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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평전 - 격동기의 경세가
김삼웅 지음 / 채륜 / 2017년 2월
평점 :
손병희선생은 격변기인 1861년에 서자로 태어났다. 지금은 근대로 치는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자로 입신할수 있는 길은 여전히 없었다. 공부해서 입신할수 없었던 그의 젊은 날은 한 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동학에 입문하기전에 있었던 의로운 이야기들이 전해지는걸로 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반드시 고치거나 바른소리를 했던 인물이었다.
최제우, 최시형에 이은 천도교의 제3대 교주이기도 했지만 실제 그의 나이 21세 때에야 천도교에 입문했다.
당시 세력을 떨치던 서학에 반한 학문이라 하여 동학으로도 불린 천도교는 최제우가 1860년에 설립한 교인데, 사실 이책에 있는 내용의 교리들은 읽어도 무슨말인지 잘 모를정도로 한자위주의 교리여서 충분히 알기 힘들다.
천주 즉 하눌님을 믿는다고 하여 흔히 하늘을 믿는다고 착각할수 있지만, 한= 크다, 눌=우리(울타리), 님=존재에 대한 인격화를 나타내는, 즉 우주를 의미한다고 한다.
1897년 부터 1907년 까지 실질적 3대 교주로서 동학을 알리는데 힘써온 그는 러일전쟁 당시 진보회를 조직해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3.1운동 당시는 천도교측 대표로 참가했다가 채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재판정에서 앞으로도 평화적 독립운동을 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의암 손병희는 임시정부 수립당시 서울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는 내각이 구성되기도 했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무의로 돌아갔다. 병보석으로 풀려나 62세로 생을 마감(1922)하기 까지 대한독립을 보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