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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 공녀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로만 생각하고 읽던 나는 읽어가며 난관에 부딪혔다.
전에 보지 못한 종류의 글쓰기 형식으로 챕터마다 나오는 '나'라는 화자가 계속 누구인지 머리를 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마치 부매랑처럼 원을 그리듯 이야기가 처음으로 되돌아오고, 각 챕터는 각각의 인물이 화자가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형식이다.
책의 중반을 넘어 서면서 나는 내용을 이야기하하면서, 왜 작가는 굳이 여러명의 나를 등작시켜 이야기를 이어 나갔을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이 실화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고려시대에 원나라에 일반여인을 공녀로 보낸 일은 알지만 조선시대에 양가집 규수를 공녀로 보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더러, 약소국이라는 나라의 현실과, 공녀라는 치욕스러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자와 여자, 정치인과 백성들의 시각차가 이렇게 클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서 였다.
태종 이방원이 재임하던 1367 -1422 년은 명나라 영락제 가 재임하던 1360 - 1424과 비슷하다. 둘 다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영락제는 태종에게 공녀를 바칠것을 명했고, 태종은 그렇게 했다.
한규란은 성격이 온화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강했다. 인물이 출중하여 영락제가 각별히 아꼈던 인물이라고 하여 황비에 까지 오른다.
한규란의 오라비 한확은 수려한 외모와 유능한 머리를 가졌던 인물이며 동생이 명나라의 황비가 되면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자신의 막내 딸이 태종의 며느리가 되기에 이른다.
막내딸이 바로 인수대비이다.
하지만 영락제가 죽고 나라의 법에 따라 한규란은 순장을 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두 번 째 여동생인 한계란을 영락제의 손자에게 다시 공녀로 보낸다. 한계란은 언니와 다르게 성격이 차갑고, 자매를 공녀로 보내고 출세가도르 달리는 오라비를 경멸한다. 그녀는 황제의 아이를 낳아 조선의 명성을 얻을 생각도, 황제의 사랑을 받아 여인들의 시샘 속에 살기도 원치 않는다. 그저 조선의 꽃과 나무를 모으며 자기자신 새장속에 갇힌 신세를 각인하며 세월을 보내고 싶어한다.
이야기는 초로의 한계란의 회상으로 부터 시작된다. 읽으면서 그저 처음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형식이었다면 초반에 헷갈릴 일은 없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새로운 패턴의 글방식을 보면서 오히려 더 문학적 완성도가 높게 느껴지는 지금의 패턴이 더 좋았던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격이 불같아 화가 나면 누구든 죽이던 영락제가 궁안의 비들을 죽이던 사건에서 여인들의 한 스러운 인생이 옳곧이 느껴졌다. 그 사건에서 영락제는 궁녀를 비롯해 3천명을 죽였다고 하니, 자금성의 규모와 여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상상이상이다.
나라의 울타리를 용맹한 병사들과 장수에게 맡기는 것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오. 그러나 울타리가 위험할 때, 짐승과 사람은 그 행동이 사뭇 다르지요. 짐승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걸지만, 사람은, 나라라는 울타리의 주인들은 마직막까지 자신을 내주지 않지요. 목숨을 대신하여 약한 것들을 내준다오.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