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사로잡힌 영혼들의 이야기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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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모태 빨갱이라고 말하는 비비언 고닉은 급진 페미니스트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1970년대 중반 보이는 것이 여성차별이었고 그래서 페미니즘을 위한 투쟁 현장에서 글쟁이가 되었다. 그러다 한 회의에서 ‘비난해야 할 것은 문화 일반이지 남성 혐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먹물 수정 주의자’라는 말을 들었고, 그때야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이 겪었을 비난에 눈을 떠 그들을 인터뷰하고 1977년이 책을 썼다.

미국 공산당은 1919년 결성되고 40년간 꾸준히 성장하다 스탈린 통치의 숱한 참상이 폭로되며 1956년 이후 와해되었다고 한다. 가장 안 어울리는 단어가 아마도 ‘미국’ 과 ‘공산당’일 것이다. 그만큼 미국 내에 공산당원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도 하지 못했고, 다만 1950년대 매카시즘으로 공산당이라는 말이 공포의 대상이 될 만큼의 고발이 있었고 그 후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당이 먼저였죠. 항상. 그리고 당이 먼저다 보니까 우린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지 잊어버릴 때가 많았어.”

공산주의는 혹 할만한 선전 문구와 사상으로 하층민,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주목받았다. 1920년대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스스로가 소외된 노동 계급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우고 익힌 이상과 달리 민중보다 당이 우선이고, 권력욕과 폭력성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여러분에게 친절하지 않았지만 여러분이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체포당했고, 미행당했고, 전화를 도청당했고, 자녀들이 해고당했고, 삶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모든 짓을 당했습니다. 내가 아는 많은 여러분들이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유쾌함과 불굴의 의지를 빛냈습니다.”

페미니즘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급진적인 관점이 되었고, 운동이라기보다는 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 되었다. 20세기 후반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확산된 이해의 틀로 자리 잡았고, 그렇기에 정치혁명보다는 지난한 사회 변화 과정에 더 깊게 호소했다. 공산당이 그 역할을 못한것은 미국의 공산당이 공산당의 의미를 러시아의 뜻과 같게 생각한 패착은 아닌지 싶다.

반항했고, 반항에는 분노가 따른다. 굴욕감의 정복을 위해 무력이 사용되고, 무력은 반항인을 혁명가로 만들고, 혁명가는 살인을 저지르고, 살인은 구축된 연대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이것이 급진주의의 핵심에 놓인 쓰라린 좌절의 패턴이었다. 한때 미국에서 공산당원으로 몸담았고, 차별당하고, 당에 헌신했지만 좌절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평안하고 어쩌면 남들보다 더 재능 있는 사람으로서 역할을 하며 과거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러움이 인다. 북괴, 궤래, 처단해야 할 대상... 21세기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러한 흉악한 단어로 진보에게 겁을 주고 그것이 가능한 나라이고 그걸 증명하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다. 개정판을 내면서 저자가 자신의 글에 대해 장황하고 반복된다고 말한 것처럼 앞에서 말한 문장을 반복하는 구절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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