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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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43년 단옥과 엄마 덕춘, 아직 어린 동생과 함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거처 화태라고 불리는 남사할린에서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도착했다. 오는 도중 기어코 오빠 성복은 도망을 쳤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여겼던 탓이다.

조선보다 춥고, 고단하지만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어 어린 동생이 생겼고, 친구가 생겼다. 3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처음엔 서먹했지만, 엄마와 다르게 단옥에게 의견을 묻고 자신의 생일을 챙기는 다정한 아버지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이 계속되면서 화태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을 일본 본토로 강제 이주 결정이 내렸다. 또다시 아버지와 헤어졌고, 시골로 이주해 땅과 집을 마련한 덕춘은 손이 갈퀴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고 어린 자식들을 건사했다.

전쟁에 패한 일본은 자국민을 귀환선에 태워 귀환시켰지만, 조국이 생겼다는 희망에 조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무국적자로 견디며 온갖 차별을 견디는 조선 사람들은 조선이 반으로 나뉘고,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을 뿐이다.

“ 일본 가면 운동이라도 해서 우리도 돌아갈 수 있게 해줍서, 조국에 우리 실상을 알려줍서”

단옥은 그곳에서 진수를 만나 결국 결혼하게 되고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동생들도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그리고 멀리 있는 조국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소식은 이들에게 온갖 감정을 갖게 한다. 반가움, 그리움, 회한, 서운함, 죄책감, 자랑스러움...

어릴 때 엄마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먼 길을 찾아 러시아로 가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하고, 결혼과 출산을 겪은 단옥의 시점에서의 이야기임에도 나는 덕춘의 죽음에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평생 여덟 명의 자식을 낳았고, 그중 일부는 20년 넘게 헤어져 가슴에 묻고 살았던 그 시대의 어머니, 남편과 떨어져 지낸 세월이 같이 산 세월보다 더 길고, 행복했던 짧은 순간은 어김없이 어린 자식들을 짐처럼 남기지만, 어린 자식들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던 어머니들을 덕춘을 통해 보았다.

남의 땅에서 살면서 이름이 몇 번이 바뀌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서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있지만, 조국이 버린 사람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이렇듯 늘 슬픔과 고통의 틈새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에서 태어나 조국이 없어져 머나먼 남의 땅으로 일하러 떠난 사람들, 그곳에서도 억척같은 정신으로 견디며 땀으로 일군 생활, 그들의 삶 속에 점점 섞이는 러시아 문화는 조국을 그리워하며 견디던 1세대들과 달리 2세대 3세대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열흘 걸려 걸었던 길을 3시간도 안 걸려 왔다고 한국을 방문하며 단옥은 말하지만, 실제 그녀에게 걸린 시간은 50년의 세월이었다.

4부에서 다루고 있는 사할린 동포의 귀국에 대한 내용은 1-3부의 내용보다 내용상으로 건조하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참 미안해지는 대목이다.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유진과 유진]을 읽으면서 팬이 된 바 있는데, [슬픔의 틈새]는 작가의 디아스포라 3부작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전작인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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