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 이상 소설 전집 ㅣ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6
이상 지음, 신범순 해설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37년 이상은 ‘공교롭게도 책상 위에 몇 권 이상스러운 책자가 있었고, 본명 김해경 hl에 이상이라는 별난 이름이 있고, 일기 속에 몇 줄 온건 하달 수 없는 글귀를 적었다는 일로 해서’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폐결핵이 악화되어 그해 제국 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건축학도였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시인이었고, 소설가였던 그는 너무 이상을 펼치기도 전에 너무 일찍 가버렸다. 그의 작품은 1930년대 어두침침한 방에서 방향을 잃고 자신을 놓아버린 천재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느껴진다.

시간과 공간사에서 나온 이상 소설 전집 ‘날개’는 시대 분위기를 살린 철자법을 고수했다. 꾿바이, 말었다 등등 표기법이 표준화되기 전 소리 나는 대로 쓴 그 시대의 철자를 따라가다 보면 읽기는 힘들지만, 1930대 경성에서 이상이 담배연기자욱하고 알코올 병이 나뒹구는 좁은 방 안에서 원고지에 써 내려가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지주회시는 '거미가 돼지를 만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귤궤짝만한, 그저 방뿐인 좁은 방 안에서 뒹굴며 세월을 보내는 ‘나’는 아내를 거미라고 생각한다.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말에 면도를 하고 ‘오’를 만나러 갔다. ‘오’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다. 아내 나미꼬가 R 카페에서 때로는 몸을 팔아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오’ 또한 ‘마유미’에 기생하면서도 자랑스레 권리를 누린다. 어쩌면 거미는 자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아내가 계단에서 굴렀다. 아내는 폭행으로 보상받은 돈을 쓸 궁리에 들떠있고, ‘나’는 잠든 아내를 두고 술값으로 10원을 쓰고 팁으로 10원을 주리라 다짐하며 길을 나선다.

“어차피 공돈이 아니냐, 전무는 한 번 더 안해를 층계에서 굴러 떨어뜨려 주려무나, 또 이십 원이다.”

​




내용은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닮았다. 그럼에도 자꾸 말라가는 아내에 대한 걱정, 대체 자신이 무엇인 줄 알고 죽지 못하게 이렇게 먹여 살리느냐며 안타까워하는 감정도 드러난다.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라거나 잠이 일상인 그가 깨어 의식한 시간 ‘오후 네 시’에 대해 ‘다른 시간은 다 어디 갔나 대수냐, 시간이 없기로 무슨 성화냐’라는 표현들, 대화인지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주절 거림들... 역시 이상은 실험적인 글을 쓰는 작가이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아내에 기생하며 쓸모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이상의 대표작인 '날개'는 지주회시와 거의 같은 형태의 부부인 듯, 지주회시에서의 '나'가 이런 비정상적인 결혼생활을 계속한다면, 오랜 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연속으로 머릿속이 리셋된 무기력의 끝단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3번지 18가구가 모여있는 유곽 위층 방은 햇빛 한 뼘 들어오지 않는다. 빈대와 함께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는 그는 손님들이 아내에게 매일 찾아오는 이유, 아내에게 돈을 주고, 또 아내는 자신에게 5원씩 주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책보만한 해가 들고 오후에 손수건만 한 해가 들기는 하는 아내의 방에 내려가 아내의 화장품과 라이터로 장난치는 일은 그의 유일한 외출이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아내방의 문을 열었다 아내의 심기를 건드린 이후 아내는 알약을 주었다. 그는 아마도 한 달 가량 계속 잠만 잔 것 같았고, 그런 어느 날 아내 방에서 아스피린인 줄 알았던 알약이 아달린(수면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넋 놓고 있던 경성역에서 12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릴 때 그는 문득 겨드랑이가 가려운 걸 느낀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라거나 잠이 일상인 그가 깨어 의식한 시간 ‘오후 네 시’에 대해 ‘다른 시간은 다 어디 갔나 대수냐, 시간이 없기로 무슨 성화냐’ 라는 표현들, 대화인지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주절 거림들... 역시 이상은 실험적인 글을 쓰는 작가이고, 어려운 듯하면서도 아내에 기생하며 쓸모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그는 ‘지도의 암실’, ‘휴업과 사정’, ‘지주회시’ 같은 작품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 시대의 언어를 살리는 대신 띄어쓰기는 현대의 표준 법을 따랐다.

이상을 너무 잘 알지만 원문을 오롯이 즐기기 힘든 건 한글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과 이상 특유의 실험적 문체와 의식의 흐름 기법도 원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