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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6월
평점 :

부동산 양도 전문 및 소유권 관련 변호사인 화자에게는 3명의 직원이 있다.
터키라고 불리는 60세 정도의 영국인은 오전의 빈틈없는 일 처리와 다르게 오후부터 이상해지는 사람이다. 니퍼스는 25세가량의 주제넘고 허영 된 인물인데 옷을 잘 입어 그나마 사무실 분위기의 수준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잡일을 도와주는 진저넷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서로가 붙여준 별명이다.
어느 날 어찌해볼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 보이는 바틀비를 필경사로 고용하는데, 그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없이 일을 열심히 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 같은 문서를 똑같이 복사하는 재미없는 작업의 연속인 필경사라는 직업은 같은 문서를 3-4부씩 작성했는데, 법률 관련 문서라 오자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서로 한 장씩 보며 맞춰나가는 작업은 필수였다.
바틀비의 필사본을 다 함께 맞춰보기 위해 화자가 바틀비에게 제안했을 때 그가 들은 대답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였다. 그는 언제나 그 말로 자신이 할 일 이외의 어떠한 것에도 퇴짜를 놓았다. 화자는 바틀비를 이해했다가도 혼쭐을 내고야 말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러던 어느 일요일 사무실에 들렀다가 사무실에서 기숙하는 듯한 바틀비를 보게 된다.
바틀비는 결국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하루를 보내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바틀비에게는 해고도 나가달라는 간청도 통하지 않게 되어 화자는 사무실을 옮기게 되는데, 바틀비는 여전히 옛 사무실 난간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부랑자 아닌 부랑자가 되어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화자는 바틀비가 감옥에서 외롭게 죽은 이후 그가 예전에 우체국에서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을 하다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캐릭터 박물관이 세워진다면 카뮈의 뫼르소, 토스로 옛 스키의 지하생활자,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 그리고 멜빌의 바틀비가 될 것이고, 이 소설들에서 하나의 캐릭터는 소설의 거의 전부라고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썼다.
누구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고 그저 ‘~하지 않는 게 더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외로운 남자 바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로 감옥에서 생을 마치는 이상한 캐릭터이다.
한때 바틀비를 고용했던 변호사인 화자의 호기심, 일종의 인류애를 같이 느끼면서도 바틀비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항에 화가 나기도 하고, 그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묘한 느낌은 진정 신형철이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에서 바틀비라는 캐릭터가 소설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비딕]의 작가로 잘 알려진 허먼 멜빌은 19세기 미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는데, 19세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인 산업사회의 두 계급을 대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비극성을 간파하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필경사 바틀비를 읽을 때, 변호사인 화자의 어쩌면 순수한 인간애를 가장하지만, 아주 작은 돈으로 필사에 대한 값만 지불하는 근무조건과 부동산 양도 및 소유권 전문 변호사인 화자의 일거리가 늘어남으로 해서 바틀비를 고용하게 된 것등 자본주의의 비극성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