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광복 80주년이면서 윤동주(1917-1945) 시인 서거 80주년이다. 시를 쓰고, 우리글을 사랑했던 청년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나라 잃은 국민으로, 자신은 일본 유학의 삶을 살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조국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적극적으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뛰어드는 젊은 영웅들에 대한 부러움이 그의 시에는 느껴진다.
그 시절 총 칼을 들고 직접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위인들도 있고,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며 글로 동참한 문인들도 있는데, 그 바운더리에 속하지 못했고 그래서 괴로움을 글로 남겼던 시인 윤동주. 그럼에도 윤동주 시인이 아직도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 모두 옳은 일을 알지만 다 버리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개인이고 그런 상태를 시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는 그래서 그의 시들 중 특히 ‘자화상’을 좋아한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자화상'
“텁수루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럼한 입술, 너들너들한 남루, 찢겨진 맨발,
아아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중략]
나는 호주머니를 뒤지었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 만지작러릴 뿐이었다.”
-산문 투르게네프의 언덕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활동하며 강렬한 색채와 독특한 붓질로 10년 동안 많은 그림을 남겼다. [동주와 반 고흐 영혼의 자서전]은 시인 윤동주와 화가 반 고흐, 두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그들의 감성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활동했지만, 시와 그림을 함께 보면 놀라운 유사성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의 고독과 고뇌가 한 쪽은 시로 한 쪽은 그림으로 영혼의 조화를 이루며 전혀 어색하지 않게 시를 읽고 그림을 감상하게 한다.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두 예술가의 고뇌와 아름다움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감동을 준다는 것이 흥미롭다. 두 예술가의 고통을 우리가 알고 두 예술가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여전히 흠모하는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