스틸사진들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사진 몇 장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머릿속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자리 잡아 버렸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눈물 날 정도로 독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비극적인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이야기는 험난한 앞으로의 여정을 향해 당차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등장인물로는 수아, 기섭, 명진, 희봉 등이 있고, 각 장의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점으로 그때그때 변화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자세히 이루어졌고,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시시각각 알 수 있어 더욱 실감나고 좋았다.
경찰대에 재학 중이던 민수아는 잊을 수 없는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자신의 눈을 잃었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래서 케인(white stick, 시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흰색 지팡이)과 안내견 없이는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수아의 발목을 잡고 그녀를 좌절시키곤 했다. 게다가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뺑소니 사고를 목격, 아니 경험하게 되었다. 경찰대 출신답게 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시각을 제외한 온 감각을 토대로 진술에 나섰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인해, 민수아는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가족이라고는 아르바이트 시급을 벌어 숨겨놓는 족족 훔쳐다 술 퍼마시는 데 탕진하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밖에 없는 기섭이 있었다. 기섭 역시 수아가 겪은 뺑소니 사고를 목격한다. 수아와 기섭이 각각 시각과 감각으로 다르게 느낀 사고였기 때문에 진술은 엇갈려버렸다. 기섭의 애초 목적은 현상금이었지만, 수아의 진술과 엇갈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사건에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뺑소니 사건의 중심에 싸이코 명진이 있다. 낙태 수술 전문가인 명진은 그러나 사람을 납치한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피해자들을 비둘기로 묘사하며 그들을 갖고 논다. 그러고는 죽여 버린다. 명진은 굉장히 잔인하고 냉소적이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패스 같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수아를 목표물로 삼았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로 사람을 치고 말았다. 앞을 못 보는 수아에게는 개를 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수아의 날카로운 추리에 그만 뒷덜미를 잡혔다.
이제 명진에게 수아는 갖고 놀 장난감도 아니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앞 못 보는 수아에게 명진은 그 존재만으로도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수아와 기섭에게 찾아오는 위기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는 했다. 불안해서 책을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수아와 기섭이 명진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 어쩔 줄을 모르겠고, 명진을 수없이 욕하고 또 욕하고, 수아와 기섭을 응원하고 그들의 무사를 빌고 또 빌었다.
꼭 위태로운 장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아와 기섭은 둘 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타인을 향한 벽을 높게 쌓고 혼자서 살아가고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을 읽었을 때는 둘이 영원히 어울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금방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둘 다 겉으로만 가시를 가득 세우고 있을 뿐 속은 여리고 여렸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둘만이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아와 기섭이 내 머릿속에는 이미 김하늘과 유승호로 각인되어 아마 더 몰입하고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영화 속 영상으로는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